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단체 연대체인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업 예산 삭감을 복구하라고 촉구했다. <정소희 기자>

“동료지원가 일은 … 나를 인정해 주고, (다른 동료지원가들이) 나를 동료로 생각해 주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노동으로) 인정받는 거예요.”

피플퍼스트서울센터의 동료지원가 박경인(29)씨는 자신이 이 직업을 통해 “인정받았다”고 강조했다. 타인에게서 인정받기도 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기도 했단 의미일 터다. 발달장애인인 경인씨는 일 경험이 많다. 공항에서 바리스타로 일해 보기도, 마트에서 박스를 정리하는 일도 했다. 복지관에서 청소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경인씨에게 ‘진짜 노동’이 돼 주지 못했다. 중증장애인인 경인씨는 최저임금법 7조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이 제외돼 하루 종일 일해도 비장애인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다. 비장애인 관리자는 일을 일방적으로 지시했고 비장애인만큼 성과를 내도록 재촉했다. 임금을 받는 행위로서든, 자아실현으로서든 이전의 일들은 노동이 아니었다. “타인과 비교해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2019년부터 시작한 동료지원가 일은 달랐다. 타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장점을 지닌 경인씨에게 동료지원가 일은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노동’이 됐다. 최저임금만큼의 임금을 보장했다. 다른 장애인에게 “사회로 나올 수 있다”고 말하는 일이었다. 비장애인의 기준이 아닌 경인씨의 속도로 일하면서 어엿한 동료지원가로 성장했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게 됐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결정권이 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나의 권리예요. 동료지원가 사업이 없어진다면 자기결정권을 잃게 되는 것이라 너무 슬퍼요.” 지난 26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기자회견에서 만난 경인씨는 “187명의 동료들이 다시 일할 수 있게 고용노동부가 이 일이 계속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업 참여 장애인 취업연계 늘어나”
노동부 알면서도 “실적 낮고 사업 중복”

지난 9월 기획재정부가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의 내년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동료지원가 사업’으로 알려진 이 사업은 노동부가 2019년 시작한 사업이다. 동료지원가인 중증장애인이 다른 중증장애인을 만나 취업을 연계해 주는 사업이다. 비경제활동·실업상태에 놓인 중증장애인이 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될 수 있도록 이들의 취업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동료 중증장애인과 상담해 취업과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던 중증장애인이 이력서를 써 보고, 자조모임에 참가하면서 지역사회로 나오는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장애계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점거하는 등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보장을 끈질기게 요구한 끝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사업 시작 4년 만에 전국의 동료지원가 187명이 모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노동부는 ‘실적’과 ‘사업 중복’을 이유로 들었다. 2019년과 2020년 달성도가 각각 35.9%, 22.4%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또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동료상담’사업과 해당 사업이 중복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부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사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노동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노동부는 지난 2019년과 2020년 달성도가 저조한 배경으로 “코로나19로 인해 대면방식의 사업이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사업 시행과 동시에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대부분이 시설 내 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과 대면 상담이 더욱 어려워졌다. 노동부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노동부는 해당 사업의 운영성과로 “동료지원활동 참여 중증장애인수와 이들의 취업연계건수가 최초 사업 시행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고 봤고 “자립생활 철학에 기반한 장애당사자 주도의 사업으로 정당성을 지닌다”고도 평가했다.

장애계는 ‘동료지원가 실적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 10여년간 25%를 넘긴 적이 없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즉 공공기관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 효과를 동료지원가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장애단체 연대체인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이 출근 시간 선전전에서 사용한 피켓. <정소희 기자>
▲ 지난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장애단체 연대체인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이 출근 시간 선전전에서 사용한 피켓. <정소희 기자>

“우리의 일은 복지가 아니라 노동”

복지부 사업과 채용대상, 사업 목적 등도 판이하다. 복지부의 동료상담 사업에서 2% 정도만 발달장애인이 채용된 것과 달리 동료지원가 사업은 약 70%가 발달장애인이다. 동료지원가 사업은 중증장애인을 채용 대상으로 한다. 동료지원가 사업은 노동부의 ‘중증장애인 고용사업’이지만 동료상담은 모든 장애인이 채용 대상이다. 동료지원가 사업이 비경제활동 상태인 중증장애인의 취업의욕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면 동료상담 사업은 인간관계 구축 등 마음회복에 목적을 둔다.

장애계는 무엇보다 이 사업의 예산이 복원되더라도 ‘복지부 소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사업은 노동부가 중증장애인의 고용촉진을 위해 지원하는 유일한 사업이다. 동료지원가 사업의 재원은 장애인 고용기금이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게서 받는 고용부담금을 가지고 동료지원가인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비를 지급한다. 그런데 장애단체 연대체인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에 따르면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은 장애인 고용기금의 0.08% 수준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사업 시행 5년 차에 들어섰지만 여태까지 시행을 제대로 평가한 연구보고서 한 줄조차 없다.

송효정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사무국장은 “이 사업은 노동부가 중증장애인의 고용을 고민하는 단초가 될 수 있는 사업”이라며 “복지부로 해당 사업이 넘어가면 장애인은 복지 서비스 수혜자로 남게 된다”고 말했다. 송 사무국장은 “중증장애인의 노동이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효율성의 맥락으로만 고려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중증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높일까, 어떤 일자리를 중증장애인에게 제공할까 같은 고민이 이 사업을 통해 제기될 수 있다”며 “노동부가 이 사업을 반드시 계속해 나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광진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2019년부터 동료지원가로 활동한 이다영(31)씨는 “동료지원가는 복지가 아닌 노동”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권을 보장해야 하는데 (노동부는) 우리가 복지서비스 대상이라고 우기고 있어요. 우리는 노동자예요. 우리의 노동권을 노동부가 보장해 주지 않으면 누가 보장해 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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