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라디오 뉴스쇼 진행자의 첫 멘트는 “정치가 실종됐습니다”였다. 최근 국민의힘 내부의 혼돈을 가리키는 말이다. 새삼스레? ‘뉴스’랄 것도 없이 정치는 실종됐고, 심지어 경멸의 말이 된 지 오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디에도 정치는 없다.조폭 두목이 행동대장에게 보냄 직한 문자메시지로 일어난 소란이 지배하는 여당의 우스꽝스러운 권력다툼, 선거가 끝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정치적 행위를 하지 못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비례대표들에게 묻는 당원총투표 발의로 혼돈에 빠진 정의당까지. 곳곳에서
1. 제목을 쓰고 보니 좀 거창하다. 노동자가 법정의 주인이라거나, 노동자를 위한 법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쓰고 말았다.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일단 시작하자고 대충 썼다.지난 25일 기아차 3차 통상임금 소송사건 재판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562호 법정에서 열린 재판이었다. 아무 소감 없이 흘려보낼 사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쓰자고 달려들었더니 제목부터 쉽지가 않다. 당신은 ‘이미 다 정리된 사건이 아니냐’며 내 이런 짓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2011년부터 시작해서 2019년 2월 서울고등법원 판결 뒤에 노사합의
요즘 읽는 책은 암 투병 끝에 엄마를 잃은 저자가 엄마와의 추억·이별·애도를 통해 엄마를 이해하고 자기 자신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책 초반에 엄마가 해 줬던 한국 음식을 떠올리며 요리를 하기 위해 H마트에서 장을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저자는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며 자신도 한국인인 엄마처럼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 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고 썼다.그러고 보면 우리는 밥을 몹시 중요시하며 밥과 관련한 표현에 둘
1947년 3월12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의회에서 훗날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이라 불리는 해외 정책을 발표했다. 이로써 2차 세계대전 동안 반파시트 민주주의 전쟁의 동맹국이었던 소련은 그 확장을 억제해야 하는 적국으로 간주됐다. 그 결과 유럽의 군사동맹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출범하게 됐다. 자유민을 강압하는 전체주의 정권은 국제평화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가 선언된 이날은 냉전의 시작으로 평가된다.트루먼 독트린이 나오게 된 명분은 좌우 내전 상태에 있던 그리스에 대한 군사지원을
바야흐로 시행령 개정 유행시대인가 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고 배웠는데 현실은 각종 시행령들이 본법에서 정한 범위 언저리를 수시로 넘나들며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뒤 각 부처는 소관법령의 시행령을 뜯어고치느라 바쁜 모양이다. 정부는 각종 규제개혁을 이끌겠다며 법령을 개정하기 위해 야심차게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작업에 착수했다. 시행령 개정 유행에 뒤처질세라 다들 열심히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제출되고 있는 시행령 개정안들에는 뚜렷한 트렌드가 있다. ‘자유’를 금과옥조로 삼는 정부답게 위임입법의 한계로부터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사건이 알려진 지 35년 만에 국가기관이 국가책임을 처음 공식 인정했다. 국가기관이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사해 결과를 발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결과 사망자가 종전보다 105명이나 추가로 나왔다.진실화해위는 지난 24일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회견을 열고 전날 진실규명을 결정한 형제복지원 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정근식 위원장이 직접 발표했다.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 1975~19
“위험성 평가표 내용이 간단한데, 이거 좀 잘 쓸 수 있어? 관리자님?” 고용노동부 관리·감독자가 질문한다. 반존댓말이다. 살짝 기분 나쁘다. 하지만 상대방은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관리·감독하러 온 사람이고, 나는 지시사항을 이행해야 하는 을이다. 정확히는 병이겠다. 원청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지적당할 때 기분 나쁜 경우가 있지만, 안전관리 시스템이 돌아가야 산재를 최소화할 수 있으니 이해할 수밖에 없다.석유화학산업은 산재 리스크가 크다. 당연히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한 사업장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오래 일해 봤다 싶
