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 삼성전자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노동자가 아프다. 함께 일하는 동료 간 서열을 매기고, 경쟁을 부추기는 고과제도 탓이다. 산재·육아휴직을 다녀오면 하위고과를 받았다. 노동자 3명 중 1명은 삼성 고과제도의 신뢰도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삼성전자 고과제도로 고통받고 있다고 호소하는 노동자를 인터뷰하고 2회에 걸쳐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까닭을 싣는다. 금속노조가 수행한 ‘삼성 고과 제도의 현황과 폐해 실태 연구’도 입수해 공개한다.<편집자>

삼성 노동자들 다수가 고과제도에 불신을 보이는 까닭은 ‘불합리’한 경험이 축적된 결과다. 금속노조가 지난해 10월부터 11월 두 달 동안 조사해 공개한 ‘삼성 고과 제도의 현황과 폐해 실태 연구’에는 삼성전자 노동자 7명과 삼성SDI 노동자 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집단면접 결과가 담겼다. 면접조사에서 삼성전자·삼성SDI 노동자들은 산재를 신청하거나 병가·유급휴가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평가기준이 불투명한 탓에 노동자가 잘못된 고과를 교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동자 절반가량(47%)은 “고과제도를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고, 고과 결과를 인정하기 어려워 상부에 문제를 제기해도 수정되는 경우(1.7%)는 극히 적었다.

“법정 육아휴직, 하위고과 각오해야”

면접조사에 참여한 삼성SDI 노동자는 “산재(를 당하거)나 육아휴직 하면 무조건 D(NI 등급)구나, 그렇게 깔고 간다”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D를) 줄 수는 없지, 휴직 쓴 사람을 줄 수밖에 없고. (휴직한) 본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증언했다. 익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는 “육아휴직을 2년간 했고, 돌아온 해에 라 등급을 받았다”고 답했다. NI와 라 등급 모두 하위고과에 해당한다.<본지 2023년 2월6일자 2면 “고과 경쟁에 병 드는 삼성 노동자” 참조>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19조2항은 사업주가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합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가에서 성차별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다른 SDI 노동자는 “저랑 같이 일했던 언니는 실제 (괜찮은) 고과를 받았는데 (평가자가) 다음부터 고과 안 준다고 하면서 ‘여자에게 고과를 챙겨 주면 욕먹는 것 몰라? 다른 사람들 반발 심한 것 몰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집단면접에 참여한 한 남성노동자는 “저도 봤어요. 같이 일한 여사원(이 그랬어요)”라고 동조했다.

평가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쉬운 일을 한다는 편견을 숨기지 않는다. SDI 여성노동자는 “‘남자들은 힘쓰면서 고생하는데 너네(여성노동자)는 솔직히 맨날 놀잖아. 너네가 (높은) 고과를 받을 가치가 있어?’ 딱 그런 식으로밖에 관리자들은 생각 안 한다”고 덧붙였다.

암묵적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협력업체로 특근을 갔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는 삼성전자 노동자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돌아다니는데 주간에는 보는 사람이 많아 안 좋으니, 야간 가서 청소만 2~3주 했다”며 “그러고 난 뒤 고과 NI를 세 번 받았다”고 했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나 진급 시기가 다가온 노동자에게 상위고과를 주는 ‘나눠 먹기식’ 고과평가를 증언하는 이도 있었다.

“3명 중 1명은 이의제기, 고과 수정은 1.7%”

삼성 노동자들은 고과제도를 불신하고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문제제기를 통해 수정하긴 어렵다. 고과평가 기준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의를 제기해도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면접조서에서 한 삼성전자 노동자는 “우리 조합원이 고과가 잘못 나와 이의를 제기했다”며 “인사팀장이 면담하자고 해서 (평가와 관련한) 리스트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인사를 잘 안 한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삼성SDI 노동자 한정수(가명)씨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고과 규정과 관련해) 등급별 비율은 정해져 있지만 평가 항목은 불명확하다”며 “부서장의 입맛대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고과를 챙겨 줄 테니 다른 포지션(업무)으로 이동을 좀 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사례는 아니다. ‘삼성 고과 제도의 현황과 폐해 실태 연구’에 따르면 삼성전자·삼성SDI 노동자 445명 중 절반(46.6%)은 ‘나는 고과평가 기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5점 척도 항목에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긍정적인 응답은 32.8%였다. 3명 중 1명(32.4%)은 고과평가에 이의제기를 해 본 경험이 있지만, 이의제기가 반영돼 고과가 수정됐다고 답한 경우는 1.7%뿐이었다.

업적평가의 경우 사원마다 설정한 목표(MBO) 달성비율 정도로 가늠할 수 있지만, 1~2점 차이로 등급이 좌우되는 만큼 중간관리자의 임의 평가가 고과를 좌우한다고 본다. 익명의 실태조사 답변자는 “이유 없는 라 등급을 받고, 정신적·금전적 피해로 인해 일상생활이 매우 힘들다”며 “MBO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인사(팀)에서는 평가자 고유의 권한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만 반복할 뿐 어떤 조치도 없다”고 적었다. 그는 “도대체 평가자 권한이 무엇인지 알려 줘야 개선도 하지, 답답한 마음뿐이고 자살충동까지 느끼며 살아간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응답자는 “업무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무조건 ‘예스맨’들은 무한신뢰를 받고 바른말하는 인원은 평생 신뢰하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과평가, 학습된 무력감·가스라이팅”
금속노조, 이은주 의원과 국회 토론회 … 절차·배분 공정성 없으면 지속 불가능

전문가들은 삼성 고과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금속노조와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가 6일 오후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삼성 성과급 임금제도 현황과 폐해 실태 연구’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부장은 “통상 인사평가 제도는 절차적 공정성, 배분적 공정성, 상호적 공정성, 정보 공정성으로 구성되는데 절차의 공정도, 배분의 공정도 상호적인 소통도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며 “지속가능하지 않은 제도”라고 비판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학습된 무력감, 기업의 가스라이팅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인의 발전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 평가를 하는 것인데, 이런 평가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달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성과급 임금제도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은 완벽하게 객관적인 평가자가 있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어떤 장점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을 공공은 물론 민간에까지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구현경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 서기관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계속 (정부가) 이야기하는데, 정부가 일방적인 방향을 제시한다고 하면 오해”라며 “직무급이나 성과급을 반영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구현할 수 있는 임금체계, 일 중심의 임금체계로 나아가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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