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통념과 달리, 대부분의 범죄는 해당 행위가 걸려서 처벌에 이를 가능성이 낮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높다고 판단하는, 합리적인 행위자에 의해 저질러진다. 안전보건 범죄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의무 이행에 드는 비용이 재해 발생 후 처벌을 감수하는 비용보다 적다면, 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계속해 안전보건조치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대재해를 억제할 적정한 처벌이 없다면 안전보건 범죄는 합리적인 사업주에 의해 충분히 감행될 수 있다.

일찍이 헌법재판소는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이를 엄히 처벌하지 않으면 그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면서, 일터의 구조적 특징을 그 근거로 지적했다. 이윤 추구라는 영업활동의 본질상, 사업주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를 인간의 존엄성 문제보다는 영업비용 증가 문제로 인식하기 쉬워 이윤 증대를 위해 중대재해 예방 비용을 가급적 이를 줄이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근로 제공을 통해 생계유지를 위한 임금을 받아야만 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사업장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근로 제공을 거부하기보다는 위험한 근로조건을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중대재해에 대해 형사처벌과 같은 엄격한 공적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구조적 특징에서 비롯되는 안전상의 공백이 커지기 쉽다. 그에 따른 위험이 현실화해 산재가 발생하면 노동자는 심한 경우 사망하거나 평생 재해로 인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와 같은 결과는 금전적으로는 완전히 회복할 수 없기에, 헌재는 엄격한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지금 현실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가 더 많이 발생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 안전보건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르는 사업주에게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말라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것도 진지하게 말이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산업재해 규모별 발생 현황에 따르면, 5명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근로자수 대비 재해자수)은 1.12, 5~49명 사업장은 0.61이다. 보다 큰 사업장(50~99명, 100인~299명, 300인~999명, 1천명 이상)이 0.45 내지 0.51인 것에 비해 높은 재해율을 기록하고 있다. 과거의 재해율 통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5명 미만과 50명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가장 많이, 가장 높은 비율로 노동자들이 다치고 사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볼 때 중대재해로부터 노동자와 시민을 보호하려 한다면 가장 적극적으로 법을 적용해야 할 곳은 작은 사업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시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을 제외한 것도 모자라, 50명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경우 적용유예 기간을 더 연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법을 준수할 의지나 능력이 부족한 자가 형사처벌될 가능성이 높으니 법을 많이 위반하는 자에게 아예 법을 적용하지 말자는 주장은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바쁜 출·퇴근 시간에는 도로 위에서 규정 속도를 준수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과속으로 사람이 죽고 다치든 해당 시간대 영업용 차량에게는 법 적용을 제외하자거나, 저가 항공사에게 제대로 된 안전관리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큰 항공사와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지 말고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승객들이 죽고 다치는 사고를 내더라도 처벌은 하지 말자는 식의 주장을 누군가 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 주장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까?

놀랍게도 경총은 “중대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50명 미만 사업장까지 법 적용시 수사 대상 사건이 폭증해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며 “많은 기업의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실형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는 이유로, 법 적용을 2년 더 미뤄 달라고 주장한다. 작은 기업에서 일하다 더 높은 확률로 죽고 다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우려’는 단 한 줄도 없는 건의서를 내밀면서, 해당 기업들이 저지르는 안전보건 범죄로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모두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몰염치한 요구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역시 소규모 업체의 역량 문제를 내세우며 법 적용 추가 유예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입법 당시 끈질기게 요구했던 3년의 유예기간이 이제 와서 왜 부족한지, 그간 어떤 노력이 선행됐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마치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할 능력이 부족한(또는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수범자에게는 법 적용을 아예 제외하거나 유예하는 것이 당연한 듯 주장하지만, 동법상 산업재해치사죄의 보호법익은 다름 아닌 인간의 생명이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생명에 대한 권리는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헌법은 국가의 재해예방과 국민에 대한 보호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재해율이 더 높은 사업장인데도 단순히 규모만을 이유로 법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존 법·제도만으로는 산재를 막고 그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경험·통계적으로 확인됐다. 그렇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만약 위와 같은 입법취지에 동의하며 법을 제정한 국회가 불과 2년 반 만에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범죄에 재차 적용을 유예하는 결정을 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방적으로 사업주의 안위만을 염려하며 기업의 안전보건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격이다. 필요하다면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교육하고 지도해야 하고, 이마저도 소용없는 일터의 이윤 추구 활동을 용인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혹여나 막연히 사업장의 영세함을 내세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달리 취급한다면, 일하다 죽을 가능성이 높을수록 덜 보호하겠다는 반헌법적·야만적 선언에 동참하는 것이자, 중대재해 범죄의 역사적 공범이 되는 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