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차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 조합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조합원 음독 사태와 관련해 기아차의 부당한 강제전환배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기아 비정규직이 최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원래 일하던 곳이 아닌 다른 부서에서 일하게 된 데다 주기적으로 다른 업무를 해야 하는 탓에 육체적·정신적 부담에 시달렸다고 가족과 동료들은 주장한다.

11년 만에 정규직 됐는데
“원치 않는 부서에 강제로 배치”

18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6시40분께 기아 화성공장 조립3공장에서 일하는 A씨가 회사 주차장 본인 차량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된 뒤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생명이 위중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당사자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27일 기아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271명이 기아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2011년 7월 소송이 제기된 지 11년 만에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소송 당사자들은 기아 화성·광주공장에서 일하면서 컨베이어벨트를 활용하지 않는 ‘간접공정’ 업무를 담당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기아 사측은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원래 일하던 부품 서열 등 작업이 아닌 조립공정으로 배치했다. 조립공정은 노동강도가 가장 강한 곳으로 분류된다. 기아는 부품 서열·출고·도장 등 업무는 여전히 도급계약을 체결해 공정을 진행 중이다. A씨를 포함한 62명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인사발령 구제신청을 냈다.

경기지노위는 지난 5월22일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경기지노위는 “조립부 인사발령은 업무상 필요성도 인정하기 어렵고, 생활상 불이익이 객관적으로는 크지 않으나 업무상 필요성과 비교·교량했을 때 이 사건 근로자들이 감내할 수준의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신의칙상 협의 절차 역시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립부 인사발령은 정당한 인사명령이라 볼 수 없으므로 부당전직임을 인정하고 해당 인사발령의 취소를 명한다”고 판정했다. 사측은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제대로 된 협의 절차 없었고,
2~4주마다 작업 내용 변경돼 부담”

A씨 동료이자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당사자들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1년 만에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A씨가 원치 않는 공정에 강제로 배치되고, 노동위원회에서 부당전직을 인정받았지만 사측이 재심을 청구해 사실상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A씨의 매형은 편지를 통해 “20년 이상 서열작업에서 일했던 숙련된 작업자인데 멀쩡히 일하던 공정에서 강제로 빼내 엉뚱한 일을 하라고 하는 건 사실상 회사를 관두라는 것”이라며 “신체조건이 맞지 않는 작업장에 배치하는 등 가족들에게 회사에서의 어려움을 계속해서 이야기 해 왔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출근길에 회사 주차장에서 목숨을 끊으려고 했겠냐”고 호소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조립공정으로 배치하기 전 제대로 된 협의 절차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와 사측은 지난해 12월15일 대법 판결 후속 조치와 관련한 특별 노사협의를 진행했지만 대법원 판결 당사자들은 같은달 29일 이 같은 노사협의에 대해 사전에 설명을 듣거나 동의한 바 없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사측에 보냈다. 경기지노위도 “사용자는 근로자와의 개별적인 설득이나 협의절차는 형식적으로 했을 뿐이고 이마저도 이종업무인 조립부 배치를 전제로 조립부 내 어떤 (작업)반에 배치받고 싶은지에 그쳤다”고 판단했다.

특히 A씨가 속한 조립3공장의 경우 2~4주마다 반을 이동시켜 현장 적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A씨가 근무한 화성공장 조립3공장에서는 강제로 전환배치된 노동자들을 2~4주마다 다른 작업으로 이동하게 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현장에 적응할 수 없도록 몰아붙였다”며 “이번 사태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불법파견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과 해당 공정에 대한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아 사측은 “경기지노위 판정 결과를 존중하며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진행 중”이라며 “소속 직원에게 발생한 사건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내부적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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