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는 이런 사항들을 중심으로 교섭에 대한 평가와 현재 은행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등을 정리, 연재한다.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다. <편집자 주>
|
"과도한 잡무와 고객들에 대한 상품 권유등으로 퇴근시간이 지나치게 늦어 엉뚱하게도 행원 가족들간의 불화가 심화되어 글을 올립니다. 규정 시간에 퇴근시켜 달라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20시 이전에는 퇴근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최근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홈페이지에는 은행원의 부인이 쓴 '제발 일찍 퇴근 좀 하게 해주세요'라는 글 내용 중 일부다. 이른바 은행전쟁(bank war) 시대에 살고 있는 은행 노동자들은 주주이익 극대화와 단기업적주의에 내몰리면서 이들의 업무량이 과도함을 넘어서고 있다.
은행 시간외 수당 형식적인 수준
금융노조는 산별교섭을 앞두고 지난 5월과 6월 조합원 1,234명을 대상으로 '금융노동자 근로시간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금융기관 노동자들의 평균 출근시간은 오전 8시31분이며 퇴근시간은 오후 7시52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점심시간의 경우 40분을 사용한다는 답변이 51.5%로 가장 많았고 30분 26.3%, 50분이상이 15.9%, 20분이 5.7%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점심시간 사용방법에 대해 정규직은 교대사용(56.2%)을, 비정규직은 규정된 시간사용(64.9%)를 선호했다는 것.
금융노조는 이러한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산별교섭에서 '중식시간 영업금지'와 근로기준법에 기초해 주당 12시간 이내에서 시간외 근로를 사용하도록 할 것, 시간외 수당지급, 장기근속에 따른 안식년 휴가 실시 등을 요구했다.
공광규 금융노조 정책실장은 "수년간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력감축과 실적 압박 등으로 시간외 근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하지만 이러한 실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시간외 근로수당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조흥은행의 경우 5시간, 국민은행 9시간, 농협중앙회 8시간, 신용보증기금 13시간 등 일괄적으로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실제 은행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금융노조와 은행쪽은 올해 교섭을 통해 시간외 수당에 갈음해 보상휴가를 갈 수 있도록 합의했다. 즉, 정해진 시간외 근로를 넘어설 경우 사용자쪽은 휴가로 이를 보상을 해준다는 것.
수조원 버는 산업이 고용창출은 없어
하지만 이러한 노사의 합의가 현재 은행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데 있어서 많이 모자라다는 게 금융계 주변의 평가다. 최근 은행들이 너도나도 시행하고 있는 '정시 퇴근의 날'과 같이 '보상휴가' 역시 '노동강도 완화'와 '삶의 질 개선'에 있어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에 다니고 있는 입행 8년차인 한 은행원은 "휴가를 다녀오든, 일주일에 하루 일찍 퇴근을 하든지 간에 내가 해야 할 업무는 줄어들지 않는다"며 "지점에서는 인력이 모자라 노동강도가 높아진 것이기 때문에 제일 필요한 것은 인력 충원"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노조의 설문조사에서도 시간외 근무 발생 원인에 대해 '업무량이 많고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71.9%로 가장 많았다. 이외에 '불필요한 업무'가 14.3%, 상사와 동료의 눈치 때문이 7.5%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은행은 신규채용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모자라는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채우기 때문에 조직형태는 책임자가 일반행원보다 더많은 다이아몬드형으로 바뀌었다.
지난 1월 500여명을 명예퇴직 시킨 조흥은행의 경우에도 신한은행과의 합병을 앞두고 노동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고정환 조흥은행지부 홍보부장은 "최근 3년 동안 한 명도 신규채용을 하지 않았다"며 "은행의 경우 1년 자연감소분이 100여명 정도로 봤을 때 매년 200명 정도의 신규인력 채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환은행지부의 경우 지난 5월 전 조합원에게 '근무시간 기록부'를 배포해 시간외 근무 통계 작업에 들어갔다. 외환지부는 통계 내용을 토대로 조만간 은행과 노사협의회를 통해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촉구할 계획이다. 김보헌 전문위원은 "지난해 은행은 '은행내 잉여인력이 있다'며 500여명을 감원하고 250명을 특수영업팀으로 발령했지만 그후 오히려 영업점들은 인력부족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조에 가까운 수익을 얻고 올해는 그 이상의 수익이 예상되는 은행들이 고용창출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노조 한 지부의 관계자는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은행이 고용창출에는 관심이 없고 정규직 쥐어짜기와 비정규직 확대를 통해 더많은 이익을 내려하고 있다"며 "노조 역시 이 점을 지적하고 바꾸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