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직무가치에 따라 기본급이 결정되는 직무급은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동일한 기여를 하면 동일한 임금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임금체계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1989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내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도입됐으나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에 가깝다.

법 조항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연공급제를 꼽고 있다. 이 때문에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대다수 논의는 직무급제 도입으로 귀결되곤 하며, 그간 정부도 연공급 해체의 명분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직무급제만이 객관적이고 성평등하며 공정한 보상방식이라는 접근방식은 상당히 위험하다.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논의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차별적 노동시장 구조가 직무급제에서도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따르는 직무급제의 핵심은 ‘직무가치’다. 직무급제는 직무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는 것이므로 직무가치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쉽게 말해 각 직무가치에 대해 당사자를 포함한 사회 전체의 동의가 이뤄져야 한다. 직무가치 평가는 직무분석과 직무평가를 통해 이뤄지는 일종의 측정과 비교의 과정이다. 그러나 측정과 비교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회 전반에 형성된 인식과 개인의 가치판단이 배제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노동시장 내 고착된 편견과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해 직무가치를 판단할 때 이미 사회적 인식이 낮은 직무에 대해서는 지속해서 낮은 가치가 매겨질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직무가치 평가에는 반드시 그간 차별적 환경에 방치돼 있던 여성계를 포함한 취약계층의 집단적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기업별 임금결정 체계라는 사실이다. 개별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기업이 결정한다. ESG 경영의 압력이 높아지는 흐름이지만 기업의 본질은 이윤극대화다. 오랜 시간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던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 개선이나 여성의 지위 향상은 부차적인 과제이다. 기업이 여성이나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 또한 직무급제가 도입되더라도 ‘기업 내’에서만 유효하다. 그마저도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부서와 직무 등에 대해서는 높은 가치, 즉 높은 임금수준이 책정될 것이고 기업의 이윤 창출에 기여도가 낮은 부서나 직무는 낮은 가치로 평가될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변업무에 배치되는 등 직무배치와 승진 등에서 차별받는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낮은 가치의 직무에 여성이 집중될 것은 이미 정해진 결론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직무가치가 평가되더라도 기업의 지불능력 차이로 기업 간 격차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지불능력이 높은 기업에 여성이 분포되지 않는다면 성별 임금격차는 개선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치 있는 직무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업의 이윤을 높이는 직무일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직무일까. 아마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전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사회 기능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필수업무종사자법)이 제정됐다. 돌봄·보건의료·운송서비스·청소원 및 환경미화 노동자가 필수노동자로 분류됐다. 그중 여성이 집중된 업종이자 이미 국가에서 인건비 기준을 제시한, 즉 직무급제가 도입된 국공립 보육교사의 1호봉 인건비는 세전 200만원 수준이다. 인건비 기준조차 없는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이보다 더 낮다. 건강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요양시설 요양보호사 역시 법인의 경우 세전 210만원에 그친다. 개인시설의 요양보호사는 190만원을 조금 넘는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간 대응의 핵심으로 돌봄을 꼽아 왔지만 돌봄노동의 임금수준은 형편없다. 여성 집중 직무에 대한 가치 평가와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이중노동시장 개선 해결은 직무급제만이 정답이라는 접근은 위험하다. 오히려 구조적 성차별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