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셔록. 정기훈 기자
▲ 팀 셔록. 정기훈 기자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 미국의 개입 정황을 증거로 밝힌 언론인 팀 셔록(Timothy Scott Shorrock·72·사진)이 아시아와 한국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 1980년의 광주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는 끈질긴 취재 끝에 1996년 지미 카터 미 행정부와 전두환 군사정권 주고받은 비밀문서를 세상에 공개했다. ‘체로키(Cherokee) 파일’로 알려진 문서에는 전두환 군부의 무력진압이 실패하면 미군을 파견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에서 이뤄진 미국의 개입을 조명하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지난달 다시 광주를 찾았다. 반전운동을 하는 그의 친구 에드 킨슬리와 함께했다. 30년 경력 병원노동자 출신이자 전미서비스노조(SEIU) 조합원이기도 한 에드는 팀의 친구이자 노동운동 동지다. 두 사람은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각각 한국을 찾아 이소선 여사와 만난 이후 한국 노동계와 오랫동안 연대해 왔다. 팀은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인쇄공장 노동자 출신이기도 하다.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책 집필을 준비하는 팀 셔록을 주인공 삼았다. 김현정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CARE) 대표가 통역을 위해 함께 했다.

“한국전쟁이 뿌리 내린 미국·한국 정부의 노조탄압”

- 집필을 위해 6년 만에 광주를 다시 찾았다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과 남한에 대한 미국의 지배, 그리고 지금 일본과 한국에 194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미국이 개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일본과 한국을 통합시키려는 미국의 의도와 욕망에 대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대북 관계에 대해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책이 넣고자 한다. 아직 출판사를 못 찾았다.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웃음)”

- 이소선 여사와 인연이 있다고.
“언론인으로서 처음 방한한 것은 1981년이다. 미국이 원자력발전 기술을 한국에 수출하는 분야를 취재하는 것이 목표였다. 정치적 상황에도 관심이 있어 당시 광주를 찾았다. 이후 1983년에 다시 방한했을 때는 노동 문제에 많이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워싱턴DC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때 교회로부터 요청받았다. 한국 교회에서 노동인권 관련한 문제로 미국 교회 쪽으로 요청해 왔던 거다. 영등포선교회일 것이다. 동일방직 여공과의 만남에 참석해서 여성들이 이렇게 큰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고 매우 큰 감동을 받았다. 이소선 여사도 만났다. 통역사가 오지 않아 문익환 목사님이 통역해 주셨다. 이소선 여사는 한국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적용해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사실을 보도했다.
“(전두환 등)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지금 굉장히 두렵고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노동운동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인쇄공장에서 일했다. 노조를 만들려고 했는데 관리자측에서 깨부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 궁금증이 들었다. 미국의 노동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미국 노동운동이 이렇게 나약해졌는지를 스스로 공부해 봤다. 그 뿌리를 찾아봤더니 냉전, 그리고 특히 한국전쟁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냉전 논리가 판을 치고 빨갱이 소동이 일어나면서 모든 노조 지도자를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다. 노동운동을 깨부수고 분열시켰다. 아마 같은 전략이 여기 한국에서도 통용되고 있지 않나 싶다. 자세한 배경은 모르지만 노조간부 또는 노조를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항상 노조 자체를 약화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알고 있다.”

▲ 에드 킨슬리. 정기훈 기자
▲ 에드 킨슬리. 정기훈 기자

“광주 발포 명령, 한미 정부 간 요청 있었을 것”

-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 제조업 투자를 늘리고, 프렌드쇼어링(우방중심협력)이라는 전략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한국 자동차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하려는 정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985년 금속 부문 노조를 자문하러 온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 한미 간 중공업 분야에서 협조하는 대화가 있었고 포항제철이 미국에 투자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만에다 제철공장을 세웠다. 원재료를 그 공장에 보내서 직접 제조하는 방식이었다. 그랬더니 미국 유타에 있는 같은 역할을 하던 공장이 문을 닫는 일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과거와는 좀 다른 양상이다. (한미 경제정책은) 중국을 막아 내는 도구다. 한국의 미래와 평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중국이나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주요 산업을 이런 식으로 옮기는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결국 중국을 상대로 냉전을 하겠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 계획이 한국 기업과 경제에 과연 도움이 될까 의문이다. 바이든이 한국 투자를 받아서 공장을 세우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미국 사정 때문이다. 미국에는 생활임금을 벌 수 있는 괜찮은 직장이 너무나 없다. 그 대안으로 제조업 활성화를 말한다.”

