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우혁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8일 밤에 있었던 일을 우리는 안다. 물은 낮은 곳부터 차올랐고 재난 대응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부루벨코리아지부 고 홍○○ 총무부장과 그녀의 열세 살 된 딸, 그리고 홍 부장의 발달장애인 언니가 숨졌다. 119는 불통이었고 현장에 나타난 경찰관들은 구조 장비가 없었다. 고인의 구조 요청을 받고 달려온 노동조합 동지들이 창문을 뜯어냈을 때 물은 이미 천장까지 차 있었다. 할 말을 잊게 하는 참사다.

참사를 통해 드러난 고 홍 부장의 삶도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고인은 면세점 판매노동자였다. 장시간 서서 일하는데 쉴 곳도 마땅치 않았고, 저임금과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 노출돼 있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과 코로나19 사태로 고인과 동료들은 해고 위협에도 놓여야 했다. 돌봄도 고인의 몫이었다. 아픈 어머니와 장애를 가진 언니, 초등학생 자녀를 부양했다. 반지하를 선택했던 이유도 돌봄이 필요한 가족들과 적은 비용으로 함께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은 그저 ‘반지하에서 어렵게 살았던’ 사람은 아니다. 불충분한 복지 제도와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힘들었던 사람만도 아니다. 어떻게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것인지를 궁리하던 밝은 사람이었고, 노조 조합원으로 그리고 전임자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고인의 생전 인터뷰와 동지들의 증언을 읽으며, 우리는 삶을 촘촘히 죄어 오는 노동과 돌봄의 위기 속에서 자신과 동료들의 행복을 위해 투쟁했던 한 노동자를 본다.

“여러 사람의 노력이 모이니 시간이 갈수록 예전보다 근무환경이 더 나아졌다고 느낍니다. 매장에 의자가 생긴 것도 그렇고, 면세점 본사 직원들이 매장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있어요. 여전히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점점 면세점 직원들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한겨레 인터뷰 중 고 홍 부장의 말)

“코로나19 이후 큰 타격을 받은 면세점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애썼던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합원들의 앉을 권리를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뛰었다.” “고용불안을 겪으며 자포자기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두려워하지 마라고 손잡아 주고, 처음 노조 만드는 길이 험난해서 주저앉고 싶을 때 격려해 준 분이다.” “유통산업이 대부분 아주 적은 임금으로 시작하는데 그것을 바꿔 내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신입 직원의 임금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처우를 개선해 이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이유로 떠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활동했다.”(동료들의 증언)

고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자꾸 ‘우리’를 주어로 삼은 문장을 써 보고는 하는 것은 지난 11일 있었던 추모제에 모인 사람들이 떠올라서다. 그날 고인의 빈소가 있는 여의도 성모병원 앞 대로변에는 장애인과 빈민, 노동자가 모였고 이들은 죽어서도 가족의 돌봄 대상으로 묘사되는 중증장애인의 삶을, 주거불평등이 없는 세상을, 고인이 노동운동으로 만들고 싶었던 세상을 이야기했다. 이 추모의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을 기꺼이 ‘우리’라 부르고 싶다. 고인과 그 가족의 구체적인 삶과 희망을 기억하는 우리가 많아질 때, 그 우리들이 연대할 때 노동과 돌봄이 괴롭지 않고 평등하게 안전한 세상도 가능할 것이다. 폭우가 지나간 자리, 몇몇 정치인들이 던지고 간 말의 쓰레기 더미를 헤쳐 건져 내고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닐까. 연대를 다짐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국장애인부모연대·빈곤사회연대·민주노총 서울본부·서비스연맹·민달팽이유니온 등 노동·장애인·빈민·주거운동 단체들은 ‘재난불평등추모행동’(bit.ly/재난불평등추모행동)을 구성해 이번 주를 추모주간으로 선포하고 서울시의회 앞 시민분향소 설치, 분향소 앞 추모문화제 등의 추모행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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