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 직업환경의학과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삼성SDI와 삼성전자 노조와 함께한 연구로 본 삼성의 성과급 제도는 불합리하고 불투명한데 보상 차이는 지나치게 컸다. 고과에 따라 한 해 보너스가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이듬해 연봉 인상률 자체가 달라진다. 심지어 연봉이 삭감되기도 한다. 두 해 연속 낮은 고과를 받으면, 동기들과 연봉이 천만원 넘게 차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고과권자인 중간관리자들의 권력이 극대화됐다. 중간관리자에게 집중된 권력은 수많은 부당하고 억울한 고과 사례를 낳았고, 많은 노동자들이 이 때문에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스트레스로 6년 동안 정신의학과를 다니고 앞니가 빠져 임플란트를 했다는 노동자도 있었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하위고과를 받았을 때 며칠 동안 잠이 안 와 매일 술만 마셨다는 노동자도 있었다.

과도한 성과 압박이 노동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해를 입히는 과정은 다양하다. 직접적인 성과 스트레스뿐 아니라, 중간관리자에게 잘보이기 위해 잔업·특근을 빠지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을 하거나, 안전사고가 나도 고과 때문에 숨기는 일도 있다. 휴가나 병가를 마음대로 못 쓰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성과 경쟁이 회사에는 도움이 되는 것일까? 조사 결과는 별로 그렇지 않다. 설문조사에서 현재 고과평가가 신뢰할 만하다는 응답은 7.7%에 불과했고, 고과평가가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된다는 답변도 20%가 채 되지 않았다.

일본 후지쯔에서 성과주의를 도입했다가 실패한 과정을 분석한 연구자는 “목표 중심 평가제도로 변경된 이후, 직원들은 팀 단위 업무를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고, ‘목표’를 만들어 내고 달성하는 표면적인 행위에 몰두하게 됐다고 본다. 삼성 노동자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점수를 받으려면 계속 개선안을 내야 하는 거예요. 근데 이미 잘 돌아가고 있는데, 뭔 성과를 내라고 하는지.” “동료들 간에는 솔직히 말해서 화합이 덜 된다고 해야 되나? 후배들에게도 점점 더 제대로 안 가르쳐 주는 것 같아요.”

정말 중요한 일을 하기보다 관리자 눈에 드는 일을 하고, 관리자가 있을 때만 열심히 하는 경향, 후배들에게 업무 역량 전수조차 덜 하는 경향이 이미 삼성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후지쯔에서 이미 15년도 전에 비슷한 평가를 통해 평가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했다는 사실을 삼성은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현재 고과평가가 개인의 노력을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응답 역시 9%에 불과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하위고과를 받으면 ‘반발심’이 생기고 이는 이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숙련된 노동자의 이직은 회사에도 손해다. 한 번 낮은 고과를 받았을 때 회복하기 어렵다는 분위기, 고과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는 분위기, 줄서기가 만연하다는 평가는 이직 의도를 높인다.

삼성 노동자들의 이런 호소가 월 소득 200만원 정도인 대한민국 동료 노동자들에게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너희는 중소기업 다니니까 그 정도만 벌어’가 옳지 않은 것처럼, ‘너희는 돈 많이 받으니까 그 정도 스트레스는 감내해’라는 것도 당연하지 않다. 적게 주고 장시간 부려 먹는 것이나, 돈 많이 주고 온갖 방법으로 쥐어짜는 것이나, 노동자를 이윤의 도구로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삼성 노동자들 역시 본인들의 괴로움에만 주목해서는 고립되기 십상이다. 불평등한 한국 노동사회에서 삼성 노동자들의 위치와 역할, 삼성의 하청 혹은 협력사 노동자들과의 구체적인 연대 방안 등을 함께 고민하며 ‘노동자에게 임금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결정돼야 하는가’를 같이 모색해야 고립되지 않고 개선책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반갑게도 얼마 전 상급단체가 서로 다른 삼성전자 계열사 9개 노동조합에서 연대체를 출범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노동조합이 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노동자들의 임금 협상력을 더욱 낮추려는 노동개악이 추진되는 이때, 이것이 노동자들의 새로운 연대의 출발이 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