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과 손잡고 회원들이 25일 서울고법 앞에서 파기환송심 선고 직후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국가가 2009년 정리해고에 반대해 옥쇄파업을 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파기환송심에서 배상금액이 줄어들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경찰의 위법한 진압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경찰 장비에 일부 손상을 입혔다면 정당방위에 해당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다만 재판부가 선고 이전에 제시한 조정안과 달리 노조와 개별 노동자 모두에게 배상 책임을 묻기로 했다. 국가가 제기한 손배 사건은 14년 만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됐다.

헬기 손상 책임 없어 … 기중기 손상 책임 80%→30%

서울고법 38-2민사부(재판장 박순영)는 25일 오후 국가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와 지부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1억6천6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송비용은 국가가 90%, 노조쪽이 10%를 부담하도록 했다. 파기환송심 쟁점은 기중기 손상에 대한 배상 책임 변제비율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다. 항소심 재판부는 헬기와 기중기 손배 책임을 인정해 약 11억3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에서 6년5개월간 사건이 계류되며 배상액 규모는 지연이자가 붙어 30억여원으로 늘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원심을 파기하면서 경찰이 위법한 방법으로 농성을 진압했다면 노동자들이 방어를 위해 일부 장비에 손상을 입혔더라도 정당방위에 해당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헬기와 기중기 손상에 따른 휴업손해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없고, 기중기 수리비 책임 변제비율을 80%로 본 것이 과도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책임 변제비율을 낮춘 것인데 노조는 30% 수준인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 소송 철회도, 법원 조정안 수용도 안해

앞서 재판부는 지난 6월20일 기중기 손상 배상책임 3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조정안을 국가와 노조에 전달했다. 노조에만 해당 책임을 묻되 소송 비용은 각자 부담하도록 했다. 이 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지닌다.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노조는 당시 화해안을 수용했지만 국가가 이의신청서를 제출해 이런 내용은 효력을 잃게 됐다. 노동자가 부담하게 된 배상금액만 놓고 봤을 땐 조정안과 파기환송심 결과가 3억원 수준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개별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면제한 조정안과 달리, 노조와 개별 노동자들의 책임을 공동으로 지게 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서범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조정안에 비해 개인들에게는 불리한 결과”라며 “조정안을 경찰이 수용했다면 노조가 집단적인 틀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배상금액이 줄어들어도 개인에게 책임을 묻게 되면 이는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대법원 선고 이후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파기환송심까지 이어진 데다 조정안마저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 변호사는 “무분별한 손배 청구에 제동을 걸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앞장서서 거액의 손배청구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국가가 손배 문제에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법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말이라도 지켜라”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이날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서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에서 확정된 금액과 관련해서는 KG모빌리티 기업노조도 배상금액에 대해 함께 마음을 모으자고 결의해 기금 마련을 위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며 “현장 노동자들은 고통과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짐을 나누고 있는데 자본도 아닌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국가가 재상고를 하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소송 당사자 채희국씨는 “14년간, 56번의 계절이 변하는 동안 쌍용차 노동자들은 가슴이 막힌 상태로 답답하게 지냈다”며 “당사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경찰은 ‘법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말만 반복해 왔다. 경찰은 파기환송심 판결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씨는 “14년이 지나도 투명한 철창의 감옥에 살고 있는 마음”이라며 “이 감옥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 오늘이 그 날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개인에 대한 손배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이찬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금속노조에 대한 배상 책임은 행정부와 사법부가 헌법적 기본권인 노동3권 행사와 보장을 편협하게 본 결과”라며 “온전한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손잡고도 논평을 내고 “기중기는 대법원에서 정당방위로 판단된 헬기와 같은 도구로 활용됐다”며 “헬기는 정당방위인데 기중기는 정당방위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법부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36명은 단지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배상 책임의 대상이 됐다”며 “노란봉투법이 왜 필요한지 재차 확인하게 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