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에게 정부안을 설명하고 있다.<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자의 선택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6일 기준)’ 근무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내놓으며 강조한 말이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지금의 주 단위에서 확대하는 것은 강제가 아니라, 노동자 선택에 맡긴다는 얘기다. 사용자와 근로자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해야 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동자가 시간 주권이 있느냐는 질의에 “근로자가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뽑은 노동자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하고, 노동자 본인이 동의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안을 살펴보면 노조는 물론 기존 근로자대표까지 우회하는 ‘부분 근로자대표제’를 통해 노동자 협상력은 오히려 약화할 가능성이 높다.

노사정 합의에 없는 ‘부분 근로자’ 등장

노동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에는 현행법에 없는 근로자대표 관련 내용이 들어갔다. 근로자 과반수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로 선출하고, 임기는 3년으로 하는 조항이다. 근로자대표는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구지만, 현행법상 관련 규정은 없어 사측이 지명한 이가 근로자대표로 활동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2020년 10월 근로자대표제 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을 반영한 의미가 있다. 당시 합의는 입법 공백을 없애 분쟁 소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노사정의 의견 일치가 있었다.

주목할 부분은 ‘부분 근로자’ 개념이다. 부분 근로자는 사업 또는 사업장 내 근로형태, 직무의 특성 등에 따라 근로시간 등을 다르게 정할 필요가 있는 특정한 직종·직군 단위 근로자를 뜻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없는 개념이고, 경사노위 합의서에도 없다.

부분 근로자 과반수 의지로 사용자와 합의 가능
전문가 “양날의 검, 노동자 협상력 약화 우려”

정부안 핵심은 부분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직접 합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신설 조항인 92조의7(부분 근로자의 의사반영)을 살펴보면, 부분 근로자는 과반수 동의로 근로자대표에게 사측과 근로자대표 간 서면합의에 대해 의사를 표시할 수 있게 했다. 이 경우 근로자대표는 서면합의 여부와 내용 및 사유를 15일 이내에 근로자와 사용자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부분 근로자나 사용자가 통보에 이의가 있는 경우 노동위원회 판단을 받을 수 있게 했고, 부분 근로자와 사용자가 직접 협의를 거쳐 부분 적용 사항을 정할 수 있게 했다. 근로자대표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부분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부분 근로자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동부는 “생산직이 다수인 사업장에서 근로시간, 업무방식 등이 다른 사무직이나 연구직이 선택근로제를 원하더라도 도입이 쉽지 않을 수 있다”며 “근로자대표가 근로자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게 하고, 반영되지 않을 경우 근로자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근로시간제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근로자 대표와 협의, 노동위원회 판단 절차를 규정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계획은 노동자 협상력을 악화시켜 사측 의도를 관철시키고, 노동자 간 갈등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이른바 MZ세대 노조가 교섭에 나서지 못해 답답하다는 의견들을 주목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 현재 근로자대표제가 사측 입김이 강하게 들어가는 상황에서 부분 근로자와 협상을 한다고 하면 사측 의도 관철 방식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위원회 판결을 구하게 하는 것은 노동자 간 갈등을 공인된 방식으로 인정해 주고, 사측 의도를 실현하는 쪽으로 결론날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것”이라며 “폭넓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양대 노총 “노동시장 개악 현장 관철 수단”

양대 노총은 노조 형해화를 우려한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노동시장 개악 문제를 현장에서 관철시키는 수단으로서 이 제도를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유 본부장은 “2020년 경사노위 합의 때도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부분 근로자는 합의가 안 되고 빠졌다. 이는 노사정 합의 위반”이라며 “근로자대표 선출·활동에 개입했을 시 처벌조항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없다는 점에서 의도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비슷한 입장이다. 과반수노조가 근로자대표인 경우에도 이 제도대로라면 부분 근로자와 사용자간 합의를 거치게 된다. 민주노총은 2021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근로자대표제도 관련 논의를 할 당시 의견서를 통해 “현재로서는 부분 근로자대표제를 도입하기보다 선출방식을 마련하고, 근로자대표제가 안착된 다음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에 이른바 ‘MZ노조’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는 부분 근로자대표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협의회는 사무직 노동자 중심의 노조로, 기존 노조들이 생산직 중심이라 사무직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범했다.

정부가 근로자대표제 개선과 관련해서도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등 일부 의견만 수렴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