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파주 급식조리사의 손 <필자 제공>
▲ 경기 파주 급식조리사의 손 <필자 제공>

한여름 솥단지와 전판을 끌어안고 전쟁 같은 배식시간을 보낸 뒤, 땀과 물에 흠뻑 젖은 작업복은 후끈해진 몸과 뒤엉켜 도무지 벗어내기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몸무게의 배가 넘는 조리도구를 아무렇지 않은 듯 번쩍 들어 옮기길 수십번, 학교 밖을 나서는 순간 한의원과 정형외과 순례에 나선다.

어쩌면 누구 못지않게 방학은 교육공무직에게 절실하다. 그러나 방학은 ‘무급 강제휴직’의 또 다른 이름이기에 속도 없이 반길 수 없다. 내 호주머니 사정을 굳이 내비치고 싶지 않은 학교장을 찾아가 겸직 허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 부끄럼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이마저도 용기가 나질 않아 스마트폰의 은행 앱을 켜고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대출 상품을 수시로 뒤적인다.

사실 때마다 해외여행, 다만 제주도라도 훌쩍 떠나는 사람들처럼 ‘나도 한번’ 하는 마음을 먹다가도, 치솟은 대출이자와 장바구니물가를 되짚으며 이내 부풀었던 마음을 식힌다. 결국 학기 중엔 꿈도 못 꿀 매니큐어 사치로 소소하게 여름휴가, 방학을 맞이한다.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보릿고개를 앞두고 구황작물 쟁이듯 학기 중 월급의 일부를 별도 통장으로 자동이체하며, 방학을 대비한다. 그럼에도 외벌이에, 가장인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에게 방학 기간 ‘단기 알바’는 필수다. 학기 중 배달에, 고깃집 아르바이트까지 나서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투잡’을 알고도 눈감아주는 곳도 있다지만, 전적으로 교장과 교감 마음이다. 겸직허가 신청을 거부하는 경우도 왕왕 존재하는데, 다른 일을 하다가 다쳤을 경우 학교측이 책임질 수 있고 그에 따른 업무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거부 이유다. 실제로 허가 없이 다른 일을 하다가 징계받은 사례도 존재한다. 도대체 얼마나 ‘떼부자’가 되려고 하나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 주머니 사정 모르고 하는 소리다.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기본급을 받는데 월급여(기본월급)에 급식비도 포함돼 있다. 연차가 쌓을수록 높아지는 일정액의 수당을 받는다. ‘중꺾마’와 ‘존버’의 정신으로 연차 쌓아가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리어 해를 거듭할수록 들어가는 병원비에 약값이 배로 치솟는다. 점입가경. 게다가 몇 해 전부터 학교급식실을 뒤덮은 폐암 위험과 채용인원 미달에 중도퇴사자 증가로 현장의 불안과 업무강도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일과 양육이 동시에 가능하고 고용이 안정된 꽤 괜찮은 직장이라 생각하겠지만, 정작 남의 새끼 밥 챙기다가 내 새끼 입학식과 졸업식도 못 챙기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어떤 누군가는 ‘그럼 그만두던가’ 하는 말부터 앞세우겠지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십 수년을 몸담고 일한 학교는 우리에게 애증 그 자체다. 이 짓을 내일도 하면 내가 미친X이지 하가도, 점심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부리나케 급식실로 내달려와 단숨에 비운 식판과 함께 건네는 학생들의 “잘 먹었습니다” 한 마디에 마음이 녹는다. 지독한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참고 참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조금은 달라진 현장을 떠올려보자면, 지금은 비록 열악안 처우지만 결국 언젠간 우리의 고생을 알아줄 것이란 기대를 가지게 된다.

사실 방학은 어른들에겐 도통 반갑지 않은 존재다. 특히나 어린 자녀를 둔 여성노동자(육아의 부담이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이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들에게 육아와 가사의 부담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에겐 더욱이 그렇다. 해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다가올 이번 여름방학엔 교육공무직들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 앞 새로 연 네일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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