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 위기라고 합니다. 그것이 자본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노동의 위기에서 파생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올해는 경제위기 한파가 일자리를 끊임없이 위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이 ‘현장’에 있다고 믿습니다. <편집자>

 

“드르륵, 드르륵. 작업이 동시에 진행될 때는 아주 시끄러워요. 기자님은 귀마개 안 하고 들어오셨네. 귀마개부터 하세요. 큰일 납니다.”
지난 19일 경남 사천시 사남면 한국항공우주산업 제1공장 항공동. 알루미늄 합금이나 복합재를 붙이는 리벳(rivet) 작업이 한창이다. 66만제곱미터(20만평)에 달하는 대지에서 2천여명의 노동자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99년 옛 대우중공업·삼성항공산업·현대우주항공 등이 통합해 설립한 기업이다. 국내 유일한 항공기 종합업체로 항공우주산업 관련 군수·민수 사업을 하고 있다. 세계 12번째, 국내 최초의 고등훈련기인 T-50을 만들어낸 곳이다. F-15K 주 날개와 동체, 아파치헬기, 보잉과 에어버스의 민항기 기체구조물도 이곳에서 제작된다.
이곳의 첫 인상은 ‘지붕과 출입문만 있고 기둥이 없는 공장’이라는 것이다. 잘 정돈된 항공동은 말끔했다. 항공기 생산라인을 유연하게 변경하기 위한 것이다.

1공장 내 항공동은 T-50 등을 생산하는 곳이다. 항공기는 크게 세 부분을 붙여 만든다. 전방부·동체·후방부는 운반 과정에서만 기계의 도움을 받을 뿐 조립과정 전반에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시설관리를 제외한 생산직 대부분이 정규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한 자동차·조선·전자 업종의 생산라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니다.

비행기 장인들이 모인 곳

항공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보통 입사 20년이 넘는 베테랑들이다. 자동화도 일부 추진되지만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에는 여전히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항공동의 이현모(42)씨는 자신이 하는 일을 ‘고급 노가다’라고 말했다. 섬세한 작업이지만 반복되는 일도 많다는 뜻이다.

“이런 동그란 곳 안에 들어가서는 옆으로 누워서 한참 동안 조립을 합니다. 불안한 자세로 같은 작업을 오래하다 보니 어디 한곳 안 쑤시는 데가 없죠.”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일하는 경우가 많아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생산라인 한 부서의 19명 전원이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할 정도다.

잠시나마 허리를 펼 수 있는 체조시간은 조립라인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휴식 시간도 마찬가지다. 작업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는데, 쉬는 시간은 오전 9시50분부터 10분간, 오후 2시50분부터 10분간이다. 이때 항공동 바깥 한 켠에 마련된 휴게장소에서 노동자들은 담배 한 대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동료들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비행기 조립광들의 걱정

항공동을 지나 1공장 조립동에 들어서자 항공동보다 심한 소음이 귀를 때린다.
“귀마개를 안 끼면 1년도 못 버틸 겁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하면 재검진하라고 나와요. 나이가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가끔 이명 소리도 들리죠.”

조립동 품질관리부서에서만 6년째 근무 중인 김승래(50)씨. 조립동은 보잉과 에어버스에서 수주받은 항공기 동체를 조립하는 곳이다. 아파치헬기와 K-16같은 군용 항공기도 생산된다. 김씨는 조립동에서 아파치헬기의 동체 조립을 마친 것을 정상적으로 조립했는지 최종적으로 검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을 묻자 그는 “항상 일거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한국항공우주산업 인수설에 대해서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이 든 사람이 우선 감원 대상이 될까봐 불안하죠. 비행기를 만든다는 매력에 빠져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임금도 동결했는데 갑자기 대한항공이 인수한다고 하니 걱정됩니다.”

