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운운하며 빛이 바랬지만 ‘노동 망언’ 제조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서 오랜만에 공약다운 공약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18일 사회복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윤석열 후보는 사회복지종사자 처우개선을 약속했다.원래 사회복지업무는 국가가 해야 할 사무에 해당한다. 노동능력을 상실한 이들에게 생계를 지원하거나 노동할 기회를 상실한 이들을 일자리로 연결해 기회를, 국민 복리를 증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장애인의 건강을 돌보고 생활을 보조하는 일,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여가활동 기회가 부족한 노동자들에게
사진작가를 꿈꾸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배달노동자로 1년 정도 일했다. 생활비를 벌면서, 여윳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남는 시간엔 사진을 찍었다. 사진으로 버는 돈을 점차 늘리면서 배달 일을 줄여 나갔다.일이 고된 듯했다. 배달을 시작한 후로 살이 빠지는 게 눈에 보였다. 피부도 거칠어졌다. 찬바람을 맞아가며 많게는 하루 10~12시간씩 운전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눈비가 오는 날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일했다. 배달료가 더 나온다고 했다. 점심·저녁, 끼니를 거르며 일했다. 역
이럴 수가. 미루고 미뤘던 원고 마감이 두 시간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한 문장이나마 적기 어렵다. 마감에 앞선 회의에서는 ‘일의 세계’의 의제들과 지역 (노동)운동의 과제들에 대한 고민들을 이렇게 저렇게 늘어 놓았다. ‘전환’과 ‘위기’를 다시 호명하는 이때. 일하는 모두, 일을 멈춘 모두가 전환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다른 세계’를 조직할 수 있는 과정을 지역에서부터 함께 기획하고 실험하자고 힘줘 제안했다. 그래서 결국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나는 얼마나 정돈된 사유를 갖고 있을까. 커다랗고 조각난 말과 사
오늘도 현장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조합 활동과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주거침입·명예훼손·손괴 등 각종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돼 있다. 자본과 권력이 사회통제 명목으로 형법을 휘둘러 노동자들의 입을 막고 침묵을 종용한다. 법 적용이 정의롭기는 어려울지언정 편향돼선 안 될 터, 자본의 반(反)노동조합적 행동은 어떤 제재를 받을까.부당노동행위와 그 실태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동 3권을 침해하는 행위들 가운데 불이익취급, 단체교섭 거부, 지배개입(81조 각호)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비슷한 전화를 받는다. 어디가 아파서 치료를 받았는데, 이거 산재보험 할 수 있어요? 사보험도 아닌데 아픈 사람이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씁쓸하나 더 씁쓸한 것은 다음의 경우다.1. “병원 원무과에 가면 산재 담당자가 있어요. 가서 자세히 말씀하시고 산재 접수해 달라고 말해 보세요.”라고 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 “네? 정말 병원에서도 해줘요?” 사실, 일하다가 다친 사람들은 산재 신청을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를 알고 있을 확률이 낮다. 산재보험 자체가 낯설다. 병원이 너무 작아서 따로 담
1. 모처럼 길었던 한 주였다. 자가격리에서 해제돼 복귀했더니 이러저런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마는 하나같이 제가 제일 중하고 시급하다고 재촉하고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처리하고서 금요일에 보니 당장 작성해 제출해야 할 서면이 남아 있었다. 항소이유서였다. 항소이유를 밝히는 서면이니 1심에서 패소해서 항소한 사건이었다. 정리해고 사건인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부당해고로 인정해 주지 않았고, 그 뒤 해고노동자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상담했고, 그래서 맡게 된 해고무효확인 소송 사건이었다.
