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현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대전지방법원 2023. 2. 9. 선고 2022노462 판결

1. 사안의 개요

이 판결은 한국발전기술(이하 ‘하청’) 소속 근로자 김용균이 2018년 12월10일 밤 11시께 한국서부발전(이하 ‘원청’) 태안발전본부 9호기 컨베이어벨트의 턴오버 구간에서 단독으로 점검구를 통해 컨베이어벨트 및 아이들러 점검 작업 등을 하다가 컨베이어벨트와 아이들러 물림점에 신체가 협착돼 목 부위 외상성 절단으로 사망한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다(이하 ‘본 판결’).

2. 판결의 주요 내용 및 검토

가. 사고의 경위 관련

1심 판결은 피해자가 설비 점검 또는 탄 처리작업 등을 하는 과정에서 협착사고로 사망했다고 인정했으나, 본 판결은 피해자가 설비 점검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축소 인정했다. 본 판결은 ‘아이들러에 탄이 붙으면 불이 날 수 있어 털어 내야 한다’는 하청근로자의 원심 증언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사고 전에 벨트가 2시간 이상 공회전하고 있었으므로 탄을 긴급히 제거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원심 증인의 진술은 ‘아이들러에 붙어 있는 탄을 손으로 제거’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간섭탄이 바닥에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들러 아래 바닥의 탄을 손으로 털어 낸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사고 장소인 턴오버 구간은 벨트의 상하면이 뒤바뀌는 공간으로 상시적으로 낙탄이 많은 장소다. 본 판결은 이러한 사실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피고인들은 항소심에서도 사고의 원인을 “피해자의 일탈 행위” “불량한 작업방식”으로 돌려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했는데, 이는 사고 후 피고인 측 스스로 밝힌 입장은 물론 항소심의 판단과도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를 양형에 무겁게 반영하지 않은 것은 항소심의 잘못이다.

나. 컨베이어벨트 가동을 중지하지 않고 작업을 지시·방치한 점 관련

1심 판결은 피고인들이 컨베이어벨트 가동을 중지하지 않고 작업을 하도록 지시·방치한 점을 유죄로 판단했으나, 본 판결은 무죄로 판단했다. 그 근거로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92조1항의 문언과 취지상 사업주가 기계의 운전을 정지할 것이 요구되는 ‘정비·청소·급유·검사·수리·교체 또는 조정 작업 또는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작업’은 기계가 정지된 상태에서 목적 달성이 가능한 작업을 예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는 점, 설비 점검 업무는 육안이나 소리를 통해 컨베이어벨트 가동상태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것으로 기계가 운전 중인 가운데에서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본 판결은 피해자가 수행한 작업이 그 실질상 ‘외함 밖에서 육안이나 소리를 통해 수행하는 점검 작업’이 아니라 ‘외함 안에 신체를 넣어 육안이나 촬영 등을 통해 수행하는 점검 작업’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잘못이 있다. 이러한 작업은 위 규정상의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어 해당 기계의 운전을 정지해야 할 경우’에 속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의 고의 인정 여부 관련

본 판결은 하청 대표이사, 원청 태안발전본부장이 현장 운전원들의 구체적인 작업방식과 그로 인한 협착 위험성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1심과 달리 산업안전보건법위반의 점을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본 판결은 하청 대표이사의 업무상과실치사죄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항소심은 “피고인에게는 운전부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협착사고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어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성립을 인정하면서도, “대표이사의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는 있을지언정 운전원들의 작업방식의 내용이나 위험성을 알면서 고의로 방치한 것이라고까지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의 성립은 부정했다.

그러나 사업주가 사업장에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향후 그러한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정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서도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이로 인해 사업장에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로 작업이 이뤄진 경우에는 고의가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1심 판결 역시 하청 대표이사에 대해 “컨베이어벨트의 설비에 관해 피고인은 충분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는 바, “세부적으로 보고받았음을 인정할 증거는 없다”는 이유로 고의를 부정한 항소심의 판단은 의문이다. 또한 항소심이 하청 대표이사의 업무상과실치사의 점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설시한 사정들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미필적 고의 인정 근거에 해당하는데, 그럼에도 고의를 부정한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라. 작업중지 등 안전조치 미이행 및 작업중지명령 위반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점 관련

본 판결은 1심과 달리 이 부분을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이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진 사실을 알았다거나, CV-09F 벨트 가동을 지시 또는 방치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관련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피고인들의 진술에 근거하고 있다. 1심 판결은 이러한 피고인들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음을 상당히 세밀하게 논증했는데,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측 진술의 신빙성은 간접적인 사실관계들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식이라는 점에서, 본 판결이 1심 판결의 논증을 단순히 ‘간접적인 정황’에 불과하다고 본 점은 타당하다고 하기 어렵다.

