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 충남도교육청에 입사한 특수교육지도사가 특수교육 대상 학생에게 맞고 물리고 꼬집혀 다친 상처와 순천시의 한 특수교육지도사가 학생이 밀어 낸 벤치 의자에 발등을 맞아 골절된 사진. <학교비정규직노조>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면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적용받지만 구청 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일부만 적용받는다. 같은 학교에서 일해도 조리사는 안전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특수교육지도사는 그렇지 못하다. 왜 이런 차별이 발생하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다음달 1일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 고시 개정에 앞두고 산업안전보건법 일부를 적용제외하는 ‘현업업무 종사자 기준’ 문제를 3회에 걸쳐 살핀다. <편집자>

예측불가능한 도전적 행동에 언제나 대비

“이 법은 우리에게 꼭 필요해요.”

강원도에서 15년간 특수교육지도사로 일한 정유정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전국특수분과장의 말투는 단호했다. “최근 너무 슬픈 사진을 보게 됐다”며 “너무 끔찍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얼마 전 인천에서 일하는 특수교육지도사 동료 A씨의 왼팔 가운데 살점이 떨어져 나간 사진을 봤다고 했다. A씨가 맡은 장애아동이 깨문 상처였다. “많은 (상해)사례를 봤지만 그중에서도 끔찍한 사례”라며 “아이들의 행동으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특수교육지도사는 장애아동의 도전적 행동에 언제나 대비해야 한다. 도전적 행동은 장애아동이 타인 혹은 자신, 물건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해 상해나 물품 등의 손괴가 발생하는 행동을 말한다. 장애아동의 신변처리부터 식사를 비롯한 일상생활까지 일과를 함께하는 특수교육지도사에게도 아동의 도전적 행동은 예측불가능하다. 그래서 상해에 대비해 여름에도 긴 옷을 입는 이가 많다.

상해사고뿐 아니라 근골격계질환도 이들에겐 ‘직업병’이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2019년 강릉에서 일하는 한 특수교육지도사의 왼손 관절염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이 특수교육지도사는 등교시간 통학버스에서 넘어지는 학생을 붙잡다가 손목이 꺾였다. 질병판정위는 특수교육지도사가 하는 작업 내용을 휠체어 태우기와 내리기, 휠체어 밀기, 학생돌봄 작업으로 구분해 신체부담요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질병판정위는 “특수교육지도사 업무(장애학생 행동문제 및 이동지원 등)가 손목 관절에 충분히 무리를 줄 수 있다”고 인정했다.

2017년 뇌병변이 있던 남고생을 지원한 정 분과장은 휠체어 리프트 버스가 없는 학교에서 아이를 1년간 안아 버스를 오르내렸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없는 학교는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기저귀 교환대나 장애인 화장실도 없다. 그는 자신의 몸을 지지대 삼아 아이의 활동을 보조해야 했다. “만약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안전보건교육이 있다면 보조공학기기에 대한 교육을 받고 이를 요청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죠.” 정 분과장이 강조했다. “지금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데 만약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다면 적어도 질환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을 거예요.

▲ 학교 도서관을 리모델링할 때 선호되는 계단서가에서는 책 수레를 끌지 못해 사서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책을 들고 오르내려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 학교 도서관을 리모델링할 때 선호되는 계단서가에서는 책 수레를 끌지 못해 사서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책을 들고 오르내려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백조처럼 우아한 사서? “물 밑 헤엄치는 다리는 상처투성이”

“사서를 백조처럼 우아하게 책 읽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물 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니까요.” 오수연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사서분과장이 말했다. 그는 2019년 도서관 리모델링을 하면서 떨어진 책장에 발등이 부딪혀 피부가 괴사하는 사고를 경험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파인 상처 때문에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 오 분과장은 “리모델링으로 인한 사고나 근골격계 부담 문제가 크다”며 “도서관 리모델링을 할 때 사서업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공무직본부가 지난 4월 사서분과 조합원 479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본인이나 동료가 산재 신청 기준 4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서는 무려 93%나 됐다. 응답자의 100%가 안전보건교육이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필요성을 느낀다고 답했다.

도서관 리모델링 사업은 일부 사례가 아니다. 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학교도서관 리모델링 대상학교는 초·중·고교를 합쳐 총 304곳이다. 서울시 전체 초·중·고교(1천351개교)의 22%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도서관에 사서나 사서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전체 학교의 48%다. 우리나라 학교 2곳 중 1곳은 사서나 사서교사가 1명 배치되거나 그마저도 없다. 도서관 이용자는 학생·학부모·교직원을 포함해 수백 명에 달하고 청소와 서가 정리는 모두 홀로 배치된 사서의 몫이다. 일상의 노동강도가 높은 사서에게 리모델링은 단순한 환경 개선을 넘어서 신체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리모델링을 할 때 ‘일하는 사람’이 고려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최근 선호되는 계단식 서가나 복층, 동굴 형태의 책장이나 도서관 구조물은 사서의 근골격계 부담을 가중시킨다. 오 분과장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열린다면 리모델링시 사서의 동선을 고려해 달라는 의견을 학교에 정식으로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근골격계질환뿐 아니라 책 먼지로 인한 호흡기질환 역시 사서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직업병이기 때문에 예방을 위한 교육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노동자에게 모든 산업안전보건법을”

최근 두 달간 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라”는 구호로 결의대회와 증언대회를 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으로 ‘일터에서 안전할 권리’를 차별받는 노동자를 줄이자는 목적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2조1항에는 법의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사업장이나 사업(직군)의 범위를 별표에 명시하고 있다. 업무 특수성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다. 이 때문에 공공행정이나 국방·사회보장행정·교육서비스업에 속하는 초·중·고교 같은 교육기관이나 특수학교, 대안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 일부만 적용된다. 그 중에서 산재 발생 위험이 높은 일부 직군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3년마다 관련 고시를 검토해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적용하도록 한다. 공공행정이나 교육서비스업 분야의 조리 실무 혹은 설비나 장비의 유지관리 업무 직군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노동부 고시를 통해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적용받게 된 이들을 현장에서는 ‘현업업무 종사자’라 부른다. 현업업무 종사자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하거나 안전보건교육을 받을 권리가 없다.

시행령으로 일부 직군을 적용제외 한 뒤 다시 고시를 통해 현업업무 종사자를 분류하다 보니 일터에서는 혼란이 크다. 같은 일을 해도 사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배제당하는 일도 있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면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적용받지만 구청 보건소에서 일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을 일부만 적용받는다. 국방부에 소속된 급식·미화·시설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적용받지 못해 국방부 소속이라는 이유로 다른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행정 노동자와 차별받는다.

일터가 학교인 교육공무직 노동자들도 현업업무 종사자라는 기준으로 나뉘어 차별받고 있다. 조리실무사의 경우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개최하거나 안전보건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특수교육지도사·과학실무사·사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적용받지 못한다. 이들은 현업업무 종사자에 포함되기 위해 자신의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일인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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