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시끄럽다. 지난 11월2일 열린 산별대표자회의 분위기와 결과를 두고 <매일노동뉴스>는 ‘한국노총 최대위기’라는 자극적인 제목까지 뽑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한국노총의 위기'라는 <매일노동뉴스>의 기사 제목에 공감한다.

요즘 논란의 핵심은 한국노총이 현 시점에서 노사정위에 다시 복귀하는 것이 맞는가, 더 나아가 복귀 여부를 떠나 이러한 논의를 촉발시킨 것이 현시점에서 과연 올바른 행위였는가 하는 부분인 것 같다. 이같은 논란 속에서 현재 한국노총 내 6개 제조산별 위원장은 한시적 한국노총 행사불참을 선언한 상태다. 7과 8일에 7백여 명 가까운 단위노조 대표자가 운집한 한국노총 단위노조대표자워크숍에도 이들 6개 제조산별 위원장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단히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기에 위기국면을 시급히 정리하고 통큰 단결을 통해 하나 되어 진군하는 한국노총을 바라는 마음, 호소하는 심정으로 못쓰는 글이지만 이참에 한번 써보기로 어려운 작심을 했다.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켰던 한국노총의 저력을 믿으면서.

김대환 장관 퇴진 없이 노정관계 회복은 어렵다

이 글의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한다면, 한국노총 비정규연대회의와 비정규노동자들은 김대환 장관의 퇴진과 노정관계의 회복, 비정규보호입법 쟁취 등 한국노총의 요구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노사정위 복귀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 시점에서 노사정위 복귀 논의 등의 이야기가 공론화된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제조산별의 한시적 노총행사 불참선언도 부적절한 처사이며 이의 철회를 호소하고자 한다. 한국노총 6개 제조산별은 지난 4일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노총의 진정한 개혁과 제조업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적극 앞장설 것을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 상황에서 논리와 명분이 대단히 취약해 보인다. 물론 노동조합이 현안문제 해결을 위해 뭉치겠다는 점과 중소사업장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들의 성격을 볼 때 연대를 활성화하는 것에 이의를 달 이유는 없다. 오히려 같은 노동진영에서는 쌍수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일개 비정규노동운동가는 송구스럽고 불손하게도 이번 연대에 몇가지 비판을 안 할 수 없다.

또한 이번 제조산별의 ‘연대시도’는 현장과 노동운동 진영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즉 이번 제조연대의 ‘위원장단 상층연대’는 진정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현 노총 지도부의 노선에 대항하고 안티를 걸기 위한 제조산별 위원장들의 ‘집단행동’에 다름아닌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슨 일이든 위기를 극복해가려면 그 위기가 오게 된 전후과정에 대한 진단과 이를 통한 냉철한 처방이 있어야 한다. 나는 현재 제조업 노동운동의 위기를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즉 현재 국면이 위기라면 그 핵심적인 요인은 원청과 하청, 불법파견과 계약직 등 비정규노동자들의 급격한 증가와 자본의 감시와 탄압 이에 따른 갈등과 소외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만의 분석이 아니라 대다수 노동계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조산별 성명서를 샅샅이 뒤져봐도 여기에 대한 분석과 대응에 대한 시도는 없고 현 한국노총 집행부에 대한 성토만이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진정 위기극복을 해나가기 위한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은 아닌 듯하다.

한국노총 제조산별에는 원청도 많지만 하청이나 중소영세사업장들이 많다. 지금은 이들 노조에 대한 산별전환 노력과 비정규노동자 포괄노력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할 시점이지, 현재의 무능력한 노사정위가 한국노총 제조업 공동화문제에 대한 적절한 처방과 대안을 모색해 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것은 정부가 일방적 비정규 개악안을 국회에 넘기기 전 이미 수년 동안 노사정위에 비정규특위를 만들어 논의를 진행해봤지만 결국 남은 것은 처절한 배신감과 공허함, 시간낭비밖에 없더라는 경험에서 드리는 말씀이다.

