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24일 총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각 지역본부별 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열린 서울·경기지부 출정식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 6월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 논의에 합의한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본부장 이봉주)가 24일 0시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업무개시명령’ 발동 가능성을 시사했고 여당은 화물연대 파업을 ‘정권퇴진운동’으로 규정하며 파업 철회를 요구했다. 사태 책임을 화물연대쪽에 떠넘기며 당정협의로 결정한 ‘3년 연장·품목확대 불가’를 밀어붙이려는 모양새다.

“심각한 위기 초래시 업무개시명령 발동”
“ILO 강제근로 금지 협약에 위반”

화물연대본부 조합원 2만5천여명은 이날부터 운송을 멈췄다. 이날 오전 16개 지역에서 열린 파업 출정식에는 1만1천여명(국토부 추산 9천600여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상조회를 비롯한 비조합원들이 파업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점을 고려하면 실제 파업 참여 인원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까지 언급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번 집단운송거부가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까지 초래한다면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에 근거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겠다”며 “이르면 다음주 화요일(28일) 국무회의 또는 임시국무회의를 열어서라도 의무를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화물자동차법 14조에 명시된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면 화물운송 종사자격을 취소하거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봉주 본부장은 이날 오후 경기도 의왕ICD(내륙컨테이너기지) 2기지에서 열린 긴급 브리핑에서 “업무개시명령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105호 강제근로 폐지 협약에 위반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모두 비준한 원칙에 반하는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을 언급하면서까지 대기업 화주를 비호하려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정부와 재계에서 화물노동자를 자영업자 혹은 특수고용 노동자로 보면서도 업무개시명령을 언급한 사실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화물연대에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날 국토부는 “지난 6월 화물연대와 논의한 바를 충실이 이행해 왔다”며 합의를 파기했다는 화물연대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국토부는 “화물연대에 ‘안전운임 TF’ 구성도 제안했으나 화물연대는 국회 입법사항이라며 TF 구성에 부정적 입장을 표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봉주 본부장은 “국토부는 6월 파업 이후 품목확대와 관련한 TF를 제안한 적이 없다”며 “파업 기간 한 차례 TF를 언급했는데 화주 입장을 반영한 안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기 때문에 TF에 반대했다”고 반박했다.

당정협의로 마련한 개정안 되레 ‘뒷걸음질’
안전운송원가 조사 항목에서 인건비 ‘제외’
민주당 “안전운임제 자체 무력화하는 악법”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정부는 고심 끝에 안전운임제 일몰제 3년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앞으로도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날까지 화물연대와 대화채널은 마련되지 않았다. 고심 끝에 3년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점 또한 화물연대 파업을 목전에 둔 22일에서야 일몰 시한을 3년 연장하되 품목 확대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불과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인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2일 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했다. 당초 개정안에는 안전운임제 일몰 시한을 3년 연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화주가 운수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안전운송운임’을 삭제해 화주 책임을 없앴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안전운임을 지키지 않은 자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논란이 예상되자 이 같은 내용을 빼고 23일 개정안을 재발의했다.

재발의한 개정안도 안전운송원가 심의·의결시 고려해야 할 항목에서 인건비를 빼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은 안전운임위원회가 안전운송원가를 심의·의결할 때 △인건비·감가상각비 등 고정비용 △유류비·부품비 등 변동비용 △그 밖에 상·하차 대기료, 운송사업자의 운송서비스 수준 등 평균적인 영업조건을 감안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고려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개정안에는 인건비가 빠지고 “감가상각비·유류비 등 화물운송에 소용되는 비용의 항목별 금액을 정하고 이를 고려해 안전운송원가를 심의·의결한다”는 식으로 뭉뚱그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토교통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정협의를 거쳐 여당이 발의한 법안은 운송원가항목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안전운임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악법”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지금까지 자행했던 시행령 통치를 화물노동자와 영세운수업체의 생계가 달린 안전운임제에도 적용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민주당은 정기국회에서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과 ‘적용품목 최소 3개 확대’를 포함한 소위 ‘3+3 해법’을 추진하겠다”며 “민주당은 ‘화물자동차 안전운임 대상 확대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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