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솔직히 뜨겁게 끓어오르는 가슴으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터질 듯 붉게 달아오른 머리로도 읽지 않았다고 나는 고백해야겠다. 자가격리된 상태에서 저녁 9시뉴스로 보았고, 이틀이 지나고서 이렇게 매일노동뉴스에서 읽고 있다.

“불평등을 갈아엎고 기득권 양당체제를 끝장내자”고 외치며 전국민중행동이 지난 15일 오후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2022 민중총궐기’를 개최했다. 코로나 시국에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위반한 불법집회로 열렸다고 보도하는 TV 뉴스를 보면서 안타깝기만 했던 것인데 이렇게 집회 소식을 전하는 노동뉴스 기사에 반가웠다. 수만명이 모인 집회였는데도 무엇을 외친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TV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지 아니한 매일노동뉴스 기사를 읽자니 곰곰 생각을 하게 된다. ‘불평등을 갈아엎고 기득권 양당체제를 끝장내자’고 했다는데, 여기서 ‘불평등을 갈아엎자’는 것은 불평등 상태의 노동자·민중으로서는 당연한 과제인 것이고, ‘기득권 양당체제를 끝장내자’는 것은 불평등의 세상을 갈아엎고 노동자·민중을 위한 평등세상을 위해서는 현재 이 나라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기득권 양당체제를 끝장내야 한다는 것이겠다.

첫머리에서 기사는 이렇게 열린 이날 민중총궐기에서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성적표는 참담하다”며 “노동자와 민중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지만 이번 대선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사라졌다”고 밝혔다고 쓰고 있었다(2022년 1월17일자 매일노동뉴스). 박근혜 정권을 심판한 촛불혁명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촛불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참담하다고 평가하고서 이번 대선에서 노동자·민중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고 민중총궐기에서 밝혔다는 것인데, 여기에 이르러서는 나는 이날 ‘총궐기’한 노동자·민중은 무엇일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피지배자로서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불평등 현실을 자각하고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처음부터 촛불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에 기대가 없었다면 이제 와서 참담하다고 평가할 일도, 그래서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이제야 궐기할 일도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노동자·민중을 위해서 일할 권력이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 현실에 절망하는 것이겠는데, 누군가의 보호를 기대지 않고 스스로 떨쳐 일어나야 할 민중의 총궐기는 아니었단 말인가. ‘노동자와 민중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는데도 ‘이번 대선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사라졌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이런 의문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에 맞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민중총궐기 대회를 열었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는 이번에 처음 개최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인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2. 대회사에서 “박근혜 퇴진의 촛불을 들었던 우리가 다시 광장에 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며 “적폐를 청산하자는 요구는 지난 5년간 외면당했다”고 주장한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인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화한 불평등과 양극화는 우리의 삶을 처참하게 파괴하고 있다”며 “대선을 앞두고 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민중총궐기 요구안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이 대회사에서도 이번 민중총궐기에 나서게 된 것이 문재인 정부가 기대를 저버린 탓이라고 밝히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 요구를 외면하지 않았다면,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하지 않았더라면 총궐기로 광장에 나서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민중총궐기를 통해서 전국민중행동은 △주택·의료·교육·돌봄·교통 공공성 강화를 통한 평등사회 체제 전환 △비정규직 철폐,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 보장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여 반대 △철거민 주거 생존권 보장 △기후위기 민중 주도의 체제 전환 △차별금지법 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연합군사연습 영구중단을 내용으로 하는 7대 요구안을 제시하게 됐노라고 밝히고 있었다. 이러한 7대 요구안을 읽고서 보니, 이 나라에서 노동자와 민중·민족을 위한다는 진보 사회단체들의 요구를 망라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가 총궐기하지 않을 정도는 해 줄 것이라고 이 나라 진보운동은 믿었고,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믿음을 배신했다는 것인가.

기사는 이날 진보진영 대선후보들이 참석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즉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다른 나라 정부가 빚을 내서 서민 생계를 지원할 때 이 나라 정부는 국민이 각자 빚을 떠안도록 만들었다”며 “예고된 위기를 민생 파국이 아닌 체제 전환의 기회로 삼자”고 주장하고, 이백윤 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 공동후보는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모든 인간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사회,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국민에 빚을 떠안기는 민생 파국의 세상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 노동자·민중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나아간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일 테고 심지어 기득권이라고 비난받는 그들이라도 그걸 위해서 나름대로 현실을 고려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멀리 있는 추상의 세계가 아닌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세상을 두고서 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런 기사만으로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나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

3. 계속해서 매일노동뉴스는 건설노동자 변아무개씨가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과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건설현장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같은 참사가 계속 일어나는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서 건설사들이 그 처벌을 피하기 위한 방안만 골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은 “박근혜 정권이 퇴진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뭔가 달라질 줄 알았지만 변한 건 없었다”며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기업과 재벌 편만 드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국민건강보험 상담사 이아무개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지 5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규직 전환이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고 이번 민중총궐기 참석자들을 보도하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건설사들을 비롯해서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게 하고, 기업과 재벌 편만 들지 않고 노동자 편도 좀 들고,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정도는 당장이라도 기득권 양당의 그들이라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참석자들에게는 “불평등을 갈아엎고 기득권 양당체제를 끝장내자”는 이번 민중총궐기의 외침은 분명히 거창했다. 그래서였나. 이렇게 이 나라 노동자들의 요구가 소박한 것이기에 이 나라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그렇지 않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거창했더라면 그런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해야 하는 노동운동은 총궐기를 멈추고 기대하면서 지난 5년을 기다린 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4. 그렇다. 오늘은 노동자의 요구가 대단하지 않다. 거창하게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니 뭐니 하지 않고 그저 죽거나 다치지 않고 고용이 안정된 상태에서 사용자에게 위법·부당한 행위를 당하지 않고 일하기를 바라는 것이 고작이다. 이 나라에서, 이 세상에서 오늘 노동자 대다수가 이렇다. 그러니 이런 상태에 안주하게 되면 국가권력에 기대면 되는 것이겠다. 하지만 아니다. 권력에 기대서는 운동은 없다. 권력이 해 줄 수 있는 정도의 요구에 안주하는 노동운동은 없다. 노동자를 위한 행동 없이 노동운동은 존재할 수 없다. 권력과 자본에 기대는 운동은 노동자 자신의 운동인 노동운동이라 할 수가 없다. 한순간이라도 그러하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아무리 노동을 존중한다는 권력이라고 해도 그에 기대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런 내 말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서 하나 마나 한 말로 취급됐으면 좋겠다. 민중총궐기의 날에 너무도 당연한 ‘공자왈 맹자왈’로 취급돼야 할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비난받았으면 좋겠다. 이른바 촛불 정부는 노동과의 공동 정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기대해서 권력에 맞선 노동의 행동을 멈췄다면 하나 마나 한 쓸데없는 말인데도 우리는 아프다며 지난 5년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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