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사옥.

형식상 프리랜서로 계약을 체결해 4년간 일하다 계약이 만료된 KBS 아나운서가 대법원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았다. 방송사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주말 당직에 대타 진행, 명함엔 KBS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아나운서 A씨가 KBS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4년2개월 만이다.

사건은 A씨가 2015년 10월 KBS강릉과 프로그램 출연 계약을 맺고 기상캐스터를 맡으며 시작됐다. A씨는 TV와 라디오에서 뉴스도 진행했다. 2018년 6월부터는 파견된 KBS춘천에서 주말 뉴스를 담당했다. 같은해 12월부터는 KBS춘천과 ‘프리랜서 진행자용’ 프로그램 출연 계약을 체결하고 저녁 9시 TV를 매일 진행하고 라디오에도 출연했다. 계약기간은 ‘인력 충원 또는 프로그램 개편시까지’로 정했다. 회당 출연료는 TV와 라디오 각각 7만2천원, 1만5천원에 불과했다.

A씨는 사실상 KBS춘천 방송국 관계자들의 관리·감독 아래 근무했다. 아나운서들과 단체 대화방에서 뉴스 진행과 휴가 일정을 조율했고, 다른 아나운서를 대신해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주말에도 ‘당직’ 명목으로 뉴스를 맡았다. 또 KBS 마크가 박힌 명함을 들고 각종 특강과 미디어 교육에 강사로 참여했다.

그런데 2019년 7월 KBS는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A씨를 업무에서 배제했다. 그러자 A씨는 근로자 지위를 확인해 달라며 2019년 10월 소송을 냈다. A씨측은 “계약 형식은 프로그램 출연계약이나 실질적으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으므로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심 뒤집고 노동자성 인정 “정규직과 같은 업무”

1심은 A씨 청구를 기각했다. 프리랜서 계약에 업무상 지휘·감독에 관한 규정이 없고,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원고에게 따로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고, 방송 시간에 맞춰 방송을 진행하기만 하면 나머지 시간에는 자유롭게 방송국을 이탈해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근태 관리와 근로소득세 원천징수를 하지 않은 점 등 ‘형식적인 요건’을 중요 근거로 삼았다.

2심 판단은 달랐다. A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는 피고에 의해 배정된 방송편성표에 따라 정규직 아나운서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다”며 “종속적인 관계에 있는 아나운서 직원이 아니라면 수행하지 않을 업무도 상당 부분 했다”고 설명했다. 평일에는 KBS강릉, 주말에는 KBS춘천을 오가며 모든 스케줄과 주말 당직 근무를 소화한 부분도 근로자성의 지표가 됐다.

KBS에 대한 전속성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원고의 출·퇴근시간은 방송 스케줄에 따라 정해졌고, 휴가 일정도 피고에게 보고·관리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A씨가 2년 넘게 일했으므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고 보고, 계약만료는 사실상 부당해고라고 못 박았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판결 확정에 따라 KBS는 A씨를 복직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A씨를 대리한 류재율 변호사(법무법인 중심)는 “방송국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사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방송업계의 오래된 비정상적인 고용구조에서 기인한다”며 “방송국은 고착화한 비정규직 중심의 고용구조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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