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사가 올해 산별교섭을 마무리 짓고 24일 조인식을 갖기로 했다. 금융노조는 특히 올해 단체협약 개정안과 관련해 조합원들의 고용안정 확보, 실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철폐, 금융부분의 사회적 책무 강화와 금융공공성 회복을 가장 큰 이슈로 삼았다.

<매일노동뉴스>는 이런 사항들을 중심으로 교섭에 대한 평가와 현재 은행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등을 정리, 연재한다.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다. <편집자 주>

기획연재 순서
1.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금융노동자
2. 비정규직 처우개선 '화려한 시작'…'미미한 결과'
3. 과도한 노동강도 "정시에 퇴근한 지 오래"
4. 금융공공성 회복 '명분'은 내세웠지만…
5. 금융노조 산별교섭 총괄 평가



"과도한 잡무와 고객들에 대한 상품 권유등으로 퇴근시간이 지나치게 늦어 엉뚱하게도 행원 가족들간의 불화가 심화되어 글을 올립니다. 규정 시간에 퇴근시켜 달라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20시 이전에는 퇴근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최근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홈페이지에는 은행원의 부인이 쓴 '제발 일찍 퇴근 좀 하게 해주세요'라는 글 내용 중 일부다. 이른바 은행전쟁(bank war) 시대에 살고 있는 은행 노동자들은 주주이익 극대화와 단기업적주의에 내몰리면서 이들의 업무량이 과도함을 넘어서고 있다.


은행 시간외 수당 형식적인 수준

금융노조는 산별교섭을 앞두고 지난 5월과 6월 조합원 1,234명을 대상으로 '금융노동자 근로시간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금융기관 노동자들의 평균 출근시간은 오전 8시31분이며 퇴근시간은 오후 7시52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점심시간의 경우 40분을 사용한다는 답변이 51.5%로 가장 많았고 30분 26.3%, 50분이상이 15.9%, 20분이 5.7%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점심시간 사용방법에 대해 정규직은 교대사용(56.2%)을, 비정규직은 규정된 시간사용(64.9%)를 선호했다는 것.

금융노조는 이러한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산별교섭에서 '중식시간 영업금지'와 근로기준법에 기초해 주당 12시간 이내에서 시간외 근로를 사용하도록 할 것, 시간외 수당지급, 장기근속에 따른 안식년 휴가 실시 등을 요구했다.

공광규 금융노조 정책실장은 "수년간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력감축과 실적 압박 등으로 시간외 근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하지만 이러한 실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시간외 근로수당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조흥은행의 경우 5시간, 국민은행 9시간, 농협중앙회 8시간, 신용보증기금 13시간 등 일괄적으로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실제 은행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금융노조와 은행쪽은 올해 교섭을 통해 시간외 수당에 갈음해 보상휴가를 갈 수 있도록 합의했다. 즉, 정해진 시간외 근로를 넘어설 경우 사용자쪽은 휴가로 이를 보상을 해준다는 것.


수조원 버는 산업이 고용창출은 없어

하지만 이러한 노사의 합의가 현재 은행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데 있어서 많이 모자라다는 게 금융계 주변의 평가다. 최근 은행들이 너도나도 시행하고 있는 '정시 퇴근의 날'과 같이 '보상휴가' 역시 '노동강도 완화'와 '삶의 질 개선'에 있어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에 다니고 있는 입행 8년차인 한 은행원은 "휴가를 다녀오든, 일주일에 하루 일찍 퇴근을 하든지 간에 내가 해야 할 업무는 줄어들지 않는다"며 "지점에서는 인력이 모자라 노동강도가 높아진 것이기 때문에 제일 필요한 것은 인력 충원"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노조의 설문조사에서도 시간외 근무 발생 원인에 대해 '업무량이 많고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71.9%로 가장 많았다. 이외에 '불필요한 업무'가 14.3%, 상사와 동료의 눈치 때문이 7.5%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은행은 신규채용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모자라는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채우기 때문에 조직형태는 책임자가 일반행원보다 더많은 다이아몬드형으로 바뀌었다.

지난 1월 500여명을 명예퇴직 시킨 조흥은행의 경우에도 신한은행과의 합병을 앞두고 노동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고정환 조흥은행지부 홍보부장은 "최근 3년 동안 한 명도 신규채용을 하지 않았다"며 "은행의 경우 1년 자연감소분이 100여명 정도로 봤을 때 매년 200명 정도의 신규인력 채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환은행지부의 경우 지난 5월 전 조합원에게 '근무시간 기록부'를 배포해 시간외 근무 통계 작업에 들어갔다. 외환지부는 통계 내용을 토대로 조만간 은행과 노사협의회를 통해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촉구할 계획이다. 김보헌 전문위원은 "지난해 은행은 '은행내 잉여인력이 있다'며 500여명을 감원하고 250명을 특수영업팀으로 발령했지만 그후 오히려 영업점들은 인력부족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조에 가까운 수익을 얻고 올해는 그 이상의 수익이 예상되는 은행들이 고용창출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노조 한 지부의 관계자는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은행이 고용창출에는 관심이 없고 정규직 쥐어짜기와 비정규직 확대를 통해 더많은 이익을 내려하고 있다"며 "노조 역시 이 점을 지적하고 바꾸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정의 날' 캠페인 형식적일 뿐"
각 은행 매주 1회 가정의 날 실시하지만 은행원 '시큰둥'
최근 은행들은 '가정의 날', '정시 퇴근의 날' 등의 이름으로 직원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제 시간에 퇴근하도록 하고 있다.


조흥은행의 경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주2회는 정시 퇴근시각인 오후 6시30분에 무조건 퇴근하도록 하고 있고 신한은행도 매주 수요일을 야근, 회식, 약속이 없는 '삼무(三無) 데이'로 정해 시행하고 있다. 대구은행과 하나은행도 매달 둘째 수요일을 정시퇴근의 날로 정해 오후 5시30분 퇴근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매주 수요일을 `금주의 날`로 정한 우리은행은 직원들에게 술먹을 시간에 일찍 퇴근해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처럼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정시 퇴근의 날'을 정하는 것은 은행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높기 때문이다.


ㅎ은행 영업점에 근무하고 있는 김모 대리의 경우 월말이 가까워질수록 퇴근시간이 늦춰지고 있다. 김 대리는 매월 20일께부터는 밤9시가 넘어서 퇴근하다가 25일이 지나면 10시를 넘어 자정까지 근무할 때도 있다.


한국씨티은행 내 한미은행노조가 쟁의행위의 일환으로 '정시 출퇴근 투쟁'을 벌일 정도로 은행의 노동강도는 심각하다.


하지만 은행들의 이러한 '캠페인'은 '형식적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흥은행지부 관계자는 "가정의 날이라고 해서 하루 일찍 들어가라고 하지만 형식적일 뿐 실제로 일찍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단지 눈치 보지 않고 '가급적' 일찍 들어갈 수 있는 날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러한 심각한 노동강도에 대해 단기업적주의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중은행의 과장급 은행원은 “실적 위주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카드·펀드·보험 등 금융상품 판매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며 "영업시간이 끝나도 고객에게 판매할 금융상품을 숙지해야 하고, 대출업체의 신용을 평가해 본점에 보고해야 하는 등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금융노조 공광규 정책실장은 "수십억원의 스톡옵션을 받는 은행장은 말할 것도 없고 임원이나 본부장도 1년 단위 실적으로 평가를 하다보니 임원들은 일선 영업점을 닦달하고 있다"며 "일부 금융사업장에서는 부장과 지점장까지 스톡옵션제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으며 이렇게 될 경우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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