일하는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주목하는 작가 장류진은 그의 단편소설 에서 도시 중산층 여성이 가사노동자를 사용하며 겪는 갈등을 잘 묘사했다. 은행 대출을 얻어 28평 새집을 마련한 ‘나’는 새집의 깨끗함을 유지하고 싶어 가사도우미를 써 볼까 고민 중이다. 월급받으며 일하는 처지에 남을 부리는 것이 조금 그래서 갈등하던 중 가사도우미를 써 본 주위 동료들의 적극적 추천으로 결국 여러 사람을 고민한 끝에 ‘네 번째 아주머니’를 격주 가사도우미로 결정했다.그런데 뛰어난 청소 실력 때문에 발탁한 ‘네 번째 아주머니’는 슬슬 출
우리 센터에는 매년 자원활동가들이 찾아온다. 대학 인권센터를 통해 시민·사회단체에서 반 년 동안 활동하는 학생들이다. 지난해 주요 자원활동 프로그램은 일자리 불평등 인식조사와 비정규 노동자 인터뷰였다. 올해는 인터뷰만 하기로 했다. 지난에 비해 인원이 적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데다가, 조금은 특별한 인터뷰를 준비했기 때문이다.이번에 인터뷰하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의 노동을 글로 풀어낸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우리 센터는 2011년부터 매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에 11회 차를 맞이했고, 올해 9월 즈음해서
“코로나19 이후 쿠팡을 비롯한 물류 자본의 매출은 천정부지로 뛰었는데 물류창고 노동자는 강도 높은 노동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존중과 노동자로서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에 나서겠다.”(매일노동뉴스 2021년 6월8일자 보도)“아이가 유치원에서 2도 화상을 입어도 휴대폰이 없어 (아이가) 한나절간 방치되고 친지와 가족이 사망해도 그 소식을 전달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쿠팡 덕평 화재 사고 최초 목격자는 화재를 목격하고도 휴대전화 없어서 소방 신고를 못 했다. 전국 수많은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인권을 유린당하지 않도록
1. 여름휴가 기간 뒤 재판들이 밀어닥치고 있다. 지난 17일 현대미포조선 통상임금사건에 관한 조정기일 재판으로 부산고등법원에 갔더니 현대중공업 사건을 대리하는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걸 잘 지켜보고 있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후배에게 건네는 덕담성 인사에 나는 “그냥 바쁘기만 하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대답하고서 생각해 봤다. ‘바쁘긴 한데…. 나는 바쁜 만큼의 소득 없이 보내고 있는 것 아닐까. 아무리 바쁘게 뛰어도 제자리에서 맴도는 제자리 뛰기처럼.’ 별생각 없이 인사로 대답하고서 그 대답대
고용노동부가 진짜 사라졌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노동부는 존재하고,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실 터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노동부를 찾는 이유를 물으신다면, 노동부에서 ‘노동’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 17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경총 회장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고, 32개 업종으로 제한돼 있는 파견근로 제한을 풀어 줄 것 등 경영계의 오랜 요구를 전달했고, 이에 이정식 장관은 근로시간과 임금체
윤석열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과 길들이기가 시작됐다.최근 고용노동부는 뜬금없이 근로자수 100명 이상 기업 단체협약 1천57개를 전수조사했다. 노동부는 단협에 채용 관련 법 위반사항을 파악해 적절히 고치도록 지도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사가 자율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지만 체결된 단협이 법에 위반된다면 시정을 명령할 수 있고, 미시정시 벌금 500만원 이하를 부과할 수 있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조항을 근거로 제시했다.노동부는 조사 결과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산재사망자의 직계가족 채용 조항 5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 위에 새끼줄을 걸고 아기 탄생을 알렸다. 딸이면 솔가지와 숯덩이를, 아들이면 빨간 고추와 숯덩이를 새끼줄에 끼웠다. 그리고 100일이 지나면 백일잔치를 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새 생명의 탄생을 환영했다.