영국 대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나는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그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과 포클랜드섬 소유권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이로써 그는 ‘철의 여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 가운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는 1987년 한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과 가족은 있지만 사회? 그런 건 없다.” 그의 이런 사상을 사람들은 대처리즘이라 불렀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적인
지난 11일은 6년째 진행 중인 사건의 항소심 판결 선고기일이었다. 선고 며칠 전부터 다른 일을 하다가도 “선고 들으러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승소의 기쁨을 법정에서 느끼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판사가 패소 주문을 낭독할 때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그 느낌을 적어도 이 사건에서만큼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당사자인 원고 일곱 분과 이 사건을 함께 대리했던 변호사님이 함께였기 때문이다.이 사건은 선행 소송에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은 원고들이 별소로 직급 확인과 임금 차
피어야 맺는다꽃병을 던졌다. 권력과 마주한 거리와 학교와 공장에서 자유의 열망으로 던졌다. 격동의 현장에서 불꽃을 담아 던졌던 그것을 우리는 꽃병이라 불렀다. 삶이 99%의 긴 일상과 1%의 짧은 격동으로 이뤄질지라도 1%의 순간이 일상을 태워 버릴 수 있다. 그 시절 사람들은 투사가 됐다. 그들은 독재에 엎드린 부조리한 일상을 자유를 위한 한순간에 기꺼이 던졌다.울화병을 봤다. 금융위기를 겪고 저성장기에 들어서자 세계 곳곳에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가 나타났다. 이들이 등장하는 과정에 땅에선 듣지 않아 높이 오르는 고공농성, 차별하고
대선을 코앞에 두고 청년의 표심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 마냥 온 세상이 호들갑이다.마치 10% 이상의 청년들이 매일 매일 지지후보를 바꾸는 진귀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특정 연령대로 좁혀서 볼 경우, 10%에 육박하게 되는 표본오차를 지적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매일 널뛰기 하는 여론이 아니다. 설령 널뛰기 하는 여론이 사실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준석의 극우 선동 포퓰리즘 효과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모르겠다는 혼란에 가깝다.시민사회
혼돈의 시대다. 카오스이론은 이런 혼돈을 과학으로 증명하려 했다. 그렇다고 과학이 세상의 혼돈을 모두 해독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과학은 끊임없이 제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언론도 과학에 기반해 세상일을 해석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요즘 언론은 혼돈을 해석하기는커녕 혼돈을 더 부채질해 혼돈을 혼돈으로 덮는다. 부채질하는 손엔 과학 대신 관념과 편견이 쥐어져 있다.언론은 지난 13일 오스템임플란트 이아무개 부장이 빼돌린 돈으로 산 금괴를 모두 찾았다고 보도했다. 이날 한국일보와 서울신문은 이 소식을 사회면(10면)에 속보로 전했
대통령이 해결하라!” “대통령, 만납시다!”떠올려 보면 지난 몇 년간 대통령을 상대로 외쳤던 집회 구호가 정말로 많았다. 사업장 단위 노사관계부터 국회 소관 법 개정과 법원 재판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노동 문제를 대통령에게 해결하라 요구했다. 요구가 이렇다 보니 거리집회를 해도 도착지는 항상 청와대 언저리였다. 청와대 앞 1인 시위도 매우 많았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피켓부터 개인적 사연을 담은 대자보까지. 많을 때는 수십 명이 각자의 요구를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뭐랄까. 후대에 한번쯤 시대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교과
지난해 11월,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노동자 3명이 스타벅스의 노동조건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트럭에 얹어 시위를 벌였다. 트럭 시위를 주도한 이른바 ‘총대 3인’은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면 언제든지 달려가 지원하겠다”는 민주노총의 논평에 대해 “당신들이 필요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이로부터 한 달 뒤, 미국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긴 짧은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졌다. 뉴욕주 버팔로의 한 스타벅스 매장의 노동자들이 교섭대표노조 인준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기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었다. 미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어떠
