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건설노조들이 시공업체인 원청을 상대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 죄로 지난 2003년부터 최근 경기도건설노조 간부들이 잇따라 구속됐다.

원청과 법적 고용관계에 있지 않는 지역건설노조 간부들이 산업안전 및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협박, 이를 근거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전임비를 갈취했다는 것이다. 공갈죄와 금품수수죄가 이에 근거한다.

일반적 노사관계에서는 사업장 내 노동자들을 조직해 노조를 결성하고 노조활동을 하면서 회사쪽에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난 2000년부터 지역건설노조들은 500여개의 건설현장에 뿔뿔히 흩어져 있는 노동자들을 한 지역의 노조로 조직하고, 전문건설업체 또는 시공사인 원청업체와 단체협약을 맺고 노조활동을 보장받았다. 이를테면 건설현장 내 출입을 허용 받고 관련시설을 제공받는 것 등이다. 또 환경관련법, 산업안전법, 근로기준법 등을 준수해 줄 것을 ‘문서’로 요구한다. 이것이 지역건설노조의 단체협약 체결이다.

◇ 교섭기법이 ‘공갈죄’ = 우선 대법원은 지난 5월 지역별노조가 원청업체와 지역건설노조의 단체협약 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지역건설노조는 현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건설근로의 특성상 원청회사가 건설일용근로자들과 직접적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근로조건 등 구체적인 지배를 하는 지위에 있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지역건설노조의 단체협약체결 과정이 공갈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지역건설노조가 단체협약 체결을 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수, 명단을 비롯해 조직의 구성을 밝히지 않음 점, 즉 조합원이 없음에도 이를 숨기고 단체협약 체결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또 단체협약 체결이 지연되자 안전시설 미비, 환경법규 위반 사항 등에 대해 사진촬영을 하며 이를 관계당국에 고발하겠다고 원청을 압박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원청에 단체협약 체결을 종용하는 행위 그 자체가 해악의 고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재형 강원대 교수(법학)은 “일반적 노사관계에서도 노조와 사용자간 단체교섭이 시작돼 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방을 설득하고 논거를 제시하며 회유와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면서 “법원이 이러한 교섭기법을 문제 삼아 공갈죄를 적용하는 것은 기본적인 노사관행도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경기서부지역건설노조 한 관계자도 “사실 고소·고발이 원청에 큰 위협이 되지도 않는다”며 “건설관련 법규의 처벌조항 또한 현장의 안전실태만큼 허술해서 많아야 수백만원 벌금 내는 것이 전부인데 위협이 될 까닭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전임비 지급은 ‘금품갈취’ = 전임비지급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정당한 노조활동을 위해 주는 전임비가 금품갈취라고 하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건설노조들은 원청에 1일 출력 인원에 따라 월 20~50만원 정도 현장 공사가 끝날 때까지 전임자들의 활동비로 지급받는다. 이 돈은 노조 활동가들의 개인 통장에 입금되었으며 노조 활동비로 쓰였다.

권두섭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공안이 초기업노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며 “산별노조나 초기업노조는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이 있는 기업들이 조금씩 전임비를 나누어 전임자에게 지급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지역건설노조 역시 회사가 노조에 재정지원을 해 주는 것은 금품갈취가 아닌, 전임비 명목”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와 학계의 이같은 반발과 지적이 있음에도 2003년부터 현재까지 공갈죄와 금품수수죄로 구속된 지역건설노조 간부 수는 20여명에 이른다. 지난 8월21에도 경기도지역건설노조간부 3명이 수원지검 특수부로부터 이같은 혐의로 현재 구속수감 돼 있다. 이에 김호중 경기서부건설노조 위원장 등 3명의 건설노동자가 지난 1일부터 서울 올림픽대교 75미터 주탑 위에서 14일째 고공농성을 계속 이어가며 건설노조 탄압 중단과 구속자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 지역건설노조들은 지난 2003년 검경의 이같은 수사에 대해 ‘건설노조 활동을 가로막는 공안탄압’이라고 규정하고 명동성당에서 289일간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최명선 건설산업연맹 정책부장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지역건설노조들에 대한 사법부의 수사를 중단하며 건설노조 탄압중단을 정부에 권고하는 등 정당한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계속해서 이같은 혐의로 건설노동자들을 구속, 탄압하면 국제노동계로부터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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