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조가 위로금 지급을 요구했다고 하네요.” 지난 25일, 현대제철 통상임금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 선고가 있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각종 법정수당 등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평균임금에 연차수당 포함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원고 노동자들의 승소로 확정됐다. 이날 대법원의 2호 법정에서 금속노조 현대제철의 인천·포항지회에서 지회장을 포함한 노조 간부들이 참석해서 주심대법관의 판결 선고를 들었다. 나는 원고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법정에 갔다. 이날 판결 선고 뒤에 근처 카페에서 판결 결과와 향후 대응에 관해서 노조 간부들과 의견을 나눴는데, 이번 대법원 승소 판결로 인해서 소 취하했던 조합원들이 불만을 쏟아낼 것 같다고 했다. 노사합의하지 않고 조합원들이 대거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다면, 이번 판결로 함께 지연이자, 지연손해금까지 포함해서 모두 지급받을 수 있었을 거라며 나는 소송대리인으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자리는 포항지회장 등 노조 간부들은 아직 임단협이 마무리되지 않아 사측과 협상 때문에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어 다음을 기약하고서 마쳤다. 그랬는데 사업장에 돌아가서 사측에 위로금 지급을 요구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임단협 교섭장에서 지회장이 사측에 소 취하한 조합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던 것 같은데, 나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2. 내게는 분명히 놀랄 일이다. 뭐든지 법적으로 사고하는데 이골이 나 있는 내게는 말이다. 2020년 현대제철에서 노사는 통상임금 문제에 관해서 협상을 진행해서 통상임금 소송을 취하하는 조합원들에게 일정 기준의 금액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그에 따라 2021년 3월부터 많은 조합원들이 통상임금 소송을 취하했다. 노조가 합의한 것이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해서 가결된 것이라서 원고 조합원 대다수가 소취하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당시 1심 인천지방법원 판결이 나온 상태였다. 합의금액은 정확히 산정해보지 않았지만 대략 지연이자와 지연손해금을 포함한 판결 금액 기준으로 절반 정도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소 취하하고서 사측으로부터 합의금까지 지급받았던 것인데, 그 조합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니. 그 말을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법률가로서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놀라기도 했지만, 조합원을 위한 노조의 뻔뻔한 당당함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노조지, 아니 그래야 노조지.’ 내 머리는 법은 내다 버리고 노조는 뭐고 노조가 할 일이 무엇인지 막무가내로 폭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법대로 하자는 게 노조의 일이 아니다. 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보다 더 나은 것을 조합원들에게 쟁취하기 위해서, 새로운 권리를 조합원들에게 주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노조의 일은 조합원의 권리를 지키는 것보다는 조합원에게 새로운 권리를 확보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가 노사합의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법이 보장한 권리를 포기하도록 했다면, 그 노조는 ‘사용자와 합의한 것이니 지켜야 한다’며 조합원들의 불만이 쏟아져도 사용자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입을 닥쳐야 하는 것일까.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로 보자면, 아니다. 요구한 것이 잘못일 수 없다. 법적으로는 노조에 노사합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조합원을 위한 노조의 요구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오히려 내가 놀란 게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3. 현대제철 통상임금 소송은 대법원 판결까지 다사다난했다. 조합원 3천여명이 원고로 인천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면서 시작된 소송은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사건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이 나오면서 현대제철 상여금은 고정성을 결여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사측이 주장하고 나왔다. 당시 조합원은 물론 노조 간부들까지도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제철 상여금 기준은 다른 사업장들과 달랐다. 두 달에 한 번 지급하는데, 직전 2개월 동안 지급받은 임금을 평균한 금액 기준으로 상여금을 산정해 지급했다. 그러니 매달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의 지급액이 달라지는 것이라서 상여금은 고정적인 금액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지급할 때마다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을 얼마나 했는지에 따라 상여금은 변동될 수밖에 없으니 고정성 결여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만했다. 하지만 나는 소 취하는 안 된다는 의견을 노조에 냈다. 2개월 동안 지급받은 임금을 평균한 금액 기준으로 지급하더라도 상여금을 지급할 당시에는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해 지급한 임금액이 정해져 있고, 이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것이라 고정성이 결여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을 제외한 임금은 고정성이 인정돼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행히도 노조가 내 의견을 받아들여서 소송을 계속할 수 있었다. 현대제철 통상임금사건은 3년의 임금채권 시효기간을 단위로 3차에 걸쳐 소송이 진행됐다. 그중 1차 사건에 대법원이 판결한 것이다. 나머지 사건들도 주장과 쟁점이 동일해서 이번 대법원 판결대로 될 것이라서 이제 10년 넘게 진행해온 현대제철 통상임금 소송을 정리단계에 접어들었다. 분명히 길었다. 그래서 노조는 사측과 협상을 시작했던 것이고, 노사합의했던 것일 것이다. 2019년경 기아에서 노사합의하면서 같은 현대차그룹 사업장들에서 통상임금문제에 관한 노사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현대제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앞에서 본 것처럼 2020년 본격적으로 노사협상을 진행해서 2021년 노사합의에 따른 소 취하로 600여명을 제외한 원고 조합원 대부분이 소송을 접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남은 원고들을 대리해서 소송했다.

4. 기아도 그랬지만 이번 현대제철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노사합의에 따라 소 취하하고 많은 조합원들이 합의금을 받았지만, 소 취하하지 않고 끝까지 소송하겠다는 조합원들이 있었다. 20% 정도가 남아서 소송을 계속했다. 동료들이 몇백만 원에서 1천만원이 넘는 합의금을 지급받는 걸 보면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그 결과를 100%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심에서 승소한 상태였으니 가능성이 크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적어도 그 가능성의 높이만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법원은 청구 금액에 대해 법적 가능성 정도로 판결해 주지 않는다. 법원은 상여금에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 기준으로 각종 법정수당 등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할 뿐이다. 패소하면 남은 원고들은 1원도 받지 못할 걸 각오해야 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내게 묻는다면 당연히 소송을 계속했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 당연한 대답은 분명히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노동자는 사용자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서 소송하기 위해서 시간과 비용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용기를 내야 한다. 자신의 사용자를 상대로 소송한다는 것, 사업장에서 인사, 노무, 업무 등 무언가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노동자가 이 나라에 얼마나 될까. 그래서 오늘도 노동자들은 사용자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서 소송하는데 커다란 용기를 내야 한다.

기아 통상임금 소송은 약 2만8천명의 원고 중 3천여명만 남아 대법원 판결을 받았고, 현대제철 통상임금 소송은 3천여명의 원고 중 600여명이 남아 이번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오랜 기간 자주적, 민주적인 노조 운동을 전개했기에 소송하는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불이익을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노동자로서는 분명히 용기가 필요하고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들의 선택으로 오늘 상여금뿐만 아니라 월휴수당, 근로시간면제자 및 무급전임자, 휴게시간 등 수많은 법적 쟁점에서 노동자를 위한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것은 원고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현대제철 노동자를 위한 것이고, 나아가 그 판례 법리는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는 이 나라 노동자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에 노조가 이미 소 취하한 조합원들을 위해 위로금 요구를 했다는 말을 듣고서 웃다가 생각해보니 이렇게 소송대리인으로서 할 말이 많다. 노동자 권리를 위해서 당당한 노동자와 노조를 본다는 것은 노동자를 대리하면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타령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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