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은 지금 위기다. 위기를 방치한 지도부는 총사퇴했다. 당으로서는 창당으로부터 5년, 국민승리21로부터 8년 세월 동안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정치적 파격을 처음 겪는 셈이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민주노동당은 두 가지 큰 운동의 흐름 위에 서 있다. 그 하나는 통일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이다. 거칠게 이야기 하면 80~90년대를 관통하면서 대중화되고 강력한 사회적 파장을 낳았던 한국사회 역동성의 양대축이 오늘날 당의 정치적, 철학적, 인적, 물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할 수 있다. 96~97 노동법 날치기 저지 총파업이 없었더라면, 혹은 권영길 전 대표가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아니었다면, 또 민주노총이 진보정당의 창당을 결의하고 실천하지 않았더라면, 민주노동당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민주노총이 없었더라면 민주노동당은 없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통일운동은 한국사회의 또하나의 역동성이었다. 분단은 우리사회의 질곡이었지만 분단을 극복하려는 끝없는 시도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오는 힘이었다. 통일운동에 헌신해 왔던 많은 세력들이 당에 결합하게 되어 당은 한국사회 역동성의 또다른 한 축을 온전히 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지난 20년 동안 추동해온 ‘노동운동과 통일운동’, ‘계급과 민족’, ‘해방과 통일’을 고스란히 당의 토대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민주노동당의 행운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엊그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오늘은 부패해서 몸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지난날 민주노동당의 큰 동력과 존재이유였던 것들이 오늘은 극복과 혁신의 대상이 되어 있다. 두 개의 토대가 두 개의 질곡으로 변화했고 당은 이 질곡을 능동적으로 혁신하고 변화시켜내지 못한 채 낡은 토대 위에 어정쩡하게 서 있기만 했던 것이다.

진보정당에 존재해서는 안 될 두 개의 성역

적어도 진보정당 안에 불가침성역이란 존재해선 안 된다. 모든 것이 비판의 대상이어야 하고 검토와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에서는 두 가지의 불가침성역이 존재해 왔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는 불경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과 질타를 이야기 하는 것 역시 불경죄에 해당한다.

당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성역은 부정되어져야 한다. 민중들은 민주노동당이 북한과 민주노총 집행부에 대해 매섭게 비판하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꿀먹은 벙어리 태도만 보이고 있는 민주노동당에게서 지역감정과 색깔론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나라당에게 느끼는 답답함과 한계를 보았을 것이다.

‘노동운동’을 위해서라도 ‘노조운동’, 특히 민주노총(집행부)에 대한 비판과 질타가 가능해야 한다. 노동운동에 대한 발언은 노무현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먼저 건넸어야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모색’일 수 있었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혐의 사건에 대해 당이 즉각적이고 냉엄한 입장을 내지 못했던 것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입장이 먼저 확정되어야 한다’며 기다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이 먼저 철저한 비판적 입장을 내놓았다면 민주노총 집행부가 ‘위원장 사임-번복-총사퇴’ 라는 혼란의 수순을 밟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당이 민주노총에 대해 애정어린 비판을 삼가고 있는 사이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남의 당’ 취급당하는 처지에 놓였고 민주노총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다른 성역도 무너져야 한다. 당 강령정신에 위배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발언에 대해서조차 한마디 문제제기를 못하는 정당을 지지할 국민들은 없다. 피랍어부들의 송환문제, 탈북자인권문제, 노동3권과 민주주의 문제 등 북한체제에 대한 당 의견을 공식화, 공론화 할 필요가 있다. 더이상 북한이 불쾌해 한다는 이유로 언급을 회피해서는 안 될 과제들이다.

변화와 역동성을 위해 혁신해야 할 것들

한국사회는 ‘변화와 역동성’을 기반으로 해서 발전해왔다. 변화하지 못하고 역동적이지 못한 세력은 도태되고 그것을 주도하는 인물과 세력들은 살아남았다.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변화와 역동성’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 혁신의 대상으로 놓여 있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원내진출 이후 너무 빨리 찾아온 위기가 오히려 우리에게는 기회이다. 혁신해야 할 것들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앞서 이야기 했듯이 과거로부터 온 두 개의 성역을 깨뜨려야 한다. 노동운동, 구체적으로 민주노총과의 관계도 혁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동할당제’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계급할당’의 근본정신이 왜곡되어 ‘민주노총할당제’조차도 아닌 ‘민주노총 및 각 산별연맹 집행부할당’으로 전락한 할당제는 바뀌어야 마땅하다. 소수자 배려라는 할당제도의 근본취지에 맞게 민주노총과 전농의 할당비율은 과감히 축소되어야 하고 양대 조직에 할당된 대의기관의 할당수는 집행부의 일방적 배정이 아니라 ‘민주적 선출’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노동자들의 정치적 대표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민주적 선출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현장분회를 강화하고 조합원 당원들의 정치대표자 선출권한을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북한이 밝히는 다양한 국제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지지와 비판이 동시에 가능한 정당이 되어야 한다. ‘인권’의 눈으로 보는 ‘북의 탈북자, 노동3권, 피랍어부 문제’에 대해 당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정파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정파의 폐해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공개되지 않은 정파는 물론 공개된 정파들조차 지도부는 선출되지 않는다. 선출되지 않는 지도부가 자기조직 활동가들을 통해 당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다. 그 과정은 전혀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파활동의 양성화를 통해 일정한 룰에 의해 당원들에게 공개되고 책임지는 정파활동이 보장되어야 더이상 ‘무책임이 만연한 정치’가 당내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당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이 책임지고 당은 연대한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세계 어느 진보세력도 ‘사회모순의 핵심’을 비껴서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민주노동당이 과감한 재정과 사람의 배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자기책임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당의 전환적 태도가 없으면 집권은 커녕 재도약도 없다는 각오가 요구된다.

선명한 ‘좌파대중정당’노선을 견지해야 한다

한국정치에 우파와 중도세력은 차고 넘친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그중 조금 더 개혁적인 중도가 아니라 철학적 정책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정치세력이다. 대중들은 민주노동당에게 그것을 원했는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열린우리당의 이중대’를 운운했다. 지지했던 대중들이 고개를 모로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른바 ‘실개천과 한강론’이 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르지만 민주노동당과 두 정당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고 우리는 주장해 왔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노무현이 한나라당과 열린당이 연정하자고 제안하면 ‘정신없는 제안’으로 일축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열린당이 연정한다고 하면 제법 그럴듯하게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세력 내 형식적 개혁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과 그다지 차별없는 정치활동을 벌여 왔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역동성을 잃어버린 당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랑도 변하고 진보의 가치관도 변한다. 변화하는 세상을 앞질러 가고 진보적 가치관을 다수화하려면 민주노동당도 변화해야 한다. 역동성을 잃어버린 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여러 기존정당 중 하나로 전락할 뿐이다. 당 혁신의 방향은 한국사회 변화와 역동성을 우리가 선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정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감하게 혁신하고 주장하고 실천하는 민주노동당만이 새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단이 총사퇴했다. 원내진출 이후 1년반, 당활동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의 표현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는 아직 충분치 않다는 게 당 안팎의 지적이다. 창당 때부터 민주노동당을 밑바닥에서 꾸려 왔던 여러 활동가들이 진단하는 '민주노동당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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