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전 차종·전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지난달 24일 시작한 파업이 16일 만에 종료됐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정부 요구를 수용해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으로 법안을 단독처리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막혀 법안 처리는 올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으로 파업을 진압한 정부는 파업이 끝난 후에도 원점논의를 주장하며 안전운임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0년부터 시행된 안전운임제는 이달 말로 일몰을 앞두고 있다. 안전운임제를 지속·확대하기 위해 파업 이후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 벌어진 화물연대 파업이 소득 없이 16일 만에 종료됐다. 정부·여당은 과격한 언사를 남발하고 2003년 도입 이후 잠자고 있던 업무개시명령까지 발동하며 화물연대를 강하게 압박했다. 화물연대의 파업 철회 후 더 나아가 1차 파업 때 화주를 포함한 교섭을 중재했던 정부는 6월 합의안의 마지노선인 3년 연장안까지 포함해 안전운임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세 가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윤석열 정부의 일관된 강경한 태도다. ‘법과 원칙’ 운운은 파업 사태를 두고 으레 정부에서 하는 말이다. 실정법의 수호자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또 기존 질서, 기득권의 수호자이기 때문이다. 실정법의 제도적 사각지대에서 노동권이 부정되고 파업하면 바로 불법파업이 돼 버리는 하청·특수고용 등 불안정노동층의 파업에서 법과 원칙부터 들이민다. 다만 이번엔 그 강도가 달랐다. 정권 출범 첫해에 두 번째 파업이자, 정부의 중재안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괘씸죄가 작용했다고 본다. 또한 민주노총 주요 사업장의 파업이 연이어 예정돼 있어서 정권 흔들기라는 정치 파업의 시발점으로 규정 짓고, 강경대응을 통해 지지율 반전과 정국 주도권 회복의 계기로 전환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본다. 1차 합의시에는 초반의 강경대응 방침에서 화물노동자의 생존권 위기라는 사안 자체에 주목하는 태도로 바뀌었던 일과 대조된다. 실사구시의 자세로 전환하자는 목소리 자체가 정부·여당에서 나오질 않았다.

둘째, 화물연대 파업의 고립이다. 화물운송노동의 최소한의 안전판인 안전운임제의 종료를 앞두고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2차 파업시 겪은 강경 대응, 괘씸죄 적용의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화물연대는 또다시 2차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인력절감 중심의 구조조정 정책에 맞선 서울교통공사·한국철도공사 노동자 파업은 하루 만에 종료되거나 성사되지 못했다. 경제적 이유로만 파업이 가능해 임단협 시기가 아니라 쟁의권이 있는 사업장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서울시가 조기 종결을 위한 타협안을 서둘러 꺼내 들었다. 다른 민간 사업장 일부도 마찬가지여서 간접적인 지원, 연대의 고리는 끊겼다. 법·제도적 한계가 있다지만, 화물연대 사안의 시급성 때문에 조율이 쉽지 않았다고 하지만, 한국의 노동조합은 기업별 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씁쓸히 확인했다.

셋째,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어정쩡한 태도다. 화물연대의 파업 철회는 합의 타결됐다는 오보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결정적으로는 정부가 1차 합의안이라고 못 박은 현 제도로 3년 연장안을 민주당이 조정안으로 제시했던 직후 이뤄졌다. 여야 정쟁 구도 속에서 단독 처리도 자신 못하는데, 화물연대와 논의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무슨 깊은 뜻과 사정이 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수출입 대기업이 주축인 화주에게 비용부담을 지우는 제도를 확장하는 일엔 매우 소극적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긴 어렵다. 재벌 대기업의 이해를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만 친노동일 뿐인, 친기업이라는 보수정당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야당을 다수당으로 둔 탓이다.

