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이 왜 저평가되는지, 저임금을 받는 여성의 삶은 어떤지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 <매일노동뉴스>는 20대부터 60대까지 10명의 여성노동자를 만난 노동사와 생애사를 들여다봤다.

① [70대·60대] 평생 일해도 제대로 인정받은 적 없는 경력
② [50대] 무력한 30년 경력 일용직·최저임금 갈림길에 서다
③ [40대] 양육과 돌봄 회전문에 매인 삶
④ [30대] 경력단절의 시작, 집으로 끌려 들어가는 엄마들
⑤ [20대] “생계 불안에 숨차” 흔들리다 사라진다
⑥ [종합] 유연한 일자리, 성 격차 해소냐 심화냐

30대는 여성 생애주기에서 결혼·출산·육아에 진입하는 단계다. ‘초보 엄마’들의 시간은 아이를 중심으로 흐른다. 물리적으로도 아이 옆을 지킬 수밖에 없다. 자녀 돌봄에 발이 묶인 엄마들은 집 밖을 나서기 어렵다. 여성들은 일을 그만두고, 휴직하거나 노동시간을 줄인다.

9년의 절벽 … “공인중개사·바리스타 등 닥치는 대로 땄다”

임소영(가명·38)씨는 4년 전 구직 당시 가장 먼저 재택근무가 가능한지부터 확인했다. 5살배기 둘째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를 두고 ‘출퇴근하는 직업’을 택할 순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퇴사한 임씨는 줄곧 ‘전업맘’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검수하는 콘텐츠 모더레이터는 낯설지만 매력적이었다. 집에서 4시간(평일 기준)만 일하면 됐기 때문이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임씨는 출퇴근하는 직장인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경기 오산에 위치한 LG전자 협력업체에서 정규직 사원으로 일했다. 노어노문학 전공을 살려 러시아어로 된 매뉴얼 개발과 디자인 업무를 담당했다. 3천만원 초반대 연봉을 받았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2010년 정규근로자 월급여(대졸)는 273만1천원. 임씨 임금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이듬해 결혼한 임씨는 남편을 따라 거주지를 서울로 옮기면서 직장인의 삶을 중단했다. 결혼 3개월 만에 아이가 생겼다. 임신·출산·육아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후순위로 밀렸다. 친정 부모님은 물리적 거리를 이유로, 시부모님은 생업을 이유로 도움을 구할 수 없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나날이 이어지며 임씨의 시간도 흘러갔다. 그러다 세 살 터울의 둘째를 낳게 됐고 출퇴근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기간도 길어졌다.

“그땐 조급하니까 ‘뭐라도 해야지’ 하면서 자격증 공부에 매달렸어요. ‘나중에 뭐라도 써먹을 일이 있겠지’ 하고 공인중개사부터 바리스타까지 닥치는 대로 땄던 것 같아요.”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임씨의 예상과 달리 육아와 병행하며 취득한 자격증은 ‘장롱면허’가 됐다. 중개법인에서 실무경험을 쌓거나 개인사무소를 열어야 하는데 미취학아동 자녀들은 여전히 양육자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단절이 길어지며 불안감도 커졌다. 주말에 컨벤션 행사지원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당 단가를 받는 학습지 채점 업무를 해도 ‘일을 쉬고 있다’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육아만 하다 보니 도태되고 있는 느낌이 강했어요. 나중에 애들이 커서 제가 시간이 생긴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은 거예요.”

서른넷의 임씨는 적극적인 구직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조금은 숨돌릴 틈이 생겼다. 그런데 재택근무에 ‘경력 무관’ ‘나이 무관’ 조건을 더하고 나니 고를 수 있는 일자리는 손에 꼽혔다. 구인공고를 찾고 찾다 유해·불법 온라인 콘텐츠 감시·차단 업무를 하는 프리랜서 콘텐츠 모더레이터에 지원했다. 첫 직장이었던 곳과는 소정근로시간, 고용형태, 업무 내용 모든 게 달랐다. 2010~2011년 초봉 3천만원대를 받았던 그는 9년간 ‘절벽’ 이후 월 100만원 남짓 소득에 만족해야 했다. 최저시급(2020년)을 받고 주 30시간(평일 4시간·주말 10시간) 일한 대가다.