비정규 협상 앞두고 노사정 복귀 논의는 옳지 않아

따라서 나는 한국노총 전 산별연맹위원장님들, 간부들께 호소한다.

노사정위 탈퇴 상태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논의를 일절 말아 말아주셨으면 한다. 한국노총은 지난번에 노사정위나 노동위원회의 재편이나 세부 문제점을 지적하며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노정관계 파탄의 책임을 물어 현행 비정규개악안 제출 등 독선적 노동정책의 수정과 김대환 장관의 퇴진 등을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탈퇴한 것이다.

노정관계와 비정규투쟁은 이제 올해말과 내년초를 고비로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날 것이며 이에 따른 대단히 중요하고 치열한 막바지 힘겨루기가 전개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를 알고 있을 김대환 노동부장관과 그 밑의 관료들은 갖은 얄팍한 잔머리와 비열한 이간책을 진행해 나갈 것이 명확하다. 비정규 관련 입법안과 이와 관련된 투쟁, 그리고 현재의 노정국면 대치상황과 노사정위 탈퇴 등 일련의 과정이 정규직노조와 정규직노동자들에게 다소의 불편함이 있었다면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생명을 연장하고 이땅에서 숨쉬고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비정규관련 법만 놓고 봐도 그렇다. 법이란 게 어떤가. 일단 악법이라도 만들어지면 그땐 정말 싸우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정치권과 관료들은 일단 법이 통과되면 ‘시행도 안된 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냐’고 윽박지를 것이다. 일단 악법이 시행이 됐다 치자. 그럼 이번엔 또 ‘시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법을 어떻게 바꾸냐’고 말을 바꿀 것이다.

그 다음 시간이 지나면 또 뭐라도 말을 바꿀까.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갖가지 비정규노동자들의 고통과 현장의 갈등양상에 대해 ‘시행초기 법과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이라고 포장할 것이다. 이 고통과 투쟁의 나날을 거치며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소외가 고착화 돼버리고 비정규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몬 채 우리들의 투쟁이 잔인하게 진압이라도 된다면 그땐, ‘봐라, 이제야 법과 제도가 제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고 의기양양해 질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뻔히 예견될진대 지금 노사정위를 들어간다는 것은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게 되는 ‘소탐대실’의 전형이 될 것이다.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고 아찔한 일이다.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쪽을 편들고 선택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다. ‘순망치한’의 관계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만들고 이를 고착화시키려는 자본과 정권, 자본의 언론만이 둘의 관계를 이간질하고 본질을 왜곡하며 거짓선전으로 노동자들과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노총, 이제 단결할 때

하기에 이제 비정규노동자의 권익보호와 조직화 활동에 박차를 가해 주실 것을 호소한다. 비정규노동이 한국사회를 판치고 있는 속에서도 가장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 제조업 아닌가. 단위노조 워크숍 자리에서 만난 제조업 정규직노조위원장은 뒷풀이 자리에서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임단협 자리에서 사측은 딴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정규직 자체를 무슨 벼슬하나 내어준 양 몰아세우는데 비정규 문제가 남의 일도 멀리 있는 일도 아니란 심각한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말씀 더 드리고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향후 2~3개월은 한국노총뿐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의 사활이 걸렸다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혹자들은 이번 사태를 ‘적전분열’이라고 비판한다. 지금이야말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한국노총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때다. 한국노총 모든 산별대표자 동지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지금은 한국노총 집행부를 중심으로 대동단결하여 마지막 결전을 치를 때이다. 혹시 내부적으로 해소해야 할 갈등이 존재한다손 치더라도,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다른 주장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단결할 때이다.

지금 한국노총 모든 조합원들의 눈이 산별위원장들을 향해 있다. 한국노총의 단결을 위한 모든 산별위원장들의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산별위원장들과 함께 투쟁의 전선에서 만나뵐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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