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유튜브 갈무리

고용노동부가 사회적기업이 취약계층 노동자를 고용하면 지원했던 직접 인건비 예산을 내년 전액 삭감한다. 사회적기업 간 경쟁을 확대하고 성과를 측정해 정부의 지원도 차등화한다.

직접 인건비 지원에 따른 장기적인 고용창출 효과가 미미하고 정부의 일률적인 지원이 사회적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 지원 사업의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조성할 정부의 밑그림 없이 기존 지원금을 대폭 축소하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당장 정부의 정책 실패로 취업시장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들의 일자리 축소도 우려된다.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관련 내년 예산안은 약 786억원으로 올해 예산인 2천21억9천400만원에서 약 61% 삭감됐다. 노동부 산하기관인 사회적기업진흥원은 285억원으로 올해 대비 58%(692억원) 감소했다.

낮은 고용유지율 근거로 예산 삭감

노동부는 지난 1일 ‘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사회적기업은 2007년 제정된 사회적기업 육성법(사회적기업법)에 따라 설립·운영된다. 사회적기업법은 “우리 사회에서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사회서비스 확충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을 위해 사회적기업의 설립·운영을 지원하는 근거를 담고 있다.

노동부는 사회적기업 유형이 일자리제공형에 치중돼 있어 정부 일자리 사업 수행기관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2022년 기준 사회적기업의 3분의2(66.4%)를 차지하는 일자리제공형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 기업이다. 전체 근로자 중 취약계층 고용비율이 30% 이상인 경우 등 인증 요건을 충족하면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다.

사회적기업의 인증 유형은 일자리 제공형·사회서비스 제공형·혼합형(일자리제공형+사회서비스 제공형)·기타형·지역사회공헌형 등이 있다.

노동부는 사회적기업의 장기적 고용창출 효과도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결과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면서 인건비를 지원받은 노동자의 6개월 이상 고용유지율은 50%였다. 1년 이상 고용유지율은 29.2%로 더 낮았다.

재정지원, 공공기관 우선구매 등 정부의 사회적기업 지원이 기업 운영 성과와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지원되다 보니 자생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만 55세 → 만 60세 중 중위소득 100% 이하’
지원 대상 취약계층 범위도 좁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지원 축소와 경쟁 촉진으로 압축된다.

사회적기업 취약계층을 신규 고용할 경우 지원하는 직접 인건비를 내년에 모두 삭감한다. 정부 지원 대상인 취약계층 범위도 축소한다. 현재 만 55세 이상 고령자를 취약계층으로 보는데 법적 정년인 만 60세 중에서도 중위소득 100% 이하를 취약계층으로 본다.

다만 올해 8월 지원을 약속한 이들의 인건비는 지원한다. 당장 고용에 큰 타격은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게 노동부 입장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고용 인건비 지원 인원은 6천300여명이다.

하형소 노동부 통합고용정책국장은 “사회적기업에 지원하는 인건비는 기존 인력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근로자를 고용할 때 지원하는 것으로 인건비 지원이 폐지되는 과정에 있지만 기존 인력의 고용이 조정되진 않는다”며 “취약계층이 일반 중소기업에 가서 일할 수 있게 추가 인건비를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사회적기업에 직접 인건비 지원을 삭감하는 대신 민간 중소기업의 취약계층 고용 지원 제도를 확대할 계획이다. 고용촉진장려금, 장애인 고용장려금, 장애인 인턴제 등을 활용한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일자리지원제도 예산을 내년에 198억원 추가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9천324명분이다.

정부 지원은 기업 성과에 따라 차등화한다.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되면 성과와 무관하게 △공공기관 우선구매 △법인세·소득세 5년간 감면 △인건비 등 동일한 재정지원을 받았는데, 사회적가치·경제적 성과를 평가해 공공구매나 세제혜택 영역에서 차등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우수한 사회적기업의 규모화는 촉진한다. 이때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금은 민간기업의 ESG 투자를 촉진해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사회적기업, 나아가 사회적경제도 정부 지원이 아닌 민간 자본을 통해 하겠다는 것으로 윤석열 정부의 작은정부 기조와 일치한다.

“정부 정책 실패 메운 사회적기업,
사기업으로 바라봐선 안 돼”

사회적기업이 일자리 제공에 그치면서 무늬만 사회적기업이라는 비판이 학계나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없던 것은 아니다.

김형용 동국대 교수(사회학)는 사회적기업의 내실화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의 지원 예산 대폭 삭감과 같은 형태가 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5년짜리 기본계획이라면 먼저 사회적경제의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지,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영역을 만들고, 그 안에 액터(참여자)들이 각자 어떤 영역을 담당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 나와야 한다”며 “사회적 복지 바탕은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데 기업에 돈만 준다고 만들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본계획에는 그런 내용도 없고, 기존 사업들의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것뿐이다. 사회적경제를 확대하겠다는 국정과제도 뒤엎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확대가 축소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정부가 사회적기업을 일반 사기업과 똑같이 보는 것은 잘못됐다”며 “사회적기업이 증가하는 것은 우리나라 복지가 발달하지 못해 생긴 문제로 정부의 정책 실패를 사회적기업이 메워 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 명예교수는 “고용유지율이 낮다면 지원을 중단할 것이 아니라 고용유지율을 높일 수 있게 정부가 지원을 해 주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학교에서 성적이 낮은 사람한테 불이익 주듯이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직 청와대 사회적경제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김기태 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현 정부는 사회적기업에 돈을 퍼줬다고 생각하는데 취약계층을 고용하지 않으면 정부의 복지 예산이 더 들어간다”며 “취약계층이 자립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사회적경제가 수행하니까 그 가치를 인정해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도 법을 만들고 정부가 지원해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사회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를 보고 예산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은 이명박 정부 때, 협동조합기본법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제정됐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촉진하고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강예슬·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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