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 가지를 명확히 하자.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그것이 사퇴라는 극단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안타깝지만 분명 이는 당운동에 있어 하나의 발전이다. 최고위원회는 사퇴를 둘러싼 자잘한 시비를 넘어 당은 국민을 보며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점, 지도부는 자신의 활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우리 앞에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의 결단을 통해 당 위기 극복의 계기를 창출하려는 적극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민주노동당 당사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를 놓았다. 이제 김혜경 전 대표와 1기 최고위원들은 스스로의 결단으로 상당기간 최고지도부를 떠나게 됐다. 그러나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들에게 아래로부터, 노동자·서민들 속에서 최고 지도력으로 재기하는 민주노동당 당원다운 모습을 기대하게 됐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당은 자기 혁신의 과제를 진지하고 치열하게 모색해야 할 숙제를 받아 안게 되었다.

목표와 과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

우리는 전당적인 토론을 통해 당의 중·장기적 목표, 현시기 과제, 이를 위한 핵심 수단 등을 합의한 바 없다. 2012년 집권이 당의 목표인지, 2012년 제1야당이 당의 목표인지 불분명했다. 외연을 넓히고 여러 쟁점에 개입하며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것을 당활동의 주요 내용과 방식으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핵심 지지층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사회경제적 의제를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의 독자노선을 분명히 하는 활동에 원내외가 집중하는 것을 당의 주요한 활동으로 할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당은 우왕좌왕 했고 당원은 분열했다. 반면 과거 우리는 원내진출이라는 공유된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아니, 최고위원회와 의원단은 2012년 집권, 외연 확대, 타당 특히, 열린우리당과의 공조를 중시했다. 사실상 원내외 지도부는 10석, 3당, 한때 20% 가까이 갔던 당 지지율에 취해 있었다. 진보정치연구소가, 정책위원회가, 당 활동가들이 끊임없이 당의 포지션에 대해 문제제기 했지만, 우리 실력에 맞춘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했지만, 당의 내실을 다질 때라고 이야기했지만, ‘모르쇠’였다.

최고위원회는 이라크파병 반대와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단식까지 하며 ‘올인’했다. 열린우리당 '2중대' 소리도 감내했다. 의원단 역시 노동부 묵인 하에 최저임금이 사용자측에 가까운 안으로 결정될 때 열린우리당과 싸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도와 윤광웅 국방부장관 해임건의안 반대에 공조했다. 반면 최고위원회와 의원단은 지지층 결집을 이룰 수 있는 핵심적 사안이었던 부동산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에 총력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의 목표를 분명히 하자. 우리는 늘 집권을 꿈꾸고 이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지만 이것을 지금 당장의 프로그램으로 올려선 안 된다. 당을 미아로 만들어 위기로 몰아넣기 쉽다. 대중 선동용으로는 어떠한지 모르지만 과학적인 당의 목표일 수는 없다. 2012년 제1야당을 우리의 분명한 목표로 하자. 이를 위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 빈곤 문제 해결에 전력 집중하고 이에 대한 진보정당다운 해결책을 정치적,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내는 일에 총집중하자. 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과는 다른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대중적으로 형성하자. 민주노동당 역시 지난 총선에서 길 가다가 지갑을 주웠다는 사실을 이젠 인정하자.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위기 극복은 동전의 양면

계급적 단결을 실현하는 강력한 노동조합 없이 한국 자본주의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의 집권은 불가능하다. 아니 가능하다 할지라도 부실집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민주노조 운동을 대변하는 민주노총의 미래는 당에 사활적이다.

일련의 노조 비리, 비정규직 관련 정규직과의 갈등들이 당에 바로 악영향을 미쳤다. 당과 민주노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사실, IMF 이후 비정규직 문제 등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를 민주노총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계속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이것이 곧 당의 위기로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고한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당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반면, 당은 96~97년 이후 민주노총이 확보한 사회적 위상, 인적·재정적 자원들만 탐을 내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지 민주노총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진지하게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과 노조의 동반 위기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민주노총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 당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위기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제 큰 만큼 자신을 키운 민주노총에 보은할 때도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노조의 도덕성 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사관계 로드맵, 2006년~2007년 산별전환 문제 등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당에서 유행하는 ‘민주노총 잘못에 대해 쓴 소리를 해야 한다’, ‘노동할당을 재론해야 한다’, ‘민주노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들은 이 전제 하에서 논의되었을 때만 유의미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까지는 민주노총이라는 옛사랑에 기생하는 ‘<민주노총>당’이었다면, 이제는 그 옛사랑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들며 그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민주노총<당>’이어야한다”는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의 주장은 너무나 정당하다.

