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얘기다. 노사정·전문가들이 전망한 올해 가장 부각할 노동이슈는 노조법 개정안이다.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일부 제한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과 노동시간 현안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사정을 달굴 것으로 보인다.

야당들 “노조법 개정 재입법 추진”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주관식으로 노사정·전문가 100명에게 올해 주목할 노동현안을 물었더니(3개 이내 복수 응답) 가장 많은 이들이 노조법 2·3조를 꼽았다. 전체 268개의 주관식 답변에서 29개의 의제가 등장했다. 노조법은 29표가 나와 1위에 올랐다.

2만5천원. 21년 전인 2003년 1월10일, 배달호 두산중공업 노동자가 분신해 숨진 하루 뒤 그의 통장에 들어온 임금이다. 월급을 가압류당한 탓이다. “두산이 해도 너무 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으로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 사원의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고인은 유서에서 손배·가압류가 노조탄압용이라고 그 본질을 고발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동참한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원청의 470억원 손배·가압류. 해도 해도 너무한 손배·가압류 문제를 손보기 위한 노조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9일 야당이 주도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같은해 12월1일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왔고, 같은달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의 반대로 끝내 부결됐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진보당 등 야당은 즉각 재입법 추진 의사를 밝혔다. 올해 4월 치러지는 22대 총선 국면에 돌입하면서 국회는 입법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 전망이다. 총선 과정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야당의 공약으로 등장할 것인지, 총선 이후 입법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노사정·전문가들은 노조법 개정안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논란, 곧 일단락

중대재해처벌법은 28표를 받아 2위를 기록했다. 1위와 불과 1표 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해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기간 연장, 정부·여당·재계의 완화 입법 주장, 노동계의 강화 입법 주장, 재판부의 솜방망이 판결(검찰의 솜방망이 구형) 등의 논란을 낳았다. 이 중 직면한 현안은 유예 문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 시행 이후 3년간 유예해 이달 27일부터 50명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정부·여당은 2026년까지 2년 더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정부는 당근책으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내놨다. 민주당을 설득해 개정 동의를 받으려 했으나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비난이 잇따르면서 분위기는 차갑다. 임시국회 회기가 이달 9일까지여서 국민의힘·민주당 간 논의의 불씨는 살아 있다.

주 52시간 상한제 흔들기 계속되나

노동시간을 둔 노동계와 재계의 계급 간 전쟁은 올해 가장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설문조사에서도 ‘노동시간’이 25표를 받아 3위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해서라도 몰아쓰기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노동시간 유연화를 지속해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주 단위였던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 총량으로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주 69시간 근무 논란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아 후퇴하는 듯했지만, 같은해 11월13일 제조·건설업 등 업종·직종별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할 수 있게 하겠다는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장시간 노동·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한 정부 의지를 다시 보여준 것이다. 12월11일 대법원이 1주일 노동시간 중 40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연장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자 정부는 반기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루 8시간을 넘겨 일한 시간을 연장근로로 보고 일별 연장근로시간을 더해 주 단위 연장근로시간(12시간) 초과 여부를 판단하던 기존 행정해석의 변경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가 장시간 노동·노동시간 유연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면, 노동계와 야당은 주 4일 근무제로 맞불을 놓을 것으로 보인다. 10위권 이내에 들지는 않았지만 ‘주 4일제’가 노동현안이 될 것이라는 응답이 7표(공동 13위)가 나왔다. 주 4일제를 노동시간단축이라고 해석한다면, 노동시간과 관련한 응답은 32표로 늘어난다. 다만 ‘노동시간’과 ‘주 4일제’를 동시에 답변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 순위를 구분했다. 주 4일제는 노동계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주 4.5일제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 것으로 보인다.

정부·재계 공격하고, 노동계·야권 저항하고
정부 주도 노동정책 두고 노사정 대립 형국

포괄적인 답변이지만 ‘정부 노동 정책’이 21표가 나와 4위를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시간 유연화, 연공급 임금체계의 직무·성과급제 전환, 고소득·전문직의 노동시간 규제 삭제, 부문별 근로자대표제 도입, 파견허용 업종 확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내내 이어진 정부 차원의 노조 때리기는 이런 노동정책의 가장 큰 걸림돌인 노조의 힘을 빼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다.

정년연장과 공적연금이 현안이 되리라는 답변은 19표가 나왔다. 5위다. 퇴직연령과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수령시기가 어긋나면서 발생하는 소득공백 문제를 놔둬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노와 정이 이견이 없다.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한국노총은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직무·성과급을 적용한 재고용 방침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7표를 받은 ‘총선’은 6위다. 총선을 답변한 응답자 중 상당수는 다양한 부가 설명을 추가했다. 총선 이후 다수당의 노동정책, 총선에서의 3지대 정당, 총선에서 노동자 정치 세력화, 양대 노총의 총선 대응 전략 등을 관심에 두고 있었다. 결과에 따라 정부 노동정책 현실화 여부, 노동계와 야당의 대응 전략이 갈리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총선은 윤석열 정권 임기 중 가장 큰 정치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양극화)는 14표를 받아 7번째 관심사에 올랐다. 정부는 상생임금위원회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대략의 윤곽은 보인다. 산업안전보건과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에서 윤석열 정부는 ‘원청의 선의’에 기대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조만간 상생임금위는 하청에 대한 원청 지원시 정부가 원청에 도움을 주는 형태의 권고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원청이 하청을 지원할 때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할 논란을 없애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조직노동 탄압 논란 지속할 듯

올해는 1만원은 넘길까. 최저임금이 12표를 받아 공동 8위다. 회계공시·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등을 앞세운 조직노동 탄압도 12표를 받아 공동 8위를 기록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9천860원으로, 내년에는 140원만 오르면 1만원을 넘어선다. 올해 최저임금 논의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적용 여부, 지역별·산업별 차등적용 등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두고 노사정이 머리싸움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회계공시 등을 앞세워 정부가 양대 노총 등 조직노동을 탄압하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보는 전망도 이어졌다. 정부는 ‘노사법치주의’를 새해에도 확립하겠다는 방침이다.

플랫폼 노동 보호와 이주노동자는 각각 11표를 받아 공동 10위다.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 노동과 관련해 눈에 띄는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정과제에서는 산재예방 종합포털 구축,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직종·수준별 특화훈련 제공을 제시했다. 노동조건 개선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면 되는 것일까. 노사정·전문가의 생각은 다른 듯 보인다. 플랫폼 노동 보호가 의제가 돼야 한다는 기대를 답변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사람 구하기 힘든 직종에 이주노동자를 밀어 넣는 외국인력 도입 정책을 그 어느 정부보다 강력하고 대규모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내국인 일자리, 이주노동자 노동조건과 인권보호 대책, 이주노동자 증가에 따른 사회적 갈등 등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10위권 밖에는 공공부문 민영화 논란 12위(9표), 주 4일제 공동 13위(7표), 사회적 대화 공동 13위(7표), 근로기준법 5명 미만 사업장 적용 공동 15위(5표), 저출생 문제 공동 15위(5표),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 17위(4표) 등의 순이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