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백혈병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발암물질과 직업성 암 발병 연관성 논란이 업무상질병 인정제도 개편으로 이어졌다.

고용노동부는 직업성 암을 유발하는 원인물질을 대폭 추가하고, 발암물질 노출과 암 발병 연관성이 확인된 질병을 직업성 암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팔래스호텔에서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개선방안 정책토론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공개한다. 노동부는 직업성 암을 유발하는 원인물질 14종류를 추가하고, 이와 연관성이 확인된 12종류의 암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이에 따라 기존 9종류 물질·9종류 암에서 23종류 물질·21종류 암으로 확대된다. 엑스선·감마선과 도장공정(스프레이 도장)이 발암물질로 추가됐고, 난소암·위암·대장암·유방암이 직업성 암 인정범위에 포함됐다.

노동부는 시행령에 명시하지 않은 물질이라도 과학적으로 물질과 질병의 연관성이 강하고 국내 노출이 확인되는 물질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 업무매뉴얼에 반영해 업무관련성 조사를 통해 직업성 암으로 판정할 방침이다.

호흡기계질병·외상후스트레스장애도 직업병

호흡기계질병 인정범위도 확대된다. 호흡기계질병을 유발하는 원인물질이 현행 19종류에서 33종류로 늘어난다. 만성폐쇄성폐질환도 호흡기질병에 추가돼 요양과 합병증 예방을 위한 사후관리 대상이 된다. 해당 질환은 유해한 입자나 가스 흡입으로 인해 폐에 염증이 생기는 증상을 통칭한다. 주물공장·시멘트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부는 이와 함께 정신질병 인정기준을 신설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병 중 유해요인과 질병의 원인적 연관성이 확인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넣었다. 업무로 인한 우울증·공황장애·적응장애 등 정신질병에 대해서는 유해요인과 질병의 원인적 연관성을 명확히 하기 위한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현행 노동부 고시에 규정된 만성과로 인정기준에 업무시간 개념을 도입해 판정의 객관성을 높이기로 했다. 예컨대 업무시간이 12주간 주당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와 발병의 관련성이 강한 것으로 본다.

직업병 인정 '포괄규정' 신설

개정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포괄규정 신설이다. 시행령에 명시된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미래 진단기술 발전으로 유해요인과 질병의 연관성이 확인되는 경우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노동부는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과 함께 질병추가 절차를 개선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할 계획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중앙노동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노동부장관이 질병의 범위를 추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는 산재보험법에 따라 산재보험및예방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새로운 업무상질병이 결정되면 그 사항을 근로기준법상 업무상질병의 범위에 포함할 방침이다.

노동부가 이번에 내놓은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개선방안은 지난해 노사정이 참여한 '산재보험제도개선 T/F' 논의와 연구용역, 10여 차례의 전문가간담회를 거쳐 마련됐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태 이후 제도개선 노력

노동부 관계자는 "개선방안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이후 이슈화된 업무상질병 인정제도 전반에 대한 다각적인 개선 노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개선방향을 전문가와 노사 관계자들에게 설명한 뒤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이채필 장관은 "새로운 유해요인을 대폭 보완하고 분류체계를 근로자 중심으로 개편하면 업무상질병 인정제도가 한 단계 발전할 것"이라며 "재해근로자가 산재를 인정받기까지의 부담을 줄이고, 보상기준이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진단과 판정기준을 정립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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