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불법행위 처벌, 노조의 불공정 채용 단속, 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 개편.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명목으로 밀어붙이는 정책들이다. 그런데 노동시장 격차 완화를 위해 오래전부터 제시된 정책이 있다. 국내외적으로 검증됐지만 정부와 자본이 외면해 왔다. 산별교섭 활성화와 단협효력 확장이다. 이런 정책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 4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개념적으로 이론적 정합성 문제가 있지만, 진영을 떠나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책적 목표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1일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절 메시지에 ‘노동시장 이중구조 타파’가 포함돼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정부업무보고에서 상생형 임금체계 개편, 원·하청 상생모델 확산, 법적 보호 사각지대 해소를 주요 정책수단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수단들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검증된 핵심 대책이 배제돼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Negotiating Our Way Up”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극단적으로 분권화된 기업별 단체교섭이 지배적인 국가보다 초기업적 교섭체계를 구축한 국가에서 임금 불평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유사한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초기업적 교섭체계가 지배적인 국가는 기업별 교섭 또는 혼합형 교섭체계가 지배적인 국가에 비해 단체협약 적용률은 높았고, 임금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P90/P10은 낮게 나타났다. 단협 적용률이 10% 떨어질 때마다 임금 불평등도는 0.34%포인트 증가한다는 실증분석 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Hayter and Visser, 2021). 이처럼 국제적으로는 초기업적으로 조정된 단체교섭체계 구축과 단협 적용률 확대가 임금 불평등 해소의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다.

한국은 기업별 교섭체제가 지배적인 대표적 국가에 속한다. ‘사업체패널조사’에 따르면, 초기업 단위 (임금)교섭 비중은 2019년 기준 13.2% 수준에 불과하다. 법·제도적 제약이 심하고, 초기업 교섭에 대한 사용자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기업 교섭 부문이 불균등하게나마 발전해 왔는데,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를 주요 조직대상으로 하는 부문에서 전국 또는 지역단위 교섭을 통해 업종 또는 직종별 표준임금을 결정하는 등 개별 기업을 넘어 초기업적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초기업 교섭 유형이 발견되고 있다.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 건설 일용직,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초기업교섭 부문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초기업협약 효력이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까지 확장·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금속노조 주얼리지회가 집단교섭을 통해 체결한 초기업협약은 도심 제조업이 밀집된 클러스터 내 작은 사업장들의 최저 노동기준으로 기능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집단교섭을 통해 임금·노동조건을 결정하는데, 이는 서울지역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 전체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유형 설정자’(pattern setter)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노조조직률이 높아 일반적 구속력을 통해 효력이 비조합원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초기업교섭이 노조 부문 내 격차뿐만 아니라, 노조 부문과 비노조 부문 간 불평등 해소에도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초기업 단위 교섭이 임금 불평등을 완화시킨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국내 실증 연구도 발표됐다. 김정우(2022)의 최근 연구(초기업 단위 교섭과 임금불평등)에 따르면, 초기업 단위 교섭이 기업단위 교섭에 비해 저임금 분위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고, 고임금 분위 노동자의 임금을 낮춰서 장기적으로 불평등을 감소시켰다.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정부는 노사관계 분야에서 특수고용 노동자 노조 불인정, 노조 운영 및 활동에 대한 행정개입 등 노조할 권리를 침해하고 노조 대표성을 약화하는 억압적 정책을 폈다. 노동시장 분야는 노동시간·임금체계에 대한 사용자의 재량권을 확대하고,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며, 반대로 노동자에게는 성과주의에 기반한 임금체계를 강요하고, 장시간·압축 노동과 불규칙 노동을 강제하는 정책 중심이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구호 이상의 실질적 대책 마련과 노력은 없었다. 오히려 원·하청 격차 해소에 주요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사용자단체 확대를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에는 반대하고, 가장 불안정한 노동자 계층인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소득보전을 위한 안전운임제를 폐기해 버리는 등 퇴행적 조치만 실행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러한 퇴행적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적으로는 이미 효과적인 정책수단으로 검증된 초기업교섭 촉진과 단협 적용률 확대를 위한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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