지금 화물연대 파업 이후 과제를 진단하려면 지난 6월로 돌아가 봐야 한다.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벌어진 대규모 파업과 물류 중단 사태는 8일 만에 타결됐다. 그때 우려했던 것처럼 명확하지 않은 합의가 문제였다. 화물연대는 상시 제도화(일몰제 폐지)와 적용 확대를 요구했다. 이런 취지가 반영되어 개정안이 논의돼야 한다는 화물연대와 달리 국토교통부는 제도의 연장으로만 축소 해석해서 2차 파업 사태까지 이어졌다. 안전운임제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서는 동의하나, 일몰제 폐지 또는 연장 중 선택과 적용범위 확대 여부라는 중요한 쟁점이 법안 개정 시한을 한 달여 앞두고 여전히 진척되지 않았다. 엄정대응을 부르짖는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윤석열 정부는 1차 합의의 책임당사자이자 2차 파업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마치 초연한 존재처럼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져 대처한다면 구시대적 보수정부의 지지기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안전운임제는 정부가 중재하는 당사자 합의를 통해 적정 화물운송료를 책정해 정적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화물기사의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하며, 화물기사는 물론 시민의 생명 안전까지도 담보하는 제도다. 화물운송료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독과점 운송 수요자인 거대 대기업 화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수고용 종사자로 형식상으로 자영업자인 화물기사는 근로자의 신분도 아니고 노동조합도 교섭권도 없다. 노동조건의 실질적 결정자인 화주와의 합의를 성사시키려면 합리적 중재자로서 정부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적용범위 확대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자동차 40만대 중 컨테이너 트레일러·시멘트 운송 2만6천대에만 적용되고 있다. 유류가 인상과 생계비 압박은 화물운송 노동자 전체가 겪는 문제다. 비단 두 업종의 화물운송 노동자만 과로·과적·과속에 내몰리는 것은 아니다. 고속도로 사고의 60%를 웃도는 화물운전자의 사고와 대형 인명손실을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제도의 운명을 가늠하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객관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토교통부가 발주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아전인수식 말에 시간 낭비하지 말자. 적정 운임이 책정되지 않으면 화물기사들이 생존을 위해 무리한 운행을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적정 운임이 책정되면 도로 안전에 효과가 있는지가 명확하게 수치로 입증되지 않는다고 해서, 없을 때 생기는 부정적인 효과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이 부정되지 않는다.

정부는 파업 사태를 백기 진압했다고 자만에 빠지지 말길 바란다, 손배·가압류와 형사처벌이라는 수순으로 옮아 가는 순간, 구시대의 나락에 접어드는 것이다. 안전운임제라는 쟁점에 집중해서 이제부터라도 내용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화물운송 체계의 합리적 운영과 공정한 책임부담을 구현하기 위한 방안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상시 제도화를 거론할 여건은 아니다. 효과 입증도 논란이라고 치자. 3년 연장하되, 3년이 아니라 1년 안에 객관적인 실태조사와 연구를 통해 안전운임제의 효능을 진단하자. 지난 3년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도로의 안전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로 상설 감독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다. 호주 최대의 물류거점인 시드니항이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도로안전운임제는 적정 운임은 물론 노동시간, 안전교육, 후생복지 등 도로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요인을 포괄하고 상설 감독기구를 설치해 관리한다.

화물운송의 안전성과 도로의 안전성을 지키기 위해선 안전운임제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안전운임제는 생존의 압박에 밀려 무리한 운행을 강행해 도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요인을 제거하는 기반이다. 이런 제도가 호주, 캐나다 벤쿠버, 브라질 등에 국한된 건 유럽 국가에선 화물노동자의 노동권이 인정되고 교섭을 통해 소득과 건강한 노동여건이 갖춰지는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고용으로 형식상 자영업자로 분류돼 노동자성도 노동권도 부정되지만, 어떻게 진단하든 실질적으로 불안정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포괄돼 사회적 보호기제가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로선 안전운임제라는 제도가 그 사회적 장치를 상징한다. 또한 하청과 원청의 관계에서처럼 화물운송의 가치사슬체계의 정점에 있는 화주는 책임의 당사자로 포괄돼야 한다.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선 운송노동시간 관련한 엄격한 규제장치가 필요하다. 다만 공급자인 노동자만 압박해서는 효과도 없고 공정하지도 않다. 화물운송 노동시간 총량규제제도를 도입하되 화물기사만 압박하는 수단이 되지 않으려면 최저소득 보장책인 안전운임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화물운송 안전감독기구를 통해 객관적인 실태조사는 물론 소득과 시간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안전관리제도를 구축하자. 다시 화물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지 않아도 논의의 장이 열리는 날을 기대한다. 화물운전자의 안전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