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편집 김효정 기자

“이 일을 하다 보니 자주 체하네요.”

수화기 너머의 박희연(50·가명)씨 목소리에서 피로감이 느껴졌다. 시곗바늘은 1월23일 저녁 9시를 조금 넘겼다. 박씨가 일을 마친 건 고작 1~2분 전이다. 전날 오전 통화를 약속했다가 급체를 했다며 약속을 미룬 박씨라서 용태를 물었더니 “괜찮다”며 미안해했다. 방금 일이 끝나 많이 피곤하겠다는 가벼운 물음에 그는 한숨 쉬듯 고충을 털어놨다.

“계속 앉은 상태로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 피로감이 커요. 많은 회원을 관리하면서 회사가 요구하는 부분도 해내야 해서 쉴 시간이 없어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휴식 같은 게 정해져 있지도 않고, 요구한 업무가 있어서 수행하다 보면 화장실 가기도 힘들어요.”

학습지 외피 걷으면 전혀 다른 ‘신종’ 특고

박씨는 초등 스마트 학습지 교사다. 잘 알려진 학습지 방문교사와 하는 업무는 유사하지만 학습지 대신 학습 전용 단말기를 가진 아이를 재택에서 지도한다는 점이 차이다.

사실 학습지 교사라는 호칭상 유사점을 제외하면 박씨의 일과 학습지 방문교사의 일은 차이가 많다. 우선 박씨는 직접 아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코칭’을 한다. 대상은 학부모다. 학습지 회사와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아이가 단말기로 학습지를 푸는 것을 자택 컴퓨터에 설치된 전용 프로그램으로 모니터링하고, 이에 관해 학부모와 전화상으로 학습진도와 방식 등을 ‘코칭’하는 게 일이다. 상품에 따라서는 전화통화 외에도 화상으로 아이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임금체계도 다르다. 학습지교사는 담당 과목 수량에 따라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다. 학습지교사에서 파생한 새로운 학습지 사업모델인 러닝센터도 가정방문을 하던 학습지교사와 달리 아이들이 정해진 러닝센터를 방문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역시 한 교사가 담당한 과목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체계다.

3분 통화 1건에 몇 천원, 하루 30통 이상 매달려

그러나 온라인 학습지교사 수입은 전화와 화상 상담건수를 기준으로 한다. 이를테면 한 달에 한 학부모와 3분 이상 전화 상담을 하면 건당 몇 천원하는 식이다. 아이와 하는 화상상담도 ‘5분에 몇 천원’ 한다. 마치 콜센터 노동자가 전화상담 1건당 수수료를 받는 것과 혼재된 형태다. 그래서 박씨에게 “몇 명의 회원을 관리하느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의 수입을 파악하려면 하루에 몇 통의 전화 혹은 화상상담을 하느냐를 물어야 한다. 박씨는 “전화를 많이 할 때는 50통 정도하기도 하고, 평균 35통 내외를 한다”며 “3분을 통화해야 하는데 1분30초하고 사정상 끊으면 상담건수로 인정이 안 돼 다음날 나머지 1분30초를 더 해야 하기도 하고, 약속을 해도 부재 중인 경우도 있어 하루 종일 전화에 매달려 있다”고 말했다. 만약 관리를 잘 해서 계약이 갱신되면 인센티브가 있다. 반대로 계약이 중도 해지되면 박씨의 수입에서 해지 수수료를 차감한다. 고객당 수수료를 받는 것도 아닌데 해지 책임을 물어 해지 수수료를 차감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350만원이던 수입, 140만원으로 급감

그런데 변수가 있다. 구간별 인센티브다. 이를테면 회원 100명까지는 통화 1건당 3천원이다. 그러나 100명을 넘어가면 통화 1건당 5천원이다. 그마저도 모든 통화에 인상된 보상을 적용하면 좋으련만 100명은 3천원, 나머지 인원만 5천원을 주는 식이다.

물론 이 체계는 회사와 상품마다 다르다. 박씨와 유사한 업무를 하는 또 다른 온라인 학습지 교사는 5천원이라는 말에 “그곳이 어디냐”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 스마트 학습지 업계에는 박씨 같은 코칭교사 외에 상품 판매와 유지를 위한 관리자, 공부를 가르치는 과목교사 등도 있다. 이들은 또 보상체계가 다르다.

이런 소속과 업무의 차이에도 공통점이 있다면 소득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2022년 일을 시작한 박씨는 많이 벌 때는 달에 350만원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 풍토병화(엔데믹)로 회원수도 줄고 박씨도 몸이 좋지 않아 전화를 많이 하지 못하면서 수입이 140만원에 그쳤다. 무려 210만원이 줄어든 것이다.

