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23. 10. 26. 선고 2022구합83571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들은 대형 뮤지컬 A에 앙상블 배우로 출연했던 자들이다. 뮤지컬 공연에서 앙상블 배우란 주연과 주요 조연 등을 제외한 여러 단역들을 모두 소화하는 배우를 의미한다. 이들은 주인공이 노래를 부를 때 코러스를 넣거나 뒤에서 춤을 추고 주변 인물로 등장해 사건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원고들은 뮤지컬 C를 제작하는 주식회사 B가 뮤지컬 A공연이 진행 중에 파산해, 공연이 중단되고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주식회사 B에 미지급 임금에 대한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원고들은 그럼에도 임금을 받지 못하자 피고 근로복지공단에 임금채권보장법 7조에 따른 간이대지급금(체당금)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피고 공단은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에 대해 각 부지급 처분을 했다. 이에 원고들은 피고의 처분을 다투는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

2. 사안의 쟁점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라 대지급금을 받으려면 근로기준법 2조에 따른 근로자여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뮤지컬 앙상블 배우인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인지 여부가 쟁점이다. 뮤지컬 기술직 스태프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 판단한 하급심 판단이 존재하지만(서울행정법원 2014. 8. 1. 선고 2013구단8809 판결), 뮤지컬 앙상블 배우의 근로자성 여부를 다룬 법원 판결은 없었다.

3. 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고려할 때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피고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원고들의 배역과 그 안무, 노래 및 연기 등 업무 내용은 이 사건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음악감독, 안무감독 등에 의해 정해져 원고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여됐고, 원고들은 그 업무 내용을 변경할 수 없다. 만일 원고들이 이를 거부할 경우, 이 사건 회사는 이 사건 계약에 따라 원고들에게 서면으로 시정사항을 통지한 뒤 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감독들은 이 사건 공연 준비를 위한 연습 과정에서부터 실제 공연에 이르기까지 원고들을 포함한 앙상블 배우들의 춤과 노래에 관해 세세한 지휘·감독을 수행한 것으로 보여, 원고들의 실제 업무수행 과정에서도 구체적 지휘·감독이 존재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② 이에 대해 피고는 원고들이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고, 해당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능력이 요구되므로, 감독진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움직이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주·조연 배우들과 달리 원고들과 같은 앙상블 배우들의 경우에는 춤과 노래를 수행할 때 감독들의 지시에 따른 통일적 움직임이 중요할 뿐, 배우들의 개인적 개성이나 특징이 부각되지 않아 이 사건 회사측의 필요에 따라 상시 그 구성을 대체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설령 구체적 연기와 관련해 일부 원고들의 재량이 인정되는 부분이 있었더라도 이는 원고들이 제공하는 근로의 특성이 일정 수준 이상의 춤과 노래 등 연기력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전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③ 원고들은 개인적 재능이나 창작력을 바탕으로 한 독립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기보다 제작사인 이 사건 회사에 의해 기획된 공연사업에 종속돼 그에 따라 미리 정해진 대가만을 지급받았을 뿐이다. 원고들은 이 사건 공연의 흥행 여부에 따른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지 않았다. 비록 원고들의 출연료는 공연 단위로 정해졌으나, 이는 공연 출연 횟수와 연습 기간에 따라 대략의 노무제공 시간과 강도가 예상이 가능한 공연 출연 계약의 특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에 따른 출연료는 노무 제공 그 자체에 대한 대상적 성격으로 봄이 상당하다.

④ 원고들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지 않았으며 원고들이 연습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를 고용해 노무를 대행하게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⑤ 이 사건 공연 일정 및 그 준비를 위한 연습 일정과 장소가 사전에 그 세부 내용까지 정해져 통보됐고 그에 따라 원고들의 이 사건 연습과 공연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원고들의 업무 시간이 이 사건 회사측에 의해 지정됐고, 원고들은 이에 구속받았다고 봄이 타당하다.

⑥ 이 사건 회사는 명시적으로 원고들에게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무대 공연의 출연을 금지했다. 비록 이 사건 회사와 사전 협의가 있는 경우에는 다른 일정에 참가할 수 있더라도, 이 사건 공연과 그 연습 스케줄 등을 고려해 보면 원고들이 다른 공연에 출연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보여 이 사건 계약 기간 동안 원고들의 이 사건 회사에 대한 노무제공의 계속성과 전속성 또한 인정된다.

⑦ 비록 원고들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이 있지는 않으나 이는 공연단위로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원고들의 경우 일시적으로 고용되는 일용직 근로자나 단기간의 기간제 계약직 근로자와 비슷한 성격의 근로를 제공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원고들이 연습이나 공연에 불참하거나 공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이 사건 회사측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하거나 손해배상 등을 통한 제제도 가능했다.

⑧ 한편 원고들에게 근로소득세가 원천징수되지 않았다다거나 원고들이 이 사건 회사의 근로자로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는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 사건 회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사실상 임의로 정한 사정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가 커 그와 같은 점들이 원고의 근로자성을 뒤집는 사정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4. 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대상판결이 확정될 경우 뮤지컬 앙상블 배우의 근로자성이 쟁점이 되고, 인정된 첫 판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계약에 따른 급부가 사업주의 사업 내지 역무에서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가지고 독자적 요소로서 평가될 수 있는가”가 고용계약과 위임·도급 등의 계약을 구별하는 요소이자 지휘·감독을 기반으로 한 종속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사건에서 고용계약과 위임·도급 계약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을 확인한 것이다.

뮤지컬 앙상블 배우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은, 뮤지컬 업계의 임금체불 피해가 종종 발생해 실무에서 문제가 됐던 쟁점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청에서 대지급금의 지급을 인정한 사례(<오! 캐롤> <친정엄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앙상블 배우에게 각 대지급금이 지급됐다)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공단이 원고들의 대지급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 사건은 행정기관이 아닌 법원에서 앙상블 배우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확인된 첫 사례로, 확정될 경우 관련 사안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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