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가 비정규직보호법안과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에 대비해 직접고용 비정규직 2,000명 가량을 외주화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법 개정을 통해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정부가 마련한 법안이 노동계의 우려대로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철도공사라는 대표적 공기업이 앞장서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을 거스르고 있는 셈이어서 정부 대책에도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검토 내용도, 시기도 부적절

철도공사 기획조정본부가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비정규직보호법안 관련 비정규계약직 대책 검토(안)>(이하 검토안·사진)은 지난 11일 철도노조의 폭로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검토안은 작성일자가 지난달 24일로 명시돼 있어 시기를 놓고도 부적절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 초안을 마련하고 노동계와 경총에 이를 설명한 때가 지난달 20일이기 때문이다.


공사는 검토 배경으로 비정규직보호법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공사 인력운용과 연계한 비정규직 운용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국회 일정과 별도로 정부에서 8월초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라는 것도 배경에 포함시켰다.

실제로 비정규대책안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해 별도직종 신설과 ‘무기근로 계약화’를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8일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에서 상시직을 무기근로계약직으로 전환시키겠다고 발표한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비정규직 문제 외주위탁으로 해결

검토안의 용도는 공사 고위층의 의사결정용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의 업무가 정규직과 동일한지 여부를 따지고 이에 따라 대책을 만들었는데 구체적으로 1안과 2안을 제시하고 있다. 검토안은 1안을 적절한 대책으로 제안했고, 2안에 대해서는 “비정규직보호법안에 대한 능동적 대처 방안이 되지 못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내용은 공사가 각 라인을 통해 치밀하게 점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안을 ‘주관본부 검토안 중 일부’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내용이 몇단계의 검토를 거쳐 올라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토안의 고민 지점은 명확했다. 국회 계류중인 비정규법안에서 고용에 대한 의무가 생기는 2년 이상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다. 공사는 비정규직을 2년 초과 때마다 정규직으로 간주하면 인력운용상 부담이 늘고, 2년 마다 인력을 교체하면 고용불안과 노무관리 부담이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연히 해법은 ‘보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차별을 없애는 게 아니라 아예 외주위탁을 통해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구분을 명확히 해서 업무를 위탁하고 위탁이 곤란하면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으로 일원화 한다는 것이다.

또 불가피하게 비정규직 운용이 필요한 분야는 별도직종을 신설하거나 ‘무기근로 계약화’를 검토한다고 제시했다. 별도직종을 신설하면 비교할 정규직이 없어져 차별시정 자체가 무력화된다. 아울러 ‘무기근로 계약화’는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하되 정규직 수준으로 처우를 개선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비정규법 이렇게 빠져나가면 된다?

방향이 이러니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실제로 공사는 정규직화를 덜 시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몽땅 외주화하는 것을 제쳐두고도 현재 비정규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일업무가 아닌 유사업무나 단독업무를 하고 있을 경우 이 방법을 이용했다.

바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4조에 규정돼 있는 예외허용 조항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 비정규 검토안을 관통하는 독특한 처방은 ‘고령자 고용’이다. 현재 계류중인 비정규법안에는 55세 이상의 고령자는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유기(有期) 사업도 정규직화를 피할 수 있는 우산으로 제시됐다.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하는 경우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이용된 것이다. 동차 및 객차의 급수, 배수, 동파방지 등은 겨울철에만 한시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동일하다고 본 역무나 수송은 외주화의 길을 걷고 차량과 시설, 전기 분야는 비정규직을 그대로 쓰되 고령자로 바꾸겠다는 대책이다.

20%만 정규직 전환…2008년엔 정규직도 외주화

결국 공사는 2,218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451명만 2007년 1월1일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밝히고 있다. 최대치가 그렇다.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분야도 기존 정규직만 남겨놓는 방식으로 일원화하고 비정규직은 단순업무에 재배치시킨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많아봐야 20%만 정규직 전환대상이 되고 나머지 2,000명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은 외주위탁 되는 셈이다.<표 참조>


문제는 2008년 1월1일까지 기존 업무도 위탁업체로 일원화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방송업무의 경우 2007년에 모두 외주화되고 1, 2급역의 매표, 개집표 안내, 홈 안내 인원 648명의 정규직이 수행하는 업무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새마을호 열차승무원의 경우 이미 KTX관광레저에 위탁추진 방침을 정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비정규 검토안은 새마을호 열차 승무원 115명이 정규직과 유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 모두를 2007년 1월1일까지 외주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게 검토안의 의견이다. 위탁업체는 KTX관광레저로 명시돼 있고 이미 올해 이런 방침이 결정됐다고 검토안은 밝히고 있다.

한편, 이에 대해 철도공사는 “자료는 관련부서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마련된 것 중 하나이며 비정규직에 대한 운영방안에 대한 구체적 방침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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