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면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적용받지만 구청 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일부만 적용받는다. 같은 학교에서 일해도 조리사는 안전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특수교육지도사는 그렇지 못하다. 왜 이런 차별이 발생하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다음달 1일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 고시 개정에 앞두고 산업안전보건법 일부를 적용제외하는 ‘현업업무 종사자 기준’ 문제를 3회에 걸쳐 살핀다. <편집자>

“특수교육지도사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깨물림, 꼬집힘 이런 것들은 의사가 4일 이상의 진단을 내주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4일 미만은 학교안전공제회로 처리해야 하는데 대상이 아니래요. 개인 실비보험 처리를 하든지, 아니면 학생 부모님한테 이야기해야 하는데 할 수 없잖아요.”

정유정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전국특수분과장은 “급식노동자 폐암 문제처럼 특수교육지도사의 산재 문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교육공무직의 산재현황은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없다”고 말했다.

다음달 1일 현업고시 종사자 고시 발표

다음달 1일이면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상 법의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직군 중 일부를 선별해 법을 전면적용받을 수 있는 ‘현업고시 종사자’ 고시를 발표하게 된다. 3년 만의 발표다. 해당 고시에 포함되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만들고 안전보건교육을 받을 권리를 얻게 된다. ‘산업안전을 특별히 고려해야 하는 직군’이라는 사회적 인식도 반영된 셈이다.

교육 분야에서 현업고시 종사자 확대 요구가 높은 직종은 모두 교육공무직이다. 학교비정규직인 이들이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 오랫동안 소외돼 왔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3월 학교급식실 조리환경 개선방안을 내놨지만 2021년 2월 학교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고 2년이 지난 뒤였다. 현재까지 서울·경기·충북교육청의 급식노동자 폐암 건강검진 결과는 공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현재 교육 분야에서 현업업무 종사자로 분류된 이들은 학교 경비나 시설물의 유지관리직, 조리실무사뿐이다.

전국에 8천700여명이 종사하고 있는 특수교육지도사의 경우 특수교육 대상 학생과 일상생활을 함께하면서 크고 작은 부상을 반복해 입는다. 하지만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하지 않은 상처나 부상을 입으면 산재를 신청할 수 없다. 학교에서 학생이나 교직원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시·도교육청마다 있는 학교안전공제회에 공제급여를 청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 17개 교육청 중 11개 시·도교육청(2021년 기준)은 교육공무직을 안전공제회 급여지급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정 분과장은 “산업안전보건법 현업고시 종사자로 포함되면 적어도 현장에서라도 근무환경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보건 사각지대 놓인 공무직·비정규직

공공행정 분야에서도 공무직 노동자들이 맡은 일에 대해 현업고시 확대 요구가 높다. 일의 위험도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 공공행정 분야에서 현업업무 종사자로 고시된 직종은 경비나 시설물의 유지관리 업무, 도로, 청소, 산림조사, 조리실무로 제한된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4월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공무직 노동자 7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5%는 본인이나 동료가 업무 중 4일 이상의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1%는 본인이나 동료가 시민의 폭언이나 폭행 위험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안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59%의 응답자가 개선 요구를 할 수 있는 절차를 모르거나 절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응답자의 100%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적지 않은 위험을 수반한다. 지난해 업종별 산재현황을 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분야 재해율은 0.77%였다. 해당 분야 노동자 67만7천769명 중 사망자 31명, 재해자는 5천191명으로 전체 노동자 평균 재해율(0.65%)보다 높은 수치였다.

남양주시청 공무직 노동자인 정지매 공공운수노조 자치단체공무직본부 남양주시지회장은 “최근 현업고시 확대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고 말했다. 정 지회장은 수도검침원이기도 하지만 노조간부라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출석한다. 하지만 위원회에서 수도검침원 관련 안건을 제시하면 현업업무 종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의결안건에서 제외된다. 정 지회장은 “지난해 남양주에서만 산재가 8건, 넘어짐이 12건인데 안전교육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남양주 공무직 중 산재가 제일 많이 발생하는 직종이 수도검침원인데 환경미화 노동자만 중대재해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수도관 위 철판과 맨홀 뚜껑의 무게가 수십킬로그램에 달해 수도검침 업무는 근골격계 부담이 크다. 맨홀 안에 들어가 일하기 때문에 유해가스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고, 맹견에 물리는 사고나 낙상사고 위험도 높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현업고시 확대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은 공공행정 분야에서 수도검침을 포함해 11개 직종, 교육 분야 3개 직종, 국방 행정 3개 직종을 이번 현업고시 종사자 고시에 포함할 것을 요구해 왔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모든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적용해야 한다”며 “일부 직군에게 법의 핵심 내용을 적용 제외하는 시행령은 산업안전보건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규정”이라고 꼬집었다.

▲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산업안전보건법 현업고시 확대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공공운수노조 자치단체공무직본부>
▲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산업안전보건법 현업고시 확대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공공운수노조 자치단체공무직본부>

“영국·호주,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법적용”

심재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가 2015년 학술지 노동법연구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과 호주는 사업수행에 영향을 받는 모든 노무제공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근로기준법과 동일하게 사용종속관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 보호대상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 영국의 경우 사업주는 “사업을 수행하는 것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고용상태에 있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안전을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하도급업자·노동자를 포함해 방문자·고객·통행자 등도 보호대상에 포함해 매우 포괄적으로 명시한 사례다. 호주연방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도 노무제공 활동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사업주는 안전배려의무를 가지도록 규정했다.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 과정에서 사업주의 안전배려의무를 도급인에게까지 확대할 것인지를 논의하면서 참고하기도 했다. 현업고시 종사자 고시를 앞둔 현재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몇몇 직군에 산업안전보건법의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2조와 별표를 폐기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고시 변경이 3년에 한 번으로 주기가 길어 다양한 공무직이 새로 생겨 나고 업무 환경이 변하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행령으로 일부 직군을 적용 제외한 뒤 다시 고시를 통해 적용하는 직군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현장의 혼란도 가중된다는 비판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공공행정과 교육 분야에서 현업고시 확대를 요구하는 직군의 노동자들은 고위험 업무에 해당하는 이들이 다수”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해당 사업장들에서 법을 자발적으로 준수하기도 해 적용 제외의 타당성이나 실익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업 업무만을 정기적으로 다시 조사해 추가하는 방식은 행정 소요도 많고 차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문제도 있어 산업안전보건법상 일부 적용 제외 조항은 삭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산업안전보건 권리를 행사해야 할 노동자들이 법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게 만들어 놨다”며 “노동시장과 고용구조의 변화가 빠른 상황에서 일하는 누구나 산업안전보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그나마 현업고시에 들어가는 기회를 만드는 곳은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이라며 “노조조직률이 낮은 상황에서 노조가 없는 비정규직·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산업안전보건 사각지대가 더 넓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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