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가 조선업 이중구조를 개선하려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꾸리는 과정에서 원청 조선사들의 요구를 반영해 노조를 뺀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정식 장관은 지난해 11월 조선업 상생협의체 발족에 앞서 “원·하청 노사와 정부 등 모든 주체가 의지를 모아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며 노조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알린 노동자들은 제외된 채 상생협의체가 진행됐고, 5개 원·하청사와 전문가가 모여 올해 2월 조선업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원청은 적정 기성금을 지급하고 하청은 임금을 인상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노조를 배제하면서 반쪽자리 합의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노조 빠져 상생협약 도출 용이, 완결성 떨어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김문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 자문단이 최근 공개한 10차 회의결과를 보면 조선업 상생협의체에 대해 “협약을 통해, 에스크로 결재 확대, 물량팀 축소, 기성금 개선 등 원·하청 이중구조의 근본 원인에 대한 대안(을) 마련(했다)”면서도 “원청 사용자의 반대로 노조(가) 배제(된 것은) 한계”라고 지적했다. 노조가 빠지면서 “협약안 도출은 상대적으로 용이했지만, 내용적 완결성이 떨어진다”며 “협약 이행 점검 진행(시), 노조의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라는 평가를 덧붙였다.

조선업 상생협의체에 참여한 복수의 관계자 설명을 종합하면 당시 노동부는 노조를 협의체 구성에 참여시킬 계획이 있었지만, 원청 조선사의 반대로 노조 참여는 무산됐다. 당시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동조합연대는 조선업 상생협의체에 참여할 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원청은 임금협약·단체협약 사안이 아닌 산업 차원의 대책을 노조와 논의하는 것을 꺼렸고, 정규직 노조가 참여할 경우 상생협의체 논의가 노사 교섭으로 확장할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원청사들을 설득하는 것 대신 ‘노조 배제’라는 쉬운 길을 택했다.

다만 노동부는 상생협약 체결 당시 “정부는 이번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노조가 참여하는 공동협의회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행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는 “금속노조와 조선노연 차원에서 (상생협의체) 참여 요구를 계속했고, 기다리고 있지만 제안이 들어온 게 없다”고 밝혔다.

조선업 상생협의체는 지난달 상생협약 이행점검을 위한 조선업 상생 실무협의체 1차 회의를 진행했고, 이달 16일 2차 회의를 연다. 1차 회의에서 주제별 논의 순서를 정했고, 2차 회의에서는 이행 상황을 본격 점검할 예정이다.

사업주에 유리한 상생협약 내용만 이행?
노동부 “노조 의견수렴 방안 논의 중”

조선업 노동계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하청노동자 임금체불, 4대 보험료 체납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측에게 유리한 협약 내용만 적극 이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생협약에는 조선 5사와 협력업체의 체계적인 외국인력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이 담겼고, 정부는 외국인력의 신속한 도입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원·하청 조선사는 이주노동자 직접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중공업에 이어 현대중공업은 4월 기준 132여명의 계약직 이주노동자를 고용했다.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는 “노조가 우려하던 언어, 안전, 지역사회의 문제 등을 해결하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투입하다 보니 현장에서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조선업 특징상 노사 간 신뢰가 낮아 노조가 협약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더 의미 있는 협약이 되려면 조선업 상생협약보다 합의 수준이 낮더라도 노조가 참여해 함께 가면 좋았을 것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노조가 배제된 사실상 협약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노동계 불참으로 그나마 합의가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 전문가는 “원·하청 노사가 모두 참여해 합의하는 것은 좋지만 이상론”이라며 “원·하청사의 의견도 다양해 타협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가 파업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하는데 노조를 배제한 것은 한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노정관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사회적 대화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며 “사회적 대화가 가능하려면 상대방의 인정이 기본인데, 현재 상대방(정부가 노조를)을 인정하지 않아 노정관계 불신이 치유하기 힘들 정도로 멀리 왔다”고 우려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원청의 반대 때문에 노조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며 “단계적으로 (협의 추진을) 한다는 것이 당시 계획이었다. 1단계로 원·하청 중심으로 진행하고, 협의회를 발전시켜 노조 참여를 활성화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상생협약 체결 뒤 실무단위에서 27개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계속 논의하고 있고, 노동계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수 있을지도 의제에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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