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태원 참사에 국가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다. 10만명이 몰리는 상황임을 예견했음에도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137명이었고, 이 중 질서 유지를 위한 근무자는 58명에 불과했다. 참사 전부터 압사 우려를 전하는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여론은 더욱 악화했다. 윤희근 경찰청장과 오세훈 서울시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떠밀리듯 사과했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고 나서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겠다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지만 정작 법에 규정된 중대시민재해 관련 조항을 이태원 참사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가 법 적용 대상인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에서 발생한 재해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다. 정부 주장대로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 법이 정한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책임자가 불분명하다는 얘기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회적 참사에 국가 책임을 묻겠다는 목적이 분명했지만,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의도가 퇴색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20년 12월24일부터 2021년 1월7일까지 여섯 차례까지 이어진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회의록을 통해 논의의 과정을 되짚어 봤다.

‘중대시민재해 발생 책임은 국가에 있다’
여야 이견 없이 동의, 법안 2조에 반영

법안심사소위 내내 여야는 중대시민재해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20년 12월24일 1차 소위 당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사건 등 사회적인, 불특정 다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거나 다쳤던 사건들에도 공무원과 사업주가 경미하게 처벌되는 관행이 반복됐다”며 “불특정 다수 시민이 안전의무 위반으로 피해를 받는 부분도 보호할 필요성이 높다”고 밝혔다.

같은달 29일 열린 2차 소위원회에서는 중앙행정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재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구체적 발언이 나온다. 백혜련 당시 소위원장이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중대시민재해 책임을 진다는 조항을 두고 ‘(책임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고 전달하자,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이런 사고를 예방·교육시키기 위해 정부가 있는 것 아니냐”며 “(그렇지 않으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본인 의무를 방기한다”고 말했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적으로 사업·기업 활동을 하는 경우가 없으니 자치단체 책임 부분은 시민재해쪽으로 남겨 둔 게 아닌가 이해하고,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도읍 의원은 2021년 1월5일에 있던 4차 소위에서도 “다중이용시설 등 부분들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져야 한다”며 “더 집중적이고 치밀하게 안전조치에 대해 관리감독을 해야 된다는 책무가 여기 (다중이용시설 관련 조항)에서 다시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중대시민재해 논의하다
시행령으로 정부·지자체 빠져나가

이런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 2조9항(경영책임자 등)에 반영돼 경영책임자에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포함됐다. 하지만 중대시민재해를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한 재해”로 정의하고, 공중이용시설 범위를 시행령으로 규정하는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지하역사와 철도역사, 지하도상가, 대합실과 여객터미널 같은 시설물 그리고 교량, 터널, 방파제 등이 포함됐다. 도로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공중이용시설을 열거하며 발생하는 사각지대 문제는 이미 논의 과정에서 문제가 됐다. 지난해 1월6일 5차 법안소위에서 김용민 의원은 “중대시민재해 입법취지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놀이공원과 같이 빠진 것들이 있다”며 소방청화재예방과장에 문제를 제기했다.

법원행정처는 이에 대한 의견으로 ‘그 밖에 앞선 시설에 준하는 시설로 재해 발생시 생명ㆍ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라는 포괄 규정을 제시했다. 김인겸 법원행정처장은 “(제외되는 시설이 생길) 수밖에 없고, 새로운 업종이나 시설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포괄 규정을 두고, 대통령령으로 그때그때 정하게 하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행 법조문은 이 의견이 반영됐다.

중대시민재해 규정 새롭게 정의할 필요
안전 관련법에 따른 의무 위반 책임 물어야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중대시민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공중이용시설과 공중교통수단의 요건을 나열하는 방식에 반대한다. 이들은 사회적 참사 발생시 안전 관련법에 규정된 책임자의 의무 위반 여부를 살피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노동계와 시민사회, 산재 피해자, 법조계, 안전보건 전문가 단체로 구성된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는 이런 방향의 법 개정 요구를 꾸준히 제기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은 혼란을 통제하지 않아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위반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상 안전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대시민재해를 발생시켰다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관련 법령에 따라 당연히 지켜야 하는 의무를 위반할 때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이야기로, 새롭게 의무가 생기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책임 범위가 광범위하다고 하는데, 재해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의무 방기 책임을 따지면 책임이 무제한적으로 확정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는 지난 3일 오후 회의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미비점의 보완책을 논의했다. 법의 미비점을 평가하고 구체적 대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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