진보적 가치의 분출은 포기할 수 없는 민주노동당의 본성

최고위원회는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성소수자 위원회(준)를 인준했다. 여성위원회조차도 남성 당직자에 의한 여성 당직자 성폭력 사건 해결에 충분히, 적극적으로 주도성을 발휘하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지대화라는 당론은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반전 평화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독도에 군대를 주둔시키자고 했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소수자 부문 할당 확대는 해결의 기미가 없다.

이 일들이 지난 2년동안 벌어진 일들이다. 이 과정에서 당은 상처 입었고 당원들은 분열되었다. 얼마나 한심했으면, 아니, 걱정되었으면 제발 공부하라고 홍세화 선생이 이야기를 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진보적 정체성과 연관된 심각한 위기이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가치를 사회에 확산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정당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많은 논란과 시행착오를 겪었고 여전히 다 해소된 건 아니지만 여성할당제를 통해 한국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리고 우리 당원들은 그런 민주노동당을 자랑스럽게 여겨 왔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가치를 당내외적으로 분출시키는 진보정당 본연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당내 제반의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는 가운데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진보적인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그랬을 때 민주노동당은 비로서 진보적 가치를 전파하고 선도하는 자기 역할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당원들 활력을 높여야 민주노동당이 산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투표율 50% 넘기기 쉽지 않은 상황, 어떤 모임이든 4,5회 연락을 해도 20~30%당원을 참석시키기가 쉽지 않은 상황, 아니, 간부들조차 4,5회 연락을 해야 운영위원회 과반이 성립하는 상황, 분회 모임이든 서명운동이든 투쟁이든 선거 운동이든 다 통틀어 1년에 1회 이상 당 활동에 참여하는 당원이 30%가 못 되는 상황이 민주노동당 상황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강령을 접해보지 못한 당원들이 점점 늘어가는 상황이 현 민주노동당 상황이다. 어떤 투표에서 누구한테 투표할지 모르는 채 당직선거를 치르는 당원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상황이 민주노동당 상황이다.

능동적인 당원들은 사회의 다양한 계급계층과 민주노동당을 이어주는 수로이다. 당을 소수 명망가의 것이 아니라 다수 노동자, 서민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이다. 반면 침묵하는 당원들이 많으면 그 정당은 진보정당으로서 생명력이 다한 정당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아주 심각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당원들이 당론 형성, 당의 제반 활동에 대한 제안과 평가 작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일상적인 의사수렴구조를 제도화하자. 정치 활동 방식을 바꿔 당원들 참여를 높여내자. 노조의 일상 활동으로 민주노동당의 정치 활동이 자리잡도록 하자는 김종철 전 최고위원의 제안, 특별 분회를 적극 활성화하여 당원들의 다양한 처지와 조건(그리고 취미)에 맞춰 자신의 단위를 형성하고 발언하고 활동하게 해야 한다는 제안들을 적극 수용하자.

또한 중앙당 사업을 받아 상근자 중심으로 서명운동 하다 1년 보내는 지역위원회 정치활동도 바꾸자. 이제 지역위원회 정치 활동의 중심을 당원들의 활발한 참여에 근거하여 지역 의제를 찾고 형성하며 민주노동당의 진지를 지역에 세워가는 것으로 과감히 옮기자.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당원 교육을 강화하자. 매달 전 당원을 대상으로 학습지를 발행하고 신규 가입 당원들부터 교육을 받고 당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자.

당 지도부 사퇴를 보며 드는 몇가지 생각을 써봤다. 마지막으로 당 비대위에 대한 바람을 전하며 글을 맺는다. 비대위는 비정규직 문제, 쌀 문제 등 당면 투쟁과 더불어 당 혁신의 중요한 계기를 창출해야 한다. 비대위는 당의 위기가 무엇이며 그 성격이 어떠한지, 그 해결 방향은 어떠한지에 대한 당내외 의견들을 취합하고 그 가닥을 잡아 차기 최고위원회가 당 혁신의 기관차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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