일터에서 사라지는 여성들 … 고용 절벽, 임금도 절벽

여성은 30대가 되면 일터에서 사라진다. ‘2023 여성경제활동백서’에 따르면 2022년 여성 고용률은 25~29세(73.9%)로 정점을 찍고, 30~34세(68.5%) 하향세로 접어든 뒤 35~39세(60.5%)에 ‘뚝’ 떨어진다. 40대부터 다시 상승하는 ‘M자형 곡선’ 형태다. 10년 전인 2012년과 비교했을 때 30~34세, 35~39세 모두 고용률이 각각 13.6%포인트, 6.2%포인트 올랐지만 30대 여성들이 고용 곡선의 골짜기에 갇히는 것은 여전하다.

경력단절은 임금 감소로 직결된다.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실태조사’를 보면 경력단절 당시 일자리 월평균 임금은 263만5천원인데 경력단절 이후 첫 일자리 월평균 임금은 215만2천원으로 48만3천원이나 차이가 난다.

단절을 경험하지 않아도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임금에 영향을 미친다. 임소영씨와 동갑내기인 작업치료사 우시은(38)씨는 임신·출산으로 노동시간을 줄였다. 3년 전 결혼한 그는 이듬해 첫 아이를 낳고 4개월간 육아휴직을 했다. 일터로 복귀한 뒤 곧바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사용했다. 오후 3~4시면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8시간 근무를 3~4시간으로 절반을 줄였다.

노동시간이 감소하면서 임금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3시간 근무로 우씨가 받는 실수령액은 85만원(2023년 12월 기준)이었다. 애초에 임금이 높은 편도 아니었다. 13년간 작업치료사로 일한 우씨의 월 급여총액은 258만원(2022년 6월 기준)이다. 두 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 병원에 ‘정착’한 지 8년이 흘렀는데도 입사 당시 연봉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소 요양병원이라는 사업장 규모와 ‘고연차’ 작업치료사를 꺼리는 업계 분위기가 연봉 정체에 영향을 미쳤다.

우씨는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육아와 가사노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다. 다음달 둘째 출산을 앞둔 그는 “남편도 많이 하는데 육아와 가사는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우씨의 남편은 건당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직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할 때가 많다. 남편이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독박육아’에 내몰린 엄마들은 더더욱 일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일·가정서 ‘이중고’ 시달리며 회복되지 않는 단절

콘텐츠 모더레이터 임소영씨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씨 남편은 ‘9 to 6’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외벌이 가구에서 ‘전업맘’이었던 임씨가 가사·돌봄노동을 전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임씨가 집에 매여 있는 동안 남편은 휴직 없이 경력을 차곡차곡 쌓았고, 무리 없이 승진도 거쳤다.

“남편은 결혼하고 오히려 더 좋아졌죠. 가장이니까 어깨가 무겁긴 하겠지만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그냥 자기 하던 일만 쭉 하면 되니까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외벌이 가구로 지내도 생계에 큰 무리는 없었지만 ‘나의 일’을 되찾고 싶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 정규직이 된 임씨는 최저시급에 각종 수당이 붙어 전보다 조금 오른 임금을 받는다. “디지털상에서 나쁜 것을 걸러주는 필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일로 얻는 보람도 작지 않다. 하지만 10년을 일하든 3년을 일하든 최저시급을 받는다. 경력이 쌓여도 임금이 제자리라는 점은 전과 같다.

재택근무가 가능해 시작했지만 그 조건이 족쇄처럼 작용하기도 했다. 사건·사고가 터지면 하루 2천개씩 올라오는 글을 빠짐없이 모니터링하려면 노트북 앞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야 했다. 2년 전 셋째까지 태어나면서 갓난아이를 업은 채 첫째와 둘째 돌봄을 병행하며 눈과 손은 노트북을 향해야 했던 적도 많았다. 일터에서 집으로 끌려 들어간 30대 여성들은 단절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도 발버둥을 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