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원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사무처장

며칠 전 그녀가 죽은 지 200일이 지났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와 그녀의 귀여운 딸, 그녀가 늘 맘 아파하던 언니가 죽은 지 200일이 지났다. 

지난해 8월8일 폭우에 서울 신림동은 물난리가 났고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셋이 우리가 늘 함께하고 마주보며 사랑해 주던 사람이다. 

그녀는 노조에서 4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지냈다. 그녀의 직책은 총무부장, 노조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즐거워했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는 조합비를 자신이 관리하며 그 씀씀이를 잘 체크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만큼 그녀는 꼼꼼히 회계업무를 담당했다. 

수해를 겪던 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 나는 그녀의 마지막 전화를 받고 그녀를 구하러 갔다. 하지만 그 노력에 비웃듯 그녀와 그녀의 이쁜 딸, 언니는 싸늘한 시신이 돼 자신들의 집에서 마지막 외출을 했다. 우리는 그 외출을 눈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노조 회계 자율점검 시정요청 공문이다. 내지를 내지 않았으니 내지를 보여주라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노조 업무도, 매장 일도 사랑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쓰던 가방에선 쉬는 날 집에 가서까지 조합원들의 조합비라며 꼼꼼히 체크하고 챙기던 회계서류가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노조를, 아니 노동자를 적으로 몰았다. 가계부에 떳떳하지만 그 가계부를 보여주고 싶은 주부는 얼마나 될까? 우리는 회계장부에 떳떳하지만 우리 조합원들 외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런데 왜 정부가 이를 들춰 보려 하는지, 왜 우리를 마치 가계부 안 쓰는 부정한 주부로 모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이 조합비의 소중함을 알고 한 명 한 명의 조합원이 내는 귀한 회비임을 알기에 한 푼이라도 아끼고 조심하려 노력해 왔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또다시 일부를 이야기하며 일부의 잘못된 관행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너 자신을 돌아보라”고. 윤석열 정권은 마치 노조가 비리집단인 것처럼, 부도덕한 조직인 것처럼 철저히 비하하고 혐오했다. 

윤석열 정권은 공정과 상식을 논한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공정과 상식이 있는가?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공정과 상식이 아닌, 올바른 공정과 상식을 본 적이 없다. 

다시 그녀를 상기해 본다. 

그녀가 죽은 뒤 200일간 공공임대주택, 장애인 복지 등 공공복지 예산은 5조원이 넘게 삭감됐다. 말은 강화한다지만 예산은 삭감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인지 모르지만 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그들만을 위한 공정과 상식에 불과하다. 

그녀가 죽은 지 200일이 넘었다. 그날을 복기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보면 그녀의 장례식엔 정부의 화환조차 오지 않았다. 사과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럴 정부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애도는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애도는커녕 외면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를 돌이켜 보면 ‘폰트롤타워’ ‘대통령 고립’이 이슈로 떠오르던 시기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그 후에 발생한 포항 지하주차장 참사 때는 김건희 여사가 직접 조문까지 했지만 신림동 참사엔 일언반구 없이 사진만 찍고 간 것이 아닐까?

그런 그녀가 죽은 지 200일이 넘었다. 이제 대여섯 명이 목숨을 잃으면 이슈조차 안 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내가 받아 든 시정요구 공문을 그녀가 봤다면 이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정권에 그녀는 뭐라 했을까? “윤석열 정부보다는 공정하고 상식적이려 노력하는 노동조합”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젠 들을 수 없는 그녀의 목소리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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