- 광주를 다시 찾은 소감은 어땠나.
“윤석열 대통령 선출 후 첫 5·18일 때 보수당(국민의힘)이 광주에 우르르 와서 참배하지 않았나.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항상 광주를 의심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5·18이 정당한 민주화 운동이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일하는 분들과 이번에 만났다. 위원회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보수당도 위원회의 공식적인 보고서가 나온다면 그 결과를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5·18이 북한의 지령에 의해 일어났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은 완전히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그런 주장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 5·18의 진실을 더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전에 발굴된 문서를 통해서 제가 배운 요점은 미국이 처음부터 학살의 책임이 있다기보다는 전두환이 시민을 학살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의 행동에 있다. 학살 뒤에도 군사적으로 용인하고 동의해 줬다는 것, 진압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군사적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용인했다는 것이다. (1980년) 5월23일 한국군이 다시 광주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흘 동안 미국은 정찰기를 띄우는 등 정보수집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항공모함 등을 재배치해서 27일까지 나흘 동안 완벽하게 준비하고 나서 진압군이 들어가는 것을 용인했다. 미국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도 항상 군사적인 해결을 추구한다. 많은 이들이 발포 명령을 찾을 수 있는지 물어 본다. 정부 대 정부 간에 어떤 요청이 있었을 것은 자명하다. 외무부에서 요청이 국무부로 갔을 것이고, 국무부에서 CIA로 갔을 것이고, 거기에서 이제 국방정보국으로 갔을 것이다. CIA나 국방정보국의 문서는 저희가 볼 수 없다. 이제 있는 것은 국무부 문서밖에 없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오랜 개입,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 5·18뿐 아니라 한국전쟁부터 제주4·3사건, 최근 한·일 위안부합의까지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개입한 정황을 파헤치고 싶다고 했는데.
“미국이 한국을 1945년 분단시킨 것도 결국 아시아 본토에 미국이라는 존재를 심어 놓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미국의 정책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1905년 태프트-가쓰라(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보더라도 일본의 한국 지배권을 인정하면서 미국은 필리핀 지배권을 인정받지 않았나.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지배하는 데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가 진주만 공습 사건(1941년 12월)과 (종전했던) 1945년을 기점으로 한국을 통해 미국의 존재를 남기려 했다. 돌아보면 미국은 너무나 명백하게도 1940년대 남한 사회에서 반식민 좌파 운동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4·3사건이 일어난) 제주도에 증거가 있다. 미국은 일본에서도 똑같은 짓을 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은 특히 이용하기 좋았다. 한국전쟁을 통해서 일본 경제와 산업이 살아나면서 동시에 빨갱이·공산당·좌파들을 전부 직장에 쫓아 내고 노조를 탄압했다. 1955년 자민당이 만들어질 때 CIA가 지원한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그 정당이 지금까지 일본에서 정권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1945년 이후 78년이 흘렀는데도 미국의 군사력이 아직도 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은 변함이 없다. 민주화 사회가 된 한국도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상황도 그대로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이상하지 않은가.”

- 한국 노동자들이 5월1일 세계 노동자의 날에 큰 집회를 열고 윤석열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한다. 노동절을 맞아 한국 노동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미국에서는 5월1일을 노동절로 지내지 않는다. 9월로 옮겨갔다. 시작이 미국의 시카고인데도 말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옮긴 것이다. 제가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는 항상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더 공정한 노동환경과 노동정책을 위해서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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