마. 원청측 피고인들의 업무상과실치사의 점 관련

본 판결은 1심에서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인정됐던 원청 태안발전본부장, 석탄설비부 차장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특히 태안발전본부장이자 안전보건관리 총괄책임자인 피고인에게 태안발전본부 내 전체 근로자들의 안전보호 및 사고위험 예방을 위해 기술지원처 소속 실무자들을 지휘·감독해야 할 주의의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태안발전본부의 조직과 규모 등에 비춰 볼 때 이는 일반적·추상적 주의의무에 불과할 뿐, 직접적·구체적 주의의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현장의 안전에 관한 책임을 하급관리자에게만 묻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어서 부당하다. 이미 우리 법원은 안전보건 총괄책임자를 비롯한 상급 관리자들의 주의의무를 강조하며 “오히려 기업의 수직적 계층구조하에서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한은 상급관리·감독자들에게 있으므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관리 책무도 위 권한에 비례해 무겁다”고 판단헸고, “상급관리·감독자들이 각자가 담당하는 안전관리업무를 게을리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이상 이는 업무상 과실로 평가될 수 있고, 그러한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창원지방법원 2019노941 판결, 대법원 2020도3996 판결). “일반적·추상적 주의의무”라는 개념이 실질적인 권한과 주의의무를 지닌 상급관리자들의 책임을 면제하는 방향으로 오용돼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주의의무의 존재는 ‘실제로 보거나 들어 알고 있었는지 여부’뿐만 아니라 ‘몰랐다는 것 자체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인지를 살펴 판단해야 한다. 본 판결은 하급관리자에 대해서는 설령 피고인이 운전원들의 작업방식을 몰랐다면 이는 그 자체로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것이라고 평가했는데, 이러한 기준을 상급관리자에게는 충분히 적용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바. 원청 대표이사 등의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위반의 점 관련

본 판결은 1심과 동일하게 원청 대표이사의 업무상과실치사죄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고, 원청 대표이사, 태안발전본부장, 원청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위반 치사죄 부분도 무죄로 판단했다. 특히 본 판결은 “도급인 원청과 수급인 하청 소속 근로자 사이의 ‘실질적 고용관계 인정 여부’는 곧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의 ‘근로자 파견’ 및 ‘직접고용관계의 성립 간주’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피해자를 비롯한 하청 소속 운전원들과 원청과 사이에 근로자 파견 관계가 인정됐다거나 직접고용간주 여부가 문제됐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실질적 고용관계를 부정했고 안전조치 의무위반 치사죄 부분의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본 판결은 원청 대표이사가 안전보건최고책임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을 간과한 잘못이 있다. 또한 본 판결은 ‘실질적 고용관계’의 개념이 파견법의 문제 및 직접고용관계의 성립 간주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모호하게 표현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맞닿아 있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실질적 고용관계’ 개념은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법리상의 특유한 개념인 바, 파견법상의 파견 또는 근로계약상의 직접고용관계의 성립 문제와는 다른 층위의 개념이고, ‘실질적 고용관계’의 인정에는 파견관계나 직접고용관계의 인정을 위한 고도의 종속성 등이 요구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본 판결이 위와 같은 이유로 실질적 고용관계를 부정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게다가 국무총리 훈령에 의거해 마련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상으로도 이미 구조적인 불법파견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지적된 바, 항소심은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사. 양형의 이유 관련

본 판결은 이 사건이 피고인들 중 누구 한 명의 결정적인 과오에 의한 것이 아니고, 피고인들 개개인의 과실 정도가 중하지는 않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러나 1심 판결 내용처럼 “관계법령과 회사 내부에 마련된 각종 절차와 지침서 등을 그대로 따랐다면 이 사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 점, 피고인들 중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안전조치를 취하거나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위 판단은 타당하지 않다. 위와 같은 판단은 피해자의 사망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향후 위와 같은 판시가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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