"타임오프 제도야말로 귀태(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지난 12일 오후 개최한 '2013년 상반기 과제 중간발표' 자리에서 박태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가 시행 3년을 맞은 가운데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한 중간결과물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근로시간면제제도가 노사관계 및 노동운동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 연구한 우태현 중앙연구원 연구위원과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타임오프 제도가 도입된 배경을 노조전임자 성격의 근본적 변화에서 찾았다.

노조전임자는 '노조업무를 전담함으로써 근로제공의무로부터 자유를 인정받는 노조간부'로 정의할 수 있다. 87년 이전 정부와 사용자는 노조전임자를 유급으로 노조업무에만 종사하도록 강제하고, 국가 코포라티즘(노사협조주의)적 통제의 필수기능으로 이해했다. 사측의 생산동원과 협력적 노사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현장의 관리자' 역할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던 중 87년 체제로 노조 내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사용자로부터 자주성이 확대되면서 노조전임자의 성격이 달라졌다. 96년부터는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됐다. 우태현 연구위원은 "법제화의 핵심 이유는 노조 정치세력화에 대한 보수권력 정치적 제동"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취지를 반영한 타임오프 제도는 시행 3년 만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상급단체 파견전임자가 급감하고 상급단체 의무금 납부 수준이 저하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우 연구위원은 그러나 "전임자수 증감보다 현장통제력이 사용자쪽으로 이동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간부들의 활동시간과 범위에 대한 판단 권한이 사용자의 권한으로 이동함으로써 노사 간 세력판도가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노광표 소장은 "타임오프 제도 이후 취약했던 노조 재정이 더 취약해지고 기업별 회귀현상이 확대됐으며, 정부의 현장 노사관계 개입력이 증대됐다"며 "반면에 노동계는 장기적·전략적 대응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노 소장은 이어 "구태의연한 노조활동이나 관행을 척결하고 재정 효율성과 노조간부 생산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태주 교수는 "한국노총 역시 단기적 정치대응에 매몰되고 기업노조는 기업 내 대응활동에 매몰되는 우를 범했다"며 "앞으로 노조 민주주의와 현장참여적 노사관계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타임오프 제도 시행으로 당장은 노사관계 변화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노사관계 지형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노조 조직운영과 재정 문제·전임자 역할·내부 의사결정구조 등 노조운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