99년 설립 이후 매년 적자를 기록했던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유휴시설과 설비 매각, 자발적 구조조정으로 2006년 이후 경영정상화를 이뤘다. 지난 2년간 연속 흑자를 달성하는 안정적 수익구조를 실현했다. 2007년 경상이익은 42억원, 2008년 경상이익은 191억원이었고, 한때 600%를 넘던 부채비율도 132%까지 낮아졌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희생도 큰 몫을 했다. 노조 설립 이후 10년 동안 네번의 임금동결과 한번의 임금위임 등 경영정상화를 위해 힘을 보탰다.
제1공장 부품동은 세 공장 중에서도 가장 환경이 열악하다. 항공동과 조립동은 프로젝트별로 나뉘지만, 부품동은 모든 프로젝트에 들어갈 부품을 만드는 곳이다. 부품동 노동자들은 부품제작 과정에서 사용하는 각종 화약약품, 열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냄새와 고열 속에서 일한다.

부품동에서 15년째 근무하는 서보성(43)씨는 “우리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삼겹살을 먹는다”고 말했다. 기관지에 좋다는 속설 때문에 각종 화학약품에 둘러싸여 일했던 하루를 동료들과 삼겹살을 먹으며 위안하는 셈이다.
최근 항공기에는 알루미늄 합금보다 내구성이 좋고 가볍다는 장점 때문에 유리섬유 등이 들어간 복합재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가벼운 복합재는 항공유 등 유가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려운 작업환경 끈끈한 단결

실제로 복합재 사용비중은 80년대 10%대였다가 최근 27%대로 급상승했다. 보잉사의 최신 보잉 787기의 복합재의 비중은 38%에 이른다. 가벼워지고 연비가 좋아지기 때문에 제작비용이 더 들더라도 복합재를 사용한다.
“햇볕이 들어오면 반짝반짝 거리는 게 보여요. 유리섬유가 공기 중에 돌아 다니는거죠. 복합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건데, 이게 몸에서 배출되면 상관없는데 유리섬유가 몸에 박히면 위험해요.”

복합재에는 접찹을 쉽게 하기 위한 본드 성분이 들어 있다. 복합재를 취급하다보면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1주일이 지나면 굳은살로 변한다고 한다.
작업환경은 열악한 편이지만 부품동은 1공장 안에서도 가장 단결이 잘되는 곳으로 통한다.

“힘든 쪽이 단결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끈끈한 정은 부품동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부품동 노동자들은 노조 활동은 물론 회사의 혁신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대한항공 인수 시도에 반대하는 각종 집회에서 가장 앞장서는 이들도 부품동 노동자다.
 

 
생산직과 사무직의 연결 고리

한국항공우주산업 전 임직원 2천800명 중 생산직과 사무직 비율은 4대 6 정도다. 99년 삼성·대우·현대가 통합했지만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들은 2002년 지금의 사천 1·2공장으로 생산라인을 통합하기 전까지 ‘한지붕 세 가족’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최근 지분매각 투쟁 과정에서 비로소 ‘한지붕 한가족’이 됐다. 연구개발의 중요성이 높은 산업 특성상 사무직이 많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안에서는 사무직을 ‘공통직’이라고 부른다. 공통직 노동자들은 각각 설계·생산관리·품질관리 등을 담당한다.

이 가운데 생산기술부는 설계와 생산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생산현장을 완벽히 알지 못 하는 설계부문과 반대로 설계부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생산부문 양쪽을 다 이해시켜야 하는 곳이다. 박용곤 조립생산기술부 부장은 “첨예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솔직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2003년 2월 T-50 항공기의 초음속 비행에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은 독자 개발한 고유 항공기로 초음속 비행에 성공한 세계 12번째 국가가 됐다. T-50 골든이글은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공군과 계약을 체결해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공동개발한 초음속 고등훈련기다. T-50은 지난 97년 개발에 착수해 2006년 1월 개발이 완료됐다.

국내 최초라는 영광 뒤에는 노동자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다. T-50을 만드는 과정에서 설계를 담당한 사무직 노동자 1명이 과로사했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경남 사천의 공군 제3비행훈련장과 붙어 있다고 할 정도로 거리가 가깝다. 이날도 T-50 비행기 한 대가 시범비행을 위해 공군 비행장으로 이동중이었다. 비행기를 지켜보던 한국항공우주산업노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무직도 생산직도 그렇고 비행기가 하늘로 뜰 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립니다. 그만큼 정열을 쏟았던 비행기가 제대로 하늘을 날 때의 자긍심은 대단해요.”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들은 인수합병에 따른 고용불안의 눈물이 아닌 노동의 결과인 항공기가 창공을 가르는 장면을 보며 감동해 눈물을 계속 흘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