지난해 10월 초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서 여러 형사사건을 동시에 위임해 왔다. 조선소에서 있었던 일련의 조합활동에 대해 원청회사가 고소장을 제출한 사건들이었다. 정리해고 관련 투쟁사건부터 시작해서 하청노동자 총궐기대회 등 202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 사이 있었던 조선하청지회의 거의 모든 굵직한 투쟁활동에 대해 꼼꼼히 기소가 된 상태였다.논의를 통해 경험이 많은 선배 김두현 변호사가 주심을 맡아 항소심에 계류 중인 최초사건을 수행하고, 그 추이에 따라 후속사건을 대응하기로 방향을 정했다.기록을 검토해 보니 투쟁의 동기나
대학원 공부를 위해 독일에 도착한 지난해 10월1일, 메일을 하나 받았다. 내가 다닐 학교에서 일하는 연구조교 등 임시직 직원들이 파업할 예정이며 연대를 요청한다는 소식이었다. 임시직 직원들의 지금보다 안정적인 고용을 위해 하루 경고파업과 일주일의 파업을 진행했다. 안내에 따르면 노동조합에 가입한 경우 임금 손실에 대한 파업수당을 지급한다.현재는 주로 2명의 코디네이터가 내가 속한 석사과정 운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수업과 관련한 안내, 특강 개설, 기숙사 신청, 비자 및 거주허가 도움, 은행 개설 도움, 인턴십 기관 배치, 코로
1. 솔직히 뜨겁게 끓어오르는 가슴으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터질 듯 붉게 달아오른 머리로도 읽지 않았다고 나는 고백해야겠다. 자가격리된 상태에서 저녁 9시뉴스로 보았고, 이틀이 지나고서 이렇게 매일노동뉴스에서 읽고 있다.“불평등을 갈아엎고 기득권 양당체제를 끝장내자”고 외치며 전국민중행동이 지난 15일 오후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2022 민중총궐기’를 개최했다. 코로나 시국에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위반한 불법집회로 열렸다고 보도하는 TV 뉴스를 보면서 안타깝기만 했던 것인데 이렇게 집회 소식을 전하는 노동뉴스 기사에 반가웠
올 대선에서 제1야당 유력 주자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 직후인 지난해 7월 “1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다만 윤 후보는 논란이 커지자 획일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제하지 말고 근로조건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갖도록 해 주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본인의 발언이 “부당노동행위를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었다는 해명은 애교로 넘어가자. 그런데 이달 10일에는 인천 남동공단을 찾아 “연 평균 주 52시간을 맞추게 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면서 이와 유사한 취지의
인적자본이론(human capital theory)에 의하면 개인의 생산성 내지는 노동력의 질은 개인의 능력·숙련도, 그리고 교육수준 등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중 교육수준은 생산성뿐 아니라 임금에도 밀접한 영향을 주는 핵심요인으로 꼽힌다. 물론 교육수준이 생산성과 무관하고 단순히 유능한 인재를 식별할 수 있는 신호효과(signaling effect)에 그친다고 주장되기도 하나, 2018년 우리나라 고졸 노동자들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대략 1만5천원, 대졸 2만4천원, 대학원졸 3만7천원인 통계청 자료(2019)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교육
또 청년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감전 사망 하청노동자 故김다운님 사건이다. 원청도 하청도 그 누구도 노동자에게 안전장비를 챙겨 주지 않았다. 사건 이후 원청인 한국전력공사가 가 뱉은 첫 말은 자기가 발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 발주자는 산재사망에 법적책임이 없다는 점을 노린 말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한전이 단순한 발주자가 아니라 도급인으로 보인다는 입장이다. 법률과 판례에 따르더라도 아래와 같이 한전은 결코 발주자가 아니다.첫째, 산업안전보건법은 책임의 극히 예외 사유로 ‘건설공사’의 ‘발주자’를 명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달 17일 ‘레이와(令和) 3년 노동조합 기초조사의 개황’이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레이와’는 일본의 연호로 나루히토왕이 즉위한 2019년 5월1일을 원년으로 한다. 북한의 연호인 ‘주체’가 김일성이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삼는 것과 같은 원리다. 따라서 레이와 3년은 2021년에 해당한다. 일본에서 노동조합 기초조사는 쇼와(昭和) 22년부터 매년 실시해 온 일반통계조사의 하나다. 쇼와는 1926년 12월25일부터 1989년 1월7일까지 재위해 일본의 최장수 왕으로 기록된 히로히토 재위 연간의 연호다. 쇼와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