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국립대병원에도 구조조정 찬 바람이 불 전망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겪은 상황에서 인력을 줄인다는 것은 공공의료 포기 선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11월 총파업을 준비하는 이유다.<편집자주>

▲ 윤태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장
▲ 윤태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장

국립대병원 노동조합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부족한 병원 인력확충과 공공병상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하지만 공공병상은 늘어나지 않았고 병원 인력 또한 언제나 정부의 통제 대상이었다. 심지어 노사가 파업을 통해 증원을 합의한 인력확충조차 승인되지 않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10개 국립대병원의 인력확충 요구에 대해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거부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올해 병원이 요청한 인력 952명 중 단 37.4%만 승인됐다. 타 국립대병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경북대병원은 인력요청 승인 비율이 2020년 22.4%, 2021년 4.1%, 2022년 18.4%라는 믿을 수 없는 수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고 병원 인력부족 사태를 온 국민들이 매일 매일 확인하게 됐다. 국립대병원은 간호인력이 부족해서 코로나19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다. 심지어 병실이 있어도 치료할 간호사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대다수 국립대병원은 아랫돌 빼서 윗돌을 궤는 형태로 인력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공공병원임에도 필수인력 부족이 일상이었고 국가적 재난에 대비한 어떠한 인력도 준비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병원노동자를 쥐어짜는 것이고, 이를 노동자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둔갑시켜 치켜세우는 것뿐이었다. 공공병상과 병원 인력부족으로 초래된 코로나19 3년간의 희생을 교훈 삼아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29일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가이드라인에는 △공공기관 기능 축소 △인력감축과 복리후생 축소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따라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5개 국립대병원에서는 423명의 인력감축 계획을 제출했다. 환자를 치료할 인력을 달라는 병원노동자들의 호소를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였다.

특히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성과급제 도입이다. 다양한 직종이 협업을 통해 환자 안전을 위해 일해야 하는 병원사업장에서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도입은 결국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는 병원이 수익을 내기 위해 저질 재료를 사용하는 등 많은 무리수를 두는 것을 보며 성과 위주의 병원 운영이 환자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확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병원노동자들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투쟁으로 막아 왔다.

윤석열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노동조합과 합의하지 않고 부문별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만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5년 서울대병원에서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에 발맞춘 구조조정과 성과연봉제 도입을 시도하며 직원 개개인에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동의서를 강제로 받아 노조가 강력히 저항한 바 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올해에도 이런 일이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나서서 노사파국을 만들고 공공기관의 탈법을 유도하는 것이다.

‘공공기관 기능 축소’는 윤석열 정부의 의료정책과 맞물려 민영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는 의료를 산업으로 인식하며 병원 및 건강보험이 보유한 개인의료정보를 상품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공공병원에 대해서는 강화·확대가 아닌 민간위탁 정책이 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관리서비스를 활성화하겠다며 이를 비의료 영역으로 분류해 1차 의료에 대한 사실상 민영화를 시도하는 위험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병상 비율이 10% 정도로 이미 낮은 상황에서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공공병원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의료민영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에 13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안을 국민 건강권 훼손과 공공성 파괴로 규정하고 전면폐지를 위한 투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11월10일 총파업으로 맞설 것을 결의했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바꿔 내고 국립대병원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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