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 자료사진

도급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을 무너뜨린 것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다. 지난달 28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한 태영건설의 부동산 PF 규모는 3조5천억원이다. 이 가운데 지난달 말일이 만기인 보증채무는 3천956억원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성수동 개발사업이다. 2022년 10월 시공사로 참여한 태영건설은 토지를 구매하는데 PF 브릿지론을 이용해 480억원을 빌렸다. 그러나 삽도 뜨지 못한 상태로 상환일이 도래했고, 막지 못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일주일 전인 21일 한국신용평가가 내놓은 신용등급 보고서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부동산 PF는 별도재무제표 기준 2022년 3조원(연결재무제표 2조2천억원)에서 지난해 11월말 3조5천억원(연결 2조9천억원)으로 늘었다. 태영건설의 전체 200여개 사업장 가운데 부동산 PF로 진행하는 사업장 가운데 과반이 미착공 상태거나 착공했어도 분양 전 사업장이다. 이런 상태라면 자금회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부동산 활황기에도 ‘위험투자’

부동산 PF는 부동산 활황기에 기업 간 신용 등이 아닌 부동산 개발계획에 따른 기대수익을 노리고 성행한 투자기법이다. 부동산 개발계획을 검토한 금융사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부동산 신탁회사에 예치하고, 공사기간 동안 신탁회사가 하도급업체에 자금을 집행하면 준공 뒤 시행사가 자금을 상환하는 방식이다.

부동산 PF의 한 종류인 브릿지론은 부동산 활황기에도 부실 경고등이 켜졌던 방식이다. 사업계획서와 시공사 사업 참여 의향서, 땅을 팔겠다는 약정서만 갖고 대출이 가능하다. 공사도급계약서 인허가까지 마무리돼 공사 착공만 앞둔 상태에서 돈을 빌려주는 이른바 ‘본 PF’에 비해서도 부실 위험이 크다. 지난해 10월 기준 부동산 PF 규모는 134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30조원이 브릿지론이다.

부동산 PF 위험성은 일찌감치 드러났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세간에 알려진 2021년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사건이다. 강원 하중도 개발을 담당한 강원중도개발공사가 BNK투자증권으로부터 빌린 2천50억원을 갚지 못하자 강원도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사건으로, 이후 채권 금리가 급등했고 건설사 자금난 우려가 커지면서 부동산 PF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채권안정펀드를 투입하면서도 부동산 PF에 대한 정책은 내놓지 않았다. 2021년 말 130조3천억원이던 부동산 PF 규모는 올해 10월 134조3천억원으로 되레 늘었다.

태영건설 일부 사업장 ‘임금체불’ 가시화

이 사이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을 공급하는 등 시장에 혼선을 주는 정책만 거듭하면서 정작 부동산 PF 위기는 애써 외면했다는 비판이다. 김기원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장은 “2021년 10월게 유동성 위기가 지적됐을 때 부동산 PF에 대한 질서 있는 퇴각이 필요했다”며 “하다못해 브릿지론만이라도 구조조정으로 털어내자고 계속해서 정부당국에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년 내내 부동산 PF 만기연장만 거듭하다 이 지경이 됐다”고 비판했다.

위기는 건설사에 국한하지 않는다. 김 본부장은 “당장 자금 대출을 집행한 캐피탈과 저축은행보다 지급보증을 선 증권사가 문제”라며 “지난해 초 위기를 겪은 증권사가 구조조정을 했지만 여전히 위기가 진행 중이고, 한 증권사는 부동산 PF 보증 규모가 해당 증권사 인수 규모에 근접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현재 모기업에 7천억원에 인수된 이 증권사는 강원중도개발공사 사태 이후 구조조정을 실시했지만 부동산 PF 등의 회수가 어려운 채권에 따른 대손충당금 예상 규모가 7천억원에 달한다. 대손충당금은 회수 가능성을 낮게 보고 부실에 대비해 쌓아놓는 돈이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여파는 현장에서도 나타날 조짐이다. 아직 공사중단 소식까지 들리진 않지만 일부 사업장에서는 지난달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건설노조 경기북부건설지부 관계자는 “태영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 서울 동북지역 3곳 사업장에서 지난달 말일 월급 지급이 지연됐다”며 “이번주 초까지 지급을 약속했지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