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노조가 24일 오후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항소심 선고가 끝난 직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준표 기자>

‘원청 사용자성’ 법리가 굳어지는 분위기다. CJ대한통운이 택배노동자의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항소심 법원이 재차 확인했다.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했다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이른바 ‘실질적 지배력설’이 판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판결 확정시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입법 효과를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원청이 단체교섭 의무” 1심 판결, 택배기사 또 승소

서울고법 행정6-3부(부장판사 홍성욱·황의동·위광하)는 24일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CJ대한통운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원고 항소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고 밝혔다. 2021년 7월 소송이 제기된 지 2년6개월 만이다.

CJ대한통운 소송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다툰 대표적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택배노조는 2020년 3월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CJ대한통운이 계약 당사자가 아니란 이유로 거절하자 분쟁이 시작됐다. 서울지노위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구제신청을 각하했지만, 중노위가 2021년 6월 이를 뒤집으며 소송으로 이어졌다.

하청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1심은 지난해 1월12일 택배기사 손을 들어줬다.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없더라도 원청에 단체교섭의무가 부여된다고 판단한 첫 사례다. 1심은 ‘계층적·다면적 노무제공관계’가 확산함에 따라 ‘근로계약관계’에 따른 사용주에 한정해 사용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원청을 사용자로 볼 수 없다면 하청노동자의 쟁의행위 등 노동 3권이 무력화한다고 명확히 했다. 1심은 “하청근로자가 제공하는 노동에 따른 이익을 향유하면서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권을 보유한 원청사업주에게 대체근로 투입이라는 부당노동행위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사업주의 범위를 근로계약관계로 한정해 해석하면 대체근로 인력을 투입하는 등 방식으로 하청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옥죌 수 있다는 취지다.

노동계 “노란봉투법 정당성 또다시 입증”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왼쪽)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24일 오후 “CJ대한통운이 사용자”라는 취지의 항소심 판결이 나온 후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왼쪽)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24일 오후 “CJ대한통운이 사용자”라는 취지의 항소심 판결이 나온 후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2심 역시 지난해 10월 변론 시작 이후 세 차례만 기일을 진행한 후 원고 항소를 기각했다. 노동계는 즉각 환영했다. 택배노조는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심 판결을 환영했다. 노조는 “오늘 ‘진짜 사장 나오라’고 7년을 넘게 외쳤던 택배노동자들을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의 절규와 외침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노조법 2·3조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이 법률에 반하는 행위라고 법적으로 확인한 역사적 판결”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도 성명을 내고 “CJ대한통운은 그동안 부당노동행위로 고통받은 택배노조와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노동인권을 유린당한 노동자에게 사과하고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즉각 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도 “여당의 반대와 대통령 거부권으로 막힌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정당성을 또다시 입증한 판결”이라며 “정부와 여당은 원청 사용자가 실질적 사용자로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노조법 2·3조 개정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CJ대한통운 상고 계획, 대법원 결론 전망

반면 재계는 반발했다. 한국경총은 “대법원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기업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에 따르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가 몰각될 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은 하청노조의 원청기업에 대한 교섭 요구와 파업, 실질적 지배력 유무에 대한 소송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도 성명을 내고 “택배산업의 현실을 외면하고 전국 2천여개 대리점 존재를 부정한 판결”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원청 사용자성’ 판단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CJ대한통운이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날 CJ대한통운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반한 무리한 법리 해석과 택배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결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이 송부되는 대로 면밀하게 검토한 뒤 상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법원에 5년째 계류 중인 ‘HD현대중공업 단체교섭 청구’ 사건이 올해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 CJ대한통운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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