재량권 없는 재택, 업무 외에도 ‘교육’ 빌미로 붙잡혀

그는 오후 3시~9시 일한다. 주말 빼고 주 5일 모두 일한다. 전업주부였던 그는 집안 살림에 조금 보탬이 될까 해 일을 시작했다. 학습지교사를 시작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러듯 ‘자율’이 가능할 줄 알았다고 한다. 박씨는 “원하는 요일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회사는 주 4일이나 주 3일 일한다고 하면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휴가도 어렵다. 하루 쉰다고 해야 할 상담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상담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준다. 3년간 일을 못한 것은 딱 하루로, 어깨가 심하게 아파 포도당 주사를 맞아야 했던 3년 전 업무 초입의 일이라고 한다. 박씨는 “그날 쉬면서 관리자에게 오늘 전화 못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다른 날 그 업무를 해야 해서 매우 바빴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일하는 시간만 일하는 것도 아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박씨의 목소리가 컸다. 그는 “업무시간 외에도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고, 한 달에 5회 정도 하루 3시간 교육을 한다”며 “길게는 하루 3시간, 짧아도 1시간인데 그 뒤에 바로 업무에 투입되면 일을 하는 데 피로가 심하다”고 토로했다. 교육 내용은 단말기 교육과 학습 내용, 회원관리 요령 등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교육시간에 대한 별도의 보상은 없다.

방광염·동결견·우울증 등 노출
“4대 보험 됐으면…”

그가 체한 이유도 이런 탓이다.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기 일쑤이고, 일이 끝나면 피로감에 폭식을 하는 경우가 있어 자주 체한다고 했다. 살도 많이 쪘다고 아쉬워했다.

체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아픈 곳이 많다. 6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탓에 방광염에 걸렸다. 특히 오후 5시부터 저녁 8시30분은 고객과의 상담이 몰리는 이른바 ‘피크타임’인데, 이 때는 컴퓨터 앞을 떠날 생각조차 못한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이 시간대에 통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학부모가 퇴근한 뒤니까요. 회사가 정한 건 아녜요.”

지난해에는 동결견 진단을 받았다. 어깨와 목이 굳어 통증이 발생한 질환이다. 흔히 ‘오십견’이라고 하는 질환이다. 지난해 내내 아팠고, 현재는 조금 가라앉았으나 통증이 없는 건 아니라고 한다.

치료비는 고스란히 박씨의 몫이다. 학습지교사는 관련법상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가입대상이지만, 온라인 학습지교사는 제외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과 고용보험법 시행령에서 학습지 ‘방문’강사와 교육교구 ‘방문’강사로 범위를 한정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사회적 고립감을 호소했다. 그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집에만 있어야 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기분이고, 우울감이 심하다”며 “내 기분과 상관없이 고객 응대는 밝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고, 내적으로 몹시 힘들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볼 생각은 하지 못한다. 박씨는 “의료보험 지역가입자라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보험료가 더 인상될까 두려워서 가기 어렵다”며 “직장의료보험을 포함해 4대 보험이 되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 확산 등에 업은
‘에듀테크’ 수요가 만든 그늘

박씨 같은 직업인 온라인 학습지교사는 비교적 신생 직업이다. 학습지교사는 1990년대 이후 교육시장이 커지면서 함께 확산했지만 온라인 학습지교사는 코로나19를 먹고 성장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고, 우리나라도 학교 문을 닫았을 때 에듀테크 시장이 기지개를 켰다. 에듀테크란 교육과 기술을 접목했다는 의미다. 모르는 문제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클라우드 서버에 업로드하면 풀이법과 답을 알려 주는 서비스 등이 초기에 화제를 모았다. 당시 불어 닥친 코딩 교육과 3D프린터 교육 등이 에듀테크 시장의 선봉이다. 이후 코로나19 확산은 돌봄과 교육의 위기감을 고조시켰고 시장은 더욱 성장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2020년 6조5천605억원이던 에듀테크 시장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지난해 8조5천140억원으로 성장했고, 2026년에는 10조8천319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학습지는 기존 종이 학습지를 단말기로 교체하고, 학습지 방문교사가 문제풀이를 돕는 게 아니라 온라인 학습지교사가 학업을 ‘코칭’하는 형태다. 업계가 추산하는 학습지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2조원가량, 당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초등 학습지 시장은 3천700억원 규모였다. 코로나19 확산 3년을 거치며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고충이 있는지 대강은 듣고 있지만 재택이라 조직화도 어렵고 개별 접근도 쉽지 않아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정난숙 학습지노조 대교지부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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