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홍준표 기자>

공무원이 출퇴근 중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났더라도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출퇴근 중 ‘일탈(통상적 경로 이탈) 또는 중단(출퇴근과 관계없는 행위)’과 관련해 공무원 재해보상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과 달리 규정이 없어 법 공백 상태가 지속돼 왔다. 법원 판단에 따라 법 개정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녀 도시락통 사 가던 중 교통사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경우’ 쟁점

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장우석 판사)은 공무원 A씨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 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인사처가 항소를 포기해 이날 1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사건은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영주지청 문경고용복지센터 공무원인 A씨가 2021년 11월 퇴근해 승용차를 몰고 쇼핑몰 ‘다이소’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가 나면서 시작됐다. 수능을 사흘 앞둔 자녀에게 도시락을 싸 주기 위해 다이소에 갔던 A씨는 사고로 염좌와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A씨는 공무상 재해로 요양을 신청했지만, 인사처는 불승인했다. 자택까지의 통상적인 소요시간인 1시간에 비춰 다이소 체류시간(27분)을 단순한 ‘경유’로 볼 수 없고, 다이소가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다. A씨는 재심사도 기각되자 올해 2월 소송을 냈다.

쟁점은 공무원의 출퇴근시 ‘일탈 또는 중단’도 재해로 인정할지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에는 ‘일탈 또는 중단’에 관한 규정이 없다. 공무상 재해 인정기준으로 4조에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라고만 정해져 있다. 반면 산재보험법은 출퇴근시 일탈 또는 중단이 있더라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을 때는 산재로 인정한다.

A씨도 산재보험법 규정을 준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측은 “산재보험법 관련 규정을 참조해 단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에 따라 퇴근하던 중 발생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어난 사고인지를 기준으로 공무상 재해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다이소에 들른 것만으로는 통상 경로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원 “다이소 방문은 통상 경로 범주”
공무원 노동계 “법령 미비 개선 요구할 계획”

법원은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며 A씨 손을 들어줬다. 장 판사는 “(공무원이) 출퇴근 경로에서 일탈 또는 중단하게 된 원인이 행위의 동기와 목적 등에 비춰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서 합리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는 공무상 재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산재보험법 시행령의 ‘일상생활 용품 구입 행위’를 공무상 재해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A씨가 방문한 다이소와 사고지점은 ‘통상 경로’라고 판단했다. 장 판사는 “다이소는 원고 집에서 약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직장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경로 중간에 있어 통상적으로 퇴근하던 경로 범위 내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녀의 도시락통을 구입한 것은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 보기 충분하다는 취지다. 나아가 공무상 재해 인정은 인사처 내부 지침에도 부합한다고 해석했다. 인사처 지침은 산재보험법 시행령 단서에서 정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 구입 행위’는 일탈·중단의 예외 기준으로 삼고 있다.

공무원 노동계는 관련 법령 개정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며 판결을 환영했다. 이철수 국가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이번 소송은 그간 인사처의 공무상 재해 판단 사례에 비춰 특별한 사안도 아닌데 소송까지 이어진 것이 다소 황당하다”며 “이번 소송을 계기로 억울한 조합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법령과 근거에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씨를 대리한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출퇴근 중 일탈·중단의 경우 공무원 재해보상법 규정은 없지만 산재보험법과 마찬가지로 판단해야 한다는 상식적 판결”이라며 “혼란을 줄이기 위해 법을 개정하든지 하위 규정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