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윤희 기자

김복철씨는 옷을 수선하는 일을 한다. 의류수선업체 사장이지만 그가 고용한 직원과 똑같이 일한다. 먹고살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지만 제도권 ‘노동’을 하는 이들이 누리는 권리는 없다. 노래하고, 연기하거나, 축구경기를 보조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위탁이나 용역 같은 다양한 형태의 계약관계를 맺는 ‘나 홀로 사장님들’이다. 그들처럼 다른 n명의 개인사업주가 사회적 보호벽 밖에 놓여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편집자>

2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의류수선업체 ‘사장님’ 김복철(59·사진)씨는 마음 편히 하루를 쉬어 본 적이 없다. 오전 10시께 출근해 오후 9시가 넘어야 퇴근한다. 4시간마다 30분씩 휴게시간, 점심시간 1시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는 별나라 이야기다. 짬이 나면 잠시 쉬고 볼일을 보러 자리를 비우기도 하지만 예고 없이 찾는 손님의 방문을 기다리느라 항상 일하는 근방에 있는 편이다.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씨가 ‘쉴 권리’를 말했다. 그는 자신을 “명칭은 사업자지만, 실질적으로 노동자”라고 평가했다. ‘사장과 노동자’ 좀처럼 닿지 않을 것 같은 두단어다. 그를 직접 지휘·감독하는 고용주는 물론 없다. 그럼에도 왜 쉬지 못하고, 노동자를 자처하는 걸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5일 오후 김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금천구 한 아웃렛을 찾았다.

“양복점 지자, 수선집 차려
코로나19에 직원 반 줄여”

“옛날에는 양복점이라면 알아줬어요. 당시 공무원이 월 7만~8만원 받았다면 우리처럼 바지 만드는 사람은 21만원, 상의 만드는 사람들은 60만원씩 받았어요.”

중학교 졸업 직후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김복철씨는 양복점에 취직해 옷 만드는 법을 배웠다. 자신의 가게를 열고 돈 꽤나 벌던 때도 있었지만 공장에서 찍어 내는 기성복이 인기를 끌자 맞춤 양복점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양복점을 접고 방황하던 때 선배가 수선을 권했다. “(처음에는) 새 옷을 만든 사람이 무슨 수선이냐 그랬죠. 그런데 이것(수선)은 재료가 안 들어가잖아요.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라고 생각해 시작했죠.”

옷 만들며 익힌 봉제 기술이 곧 그의 자본이었다. 전주에서 2년 정도 수선을 하다 18년 전인 2004년께 상경해 서울 금천구 아웃렛 안 수선집을 열었다. 지금 그가 아내와 함께 직원 두 명을 고용해 일하는 곳이다. 직원 6명을 고용한 때도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던 시기 그의 사업 규모도 덩달아 작아졌다.

손님이 내는 수선비가 곧 그의 매출이다. 옷과 수선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바짓단 수선에 4천~5천원씩 받는다. 그의 삶은 맞춤 양복점이 뜨고 사라지는 세상의 변화에, 코로나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움츠러들고 펴지길 반복했다.

“63빌딩·남산타워 한 번 못 가봤어요”

삶은 언제나 팍팍하다. “서울에 와서 아직 어디 놀러 다니지도 못했어요. 63빌딩(63스퀘어)도 (밖에서) 보기만 했지, 올라가 보지도 못 했고, 남산타워(서울N타워)도 한 번 못 가 봤어요. 바쁘게 살았죠.”

아웃렛 안 수선집을 문을 연 이후부터 그의 삶에 쉼표는 없다시피 했다. 김씨는 “그나마 직원들 있는 날은 틈을 내 (개인) 일도 보고, 제 시간도 좀 갖는데 생일 아침에도 출근은 일단 여기(사업장)로 해야 한다”며 “저녁이 없는 삶”이라고 했다. 그는 평일 오전 10시께 출근해 저녁 9시에 일을 마친다. 식사 시간 1시간을 제외해도 매일 꼬박 10시간씩 사업장을 지키는 셈이다. 아웃렛 운영시간이 30분 연장되는 금·토·일은 밤 9시30분까지 일한다.

사장이지만 그의 출퇴근 시간은 아웃렛이 정한다. 1년 단위로 임대 계약을 맺는데, 이 계약서에는 ‘쇼핑몰 운영체제에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운영시간을 사장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쇼핑몰 여닫는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남들은 다 가는 봄날 꽃구경, 가을 단풍구경 한 번 못 가 봤다. 온 가족이 모여 북적대는 명절도 자신은 열외다. “(아웃렛은) 쉬지 않으니 제사나 차례도 못 지내요.”

처음부터 쉬는 날이 없던 것은 아니다. 김씨는 “아웃렛이 많지 않았을 때는 명절에 쉬었는데, 여기저기 들어오고 서로 경쟁하다 보니 쉬는 날이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아웃렛은 대형마트처럼 의무휴업일도 없다. 365일 연중 무휴라는 뜻이다.

아내와 직원 2명이 있지만 사업장을 온전히 맡기지는 못 한다. 김씨는 “고객들 옷 수선을 잘못해 주면 환불도 해 줘야 하고, 컴플레인(민원) 같은 애로사항이 많다”며 “자리를 멀리 못 뜬다”고 덧붙였다. 일주일에 하루 직원들에게 휴일을 제공하지만 직원의 공백을 메우는 건 그의 몫이다.

주말에 하는 결혼식 참석은 꿈도 못 꾼다. 참석하려면 알바를 써야 하는데, 인건비가 부담스러워서다. 특수고용직인 택배노동자가 아프면 자신 대신 배송할 용차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랑 꼭 닮았다.

▲ 남윤희 기자
▲ 남윤희 기자

사장님이 의무휴업제도 확대 ‘운동’하는 이유

쉼 없이 달려온 탓일까. 9년 전 담도암에 걸려 3개월간 일을 쉬었다. 크게 아프고 난 뒤 그는 “무언가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결심은 2017년 11월 ㈔한국패션리폼중앙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협회는 수선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로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전문인력 양성·훈련에도 힘쓰고 있다. 재벌복합쇼핑몰입점저지전국비대위 공동대표도 겸하고 있다.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가 대형마트에만 적용되는 의무휴업 확대 ‘운동’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대형마트에서 하는 의무휴업을 백화점이나 일반 아웃렛까지 확대하고, 정기적인 휴무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고 말을 꺼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진짜 딱 한 번이라도 좋고, 주말이 아닌 평일이어도 괜찮으니 한 달에 한 번만 정기적인 휴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노동자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김씨는 “노동자가 맞죠”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답변의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았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글=강예슬·어고은 기자, 사진=남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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