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의 산화 이후 삭제된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이들이 모였다. 인권, 노동안전, 미디어, 구술기록 등 다영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건설노동자의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노동자 인터뷰를 보내왔다. 여덟 차례 걸쳐 싣는다. <편집자>

건설현장 펜스 밖 세상은 몰랐다. 땅을 파고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며 건물이 오르기까지의 수많은 공정을, 한껏 꾸민 아파트 이름은 알아도 그걸 지은 이들의 노동은 알지 못했다. ‘건폭’ 몰이 속에 스스로 불을 당긴 고 양회동 지대장이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은 건설노조의 일원으로 동료들과 함께 지어온 세계였다. 아무리 탄압해도 우리가 지은 세상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타워크레인 기사, 철근공, 형틀목수, 펌프카 조종사, 스카이크레인 기사. 또 다른 ‘양회동’들의 이야기다.

고소공포증 극복하고 올라간 타워크레인

23년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남강문(가명)씨를 만났다. 펜스 위로 우뚝 솟아있는 타워크레인을 조종하는 게 그의 업무다. 처음 일을 시작한 건 2001년이다. 외환위기로 당시 다니던 회사가 폐업하는 바람에 건설현장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처럼, 무인으로 작동하는 소형타워를 움직였는데 주위 노동자들과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안쓰러워 보였는지 위에 올라가야 그나마 대우받는다고 말해주더라고요.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렇게 그는 타워 꼭대기에 올랐다.

타워크레인은 건설현장에서 필요한 자재를 인양할 때 사용하는 기계다. 업무가 단순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필요하면 무전기로 주문해요. 무전기는 많은 사람이 갖고 있죠. 저는 순서를 가려야 해요.” 타워크레인 기사는 동시에 여러 작업에서 자재를 주문할 때, 이를 조율해야 한다. 주문이 들어온 순서대로 하는 건 ‘일 잘하는’ 기사가 아니다. 늦게 주문했어도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먼저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앞 팀이 항의하기도 하고, 급한 걸 놓치면 일부러 공사 기간 늘려 힘들게 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기도 한다. “항상 일을 할 때 오해를 받죠. 양해를 구할 때가 많아요.” 남씨는 물건을 올리고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업무 우선순위를 판단하고 작업 순서를 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위험작업 강요 거절하면 해고, 변화 만든 건 노조

건설현장에서는 산재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타워크레인도 마찬가지다. 기계 자체의 문제, 설계 오류에 의한 사고도 있지만 대게는 무리한 요구로 위험업무를 하면서 사고가 난다. “땅에 붙어 있거나 빔(건축재료, 강철)이 붙어 있는 물체는 인양하면 안 돼요. 떨어지지 않아서 더 많은 힘이 들어가거든요. 물체 중량 때문에 타워 붐대에 활시위를 당긴 것처럼 엄청난 텐션이 발생하죠. 타워가 전복되거나 붐대가 꺾여 붕괴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현장에서는 종종 이처럼 금지된 업무를 요청한다. 크레인이 하지 않으면 두세 사람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용 절약, 시간 절약, 결국 이윤이 핵심 이유다.

▲ 타워크레인 기사 남강문씨는 고용 불안 탓에 인터뷰 사진을 거절했다. 사진은 인근 공사현장의 모습. 
▲ 타워크레인 기사 남강문씨는 고용 불안 탓에 인터뷰 사진을 거절했다. 사진은 인근 공사현장의 모습. 