윤석열 정권이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났다. 100일을 즈음해 야당과 시민단체들에서 평가토론회가 열렸다. 하지만 변죽만 울리는 것 같다. 윤석열 정권은 애당초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태어난 생명을 두고 이런 야박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현실과 자신이 서글프다. 그러나 이것이 솔직한 민심이다.윤석열 정권은 박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이 막 지났다. 윤석열 정부는 5월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국민께 드리는 약속’ 중 하나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는 문장을 내걸며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 ‘노사 협력을 통한 상생의 노동시장 구축’을 제시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후 6월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안, 그리고 최근 국무조정실이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진 ‘고용·노동 분야 덩어리과제(규제)’에 따르면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는커녕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하려는 것 아닌지
교차점에 서다 “간부의 역할과 자세에 대한 자료 좀 부탁해요.” 종종 이런 얘기를 듣는다. 노조간부의 역할은 시대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뀌지만, 노조의 본질적 존재 이유는 달라지지 않는다. 나쁜 관계를 좋은 관계로 바꾸는 것이 존재 이유다. 평등은 소유 문제가 아니다. 대등한 관계라면 소수가 많이 가지고 다수가 적게 가질 수 없다. 한쪽은 권리 위의 특권을 누리고 다른 쪽은 권리 아래에 무권리 상태인 관계가 문제다. 이런 관계를 바꾸는 것이 노조다.간부의 역할도 관계 중심으로 생각하자. 노조간부가 된다는 것은 관계의 교차로가 되는 것
오랜만에 만난 동생의 입에서 주식과 코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주식시장 역시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매달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대기업 주식을 사는 데 쓰고 있고, 코인은 폭락장을 경험하고는 ‘손절’했다고 했다. 주식가격 하락으로 손해를 보고 있으면서도 계속 사는 이유를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지금은 손해지만 ‘반드시 오를 것’이라는 신뢰, 그리고 그 신뢰의 동기는 ‘미래’(혹은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무엇이 2030을 ‘영끌’로 내몰았나”는 기사에서 장혜영 정
중앙일보 정치에디터가 지난 6일 30면에 ‘만 5세 입학과 아륀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중앙일보는 이 칼럼에서 “만 5세 입학 등 최근 장관들이 야기하는 일련의 논란을 보면서 14년 전 ‘아륀지’ 발언 파문이 오러랩된다”고 했다.‘아륀지’ 발언의 출발점은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경숙 당시 숙명여대 총장이었다. 이경숙 위원장은 2008년 1월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영어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방안 공청회’에서 그 유명한 ‘아륀지’ 발언을 한다. 그는 이날 공청회에서 원어민 발음대로 ‘프렌들리
지난 16일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화물차노동자들이 계약해지와 손해배상·가압류 등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같은날 증권가에서는 하이트진로의 2분기 실적을 분석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14.6% 증가했고 순이익은 67.5% 증가한 397억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하이트진로 노사관계를 들여다보면 기업이 왜 특수고용을 그렇게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이익은 전부 회사 소유주 및 그 친족들이 가져가고 위험은 전부 노동자에게 전가하기에 편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우선 특수고용을 활용하면 기업이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8일 밤에 있었던 일을 우리는 안다. 물은 낮은 곳부터 차올랐고 재난 대응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부루벨코리아지부 고 홍○○ 총무부장과 그녀의 열세 살 된 딸, 그리고 홍 부장의 발달장애인 언니가 숨졌다. 119는 불통이었고 현장에 나타난 경찰관들은 구조 장비가 없었다. 고인의 구조 요청을 받고 달려온 노동조합 동지들이 창문을 뜯어냈을 때 물은 이미 천장까지 차 있었다. 할 말을 잊게 하는 참사다.참사를 통해 드러난 고 홍 부장의 삶도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