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의 노동시민사회장이 17~21일 진행됐다. 노동절인 지난달 1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하고 다음날 숨진 지 47일 만이다. 건설노조는 장례를 마무리하고 2차 총파업을 하고, 양회동 열사가 염원했던 올바른 건설현장을 만드는 투쟁을 탄압에 굴하지 않고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도 건설노조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와 압박은 수사인원을 늘려 가면서까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찰과 국토교통부는 건설노조의 조합원 고용 요구는 ‘협박’으로, 노사합의에 의한 전임비 수령은 ‘갈취’로 몰았다.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상황이다.

건설현장은 사업이 지속되는 일반적인 사업장의 고용관계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건설회사는 어떤 건설현장에 특정한 기간 동안 건축물을 짓는 일을 수주받고 이에 필요한 노동력을 건설노동자들로부터 제공받는다. 건물을 다 짓고 나면 당연히 고용관계도 끝나게 되는 현실에서 건설노동은 타고난 불안정 노동이다. 이에 더해 불법 다단계 하도급, 즉 전문건설업체에서 하도급을 받은 1차 하청업체가 다시 불법으로 다른 업체에 하도급하는 경우도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실정이다. 하도급 단계를 거칠 때마다 공사금액은 깎여 노동자의 임금도 줄어든다. 하도급으로 인한 무리한 공기단축 압박은 건설현장 사망사고 원인분석에서 단골처럼 등장한다. 다단계 하도급은 부실공사·날림공사로 이어져 노동자의 안전은 물론,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하게 된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하는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사망자는 모두 874명이었다. 이 중 건설업이 402명으로 거의 절반 가까이 차지해 사고사망률이 가장 높은 업종이다. 매일 하루에 한 명 이상 건설현장에서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2020년 발표한 ‘OECD 국가의 건설업 산재 사망사고 실태 비교·분석’에 따르면 노동자 10만명당 사고사망자수는 2017년 기준 25.45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OECD 평균(8.29명)의 세 배를 웃돈다. 가장 낮은 국가인 네덜란드(0.98명), 핀란드 (1.07명)에 비하면 20배가 넘는 기가 막히는 수치다. 충분히 예방가능한 사고로 우리는 수많은 안타까운 목숨을 잃고 있다.

산재사망 1위, 임금체불 1위 업종 건설업. 작업환경은 이렇게 위험하고 노동자의 처우는 열악하니 노동조합이 나선 것은 자연스럽고 한편으로 다행인 일이다.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고자 했던 건설노조의 부단한 노력은 그동안 새로 정비된 건설현장의 각종 제도만 나열해 봐도 알 수 있다. 건설현장의 일요휴무, 정부 발주 공사 입찰시 산재은폐 반영, 건설업 원·하청 노사참여 안전보건협의체 도입, 건설현장 화장실·식당·탈의실 등 시설 설치 의무화, 콘크리트 믹서트럭 노동자와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등 건설노조의 끈질긴 노력으로 현장은 조금씩이나마 바뀌고 있다.

건설현장 안전보건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해외의 연구결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리노이 경제정책연구소에서 2021년 발표한 보고서 ‘건설현장 안전보건에 대한 노동조합의 영향’(The impact of unions on construction worksite health and safety)에 따르면 미국의 2019년 건설현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청 근로감독 사례 3만7천개를 분석한 결과 산업안전보건규정 위반이 발견된 근로감독은 노동조합이 있는 건설현장이 노동조합이 없는 현장보다 19% 낮았다. 위반 건수를 비교하면 34% 낮았다. 최근 발표된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연구(Robson 등, 2022)에 따르면 2012~2018년의 건설현장 산재는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 비해 25%가량 낮았다. 이 연구에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라 함은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조 소속 조합원을 고용한 건설공사를 의미한다.

‘협박’ ‘강요’ 혐의를 받으며 탄압받고 있는 노조의 고용안정 노력은 어떤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건설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 전문가들 역시 법리적인 해석상 노조의 정당한 권리라고 보고 있다. 건설노조는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고 고용계약을 투명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과거 하청업체와 현장 노동자 중간의 ‘오야지’가 임금지급 권한을 가질 때 문제가 됐던 임금 중간착취, 인권침해를 근절하고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건설 노조 조합원이 2016년 약 11만명에서 2020년 약 25만명으로 2배 이상 급증한 것을 보면 현장노동자들의 시급하고 절실한 요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건설노동자의 고용을 둘러싸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면 노동시장에서 건설노동자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상태다. 일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노갈등도 일어나고 신생단체들의 금품요구와 같은 진짜 불법행위도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노조탄압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그나마 건설노조의 노력으로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건설현장을 다시 악화시킬 게 뻔히 보인다. 엉뚱한 노조 때려잡기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를 위한 근본적인 건설현장 개선, 즉 불법하도급 근절과 안전한 건설현장 만들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정부가 나서서 고민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