위험작업을 거절하면 태업한다며 기사를 교체하고, 맡아서 사고가 나면 운전미숙이라며 기사의 책임을 묻는다. “내일 나오지 마.” 건설현장에서 해고는 참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생기고는 달라졌다. “다 같이 일을 구하러 다녀요. 현장이 몇 개나 있는지, 타워크레인은 얼마나 쓰는지 알아보고 입찰하는 회사에 연락해서 교섭하죠.” 현장 끝나고 나온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데, 교섭을 통해 일자리가 생기면 번호순으로 면접 기회를 준다. 노동조합은 ‘함께 일을 찾고,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임금을 떼어가지 못하게 하고, 위험한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이른 바 ‘노가다’가 일요일과 공휴일을 쉴 수 있게 한 것도, 주 40시간 노동을 정착시키고 초과근무는 합의하도록 한 것도, 기계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노동조합이다. 노조는 안전한 현장을 위해 애쓰고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뿐이다.

‘월례비’가 불법? 이미 답은 정해져 있어

그런데 최근 노동조합이 위태로워졌다. 정부가 건설노조를 건설현장 비리의 원흉이라 지목했다. 공갈, 협박, 업무방해 등 다양한 죄목을 붙여 무려 1천400여명을 소환조사했고, 남씨도 소환장을 받았다.

“집회는 왜 했는지, 노동법 위반한 현장을 왜 고발했는지, 그게 다 월례비 받으려고, 금액 올리려고 그런 거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회사가 300만원, 너희(노조)가 320만원 얘기했는데 결국 320만원이 됐다. 그걸 위해서 압력을 행사한 거 아니냐’고 하는 거죠. 아니, 우린 그런 적도 없고. 얼굴을 본 적이 있어야지.” 조사 대상이 됐던 시기는 남씨가 일을 하지도 않을 때다. 당시에 현장에 있던 사람에게 진술서도 받아 제출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새 ‘월례비는 임금’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다시 조사받을 때, 그는 판결문을 출력해서 갖고 갔다. “안 받더라고요. 원래는 월례비 받은 거 자체가 불법이라고 하다가 초점이 바뀌었죠. 강제성이 있지 않았냐고.” 불법 하도급, 위험업무, 초과노동 같은 월례비를 관행으로 만들어 온 구조적 원인은 살피지 않았다. 심지어 있지도 않았고 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건설노조는 불법 집단이어야 하고, 너는 공갈·협박범이어야 한다는 답.

인양 작업이 이뤄지는 모습. 
인양 작업이 이뤄지는 모습. 

하나하나 쌓아 올린 권리

“노조는 불법으로 초과(노동) 안 하고 주 52시간만 하니까 일을 안 줘요.” 이미 건설현장은 퇴행하기 시작했다. 먼저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현재 타워크레인 일자리는 ‘건폭’ 몰이 사태 이전과 비교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타워크레인 키 높이는 거 코핑이라고 해요. 옛날에 동료가 죽었어요. 그 작업하다가 붕괴해서. (안전)논란이 되고 안 했어요. 근데 요즘에는 또 합니다. 그거 해도 잘 안 줘요.” 일자리가 없으니, 일을 하고 싶으면 어쩔 수 없다. 노동조합 탄압으로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도 함께 후퇴하고 있다.

23년째 일을 하고 있지만, 그는 분위기가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당연한 것이 무너진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그래도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사람들과 모이고 노동조합에 가입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타워를 타면서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냥 타워 기사, 노동자가 좋아요. 자랑스럽죠. 비정규직에 사회적 지위가 이 정도밖에 안 돼도 우리는 벽돌 올리는 것처럼 한 땀 한 땀 다 만들어 왔으니까.” 그래서 다시 노조 없는 현장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는 오히려 덤덤하게 다시 일어날 것이라 다짐하며,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고민하고 그 대안을 상상한다. “다시 원청 고용되면 좋겠죠. 안 받겠죠? (웃음) 그러면 (건설기계 e-마당) 사이트만 운영할 게 아니라, 국토교통부나 정부가 임시 고용이라도 해서 일자리를 나눠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워크레인에서 내려다 본 공사현장의 전경. 
타워크레인에서 내려다 본 공사현장의 전경. 

 

QR코드를 확인하면 더 많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확인하면 더 많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글 = 예진(김용균재단 상임활동가)
사진 = 건설노동자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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