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작가지부

KBS 사측이 단체교섭에서 방송작가를 배제하려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저지당했다. 방송작가들이 노동자성을 주장한 지 20여년 만에 첫 교섭 길이 열렸다.

서울지노위는 지난 10일 오후 언론노조(위원장 윤창현)가 KBS를 상대로 낸 ‘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 공고 시정신청’ 사건에서 KBS 사측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사측이 교섭요구 노조 확정공고에서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지부장 염정열)를 제외하면서 발생했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15일 정규직으로 구성된 노조 KBS본부의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사측은 다음날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언론노조는 사실 공고 기간인 같은달 20일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방송작가지부의 교섭 참여 보장을 KBS 사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6월24일 교섭요구 노조 확정 공고에서 방송작가지부를 제외한 채 KBS본부와 KBS노조, KBS공영노조만 명시했다. 언론노조는 이의제기에도 사측이 수정 공고하지 않자 서울지노위에 시정신청을 냈다.

교섭 요구 노조 공고 시정신청 사건
KBS 사측 궁색 해명 늘어놓다 ‘주의’

심문회의 쟁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방송작가의 노동자성 여부가 아니었다. 사측은 심문 과정에서 노동자성 여부를 문제 삼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방송작가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첫 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게 노조 평가다.

대신 사측은 하나의 산별노조에서 두 번의 교섭을 요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측 대리인은 “언론노조의 최초 요구안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공고했다”며 “KBS본부와 방송작가지부는 같은 언론노조다. 한 산별노조에서 교섭 요구가 두 개일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사측이 방송작가지부와의 교섭을 회피하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고 반발했다. 노조 대리인은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각각 교섭을 요구한 공공운수노조 내 두 개 지부를 구분해 공고한 사례를 언급하며 “교섭 요구를 두 번 한 게 아니라 사정상 다른 날짜에 통보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심판위원도 사측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공익위원은 “방송작가 (처우를) 교섭 의제로 삼을 여지가 충분히 있다”며 “(교섭을 거부했다고) 오해받지 않을 방법이 있다. 굳이 (수정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언론노조가 KBS본부와 방송작가지부의 조합원수를 합산해 공고해도 된다고 요구한 점을 언급하며 “수정 요구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수정도 아예 안 된다는 건 어폐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측은 “최초 요구대로 공고했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심판 의장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정규직노조 대표교섭서 실무교섭할 듯

서울지노위가 언론노조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방송작가지부가 방송사와 첫 단체교섭에 나설 길이 열렸다. 마산MBC 방송작가들이 교섭을 요구했다가 2003년 서울고법에서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좌절된 뒤 20년 만에 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지향 방송작가지부 사무처장은 이번 판정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해 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의철 KBS사장은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고용안정을 보장하겠다고 했다”며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실화되면 비정규직의 고용이 제일 불안정한 만큼 하루빨리 방송작가지부를 교섭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사측은 우선 결정문을 송달받은 뒤 인정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사측이 확정 공고를 수정할 경우 KBS본부와 방송작가지부 조합원수를 합산해 언론노조로 표기할 것으로 보인다. 과반노조인 언론노조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마무리되면 교섭이 진행된다. 언론노조 관계자는 “하나의 언론노조로 교섭을 시작하지만 실무적으로 교섭이 분리될 것”이라며 “방송작가들도 직군별 단협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송사에서 언론노조가 교섭대표 지위에 있는 만큼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앞장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방송작가지부는 전국 순회 간담회를 통해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교섭 요구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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