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국립대병원에도 구조조정 찬 바람이 불 전망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겪은 상황에서 인력을 줄인다는 것은 공공의료 포기 선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11월 총파업을 준비하는 이유다.<편집자주>

▲ 한지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강원대병원분회장
▲ 한지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강원대병원분회장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의료민영화 저지, 노동개악 저지, 인력감축 저지를 통해 국민건강을 지키는 11월10일 총파업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핵심 쟁점이 인력이다.

코로나19를 극복은 수많은 의료진들의 피와 땀이 서린 희생이 토대가 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절정일 때 감염된 산모가 분만이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전전하다 공공병원인 강원대병원을 찾아왔다. 강원대병원은 산모와 아기를 돌보기 위해 간호사 한 명을 전담으로 배치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고, 산모와 아기는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수익보다 코로나19 대응을 최우선시한 공공병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서 3년을 보냈던 국립대병원 인력을 되레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립대병원 사용자가 작성한 이행계획서에는 전북대병원 111명, 경북대병원 106명, 충북대병원 43명 등의 인력감축 계획이 있다. 감축되는 대부분 인력은 간호직이다.

정부의 논리는 코로나19에 필요한 인력을 한시적으로 증원했으니 코로나19가 소강됨에 따라 증원된 인력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립대병원 설치 이유를 망각한 논리다. 국립대병원은 공공의료를 최전선에서 책임지는 기관이다. 또다시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 대응을 위해서 인력을 항시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증원인력도 빼고, 향후 5년 동안 세운 인력증원 계획 백지화에 인력감축이라니….

병원의 인력난은 고질적인 문제다. 강원대병원의 경우 지방 국립대병원이라는 특성과 맞물려 인력난이 특히 심각하다. 임금이 수도권 병원과 지역의 민간·사립대병원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때문에 임금인상률이 제한돼 갈수록 임금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복지, 환자들의 높은 중증도에 따른 노동강도는 강원대병원에서 간호사를 구하는 일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강원대병원은 2020년 간호사 현원이 정원에 비해 94명, 2021년 73명, 2022년 현재는 37명이 적다. 이마저도 조사된 시점과 채용 시기가 맞물려 일시적으로 현원이 늘었을 때의 숫자다. 육아휴직 등으로 인한 비상시 결원까지 감안하면 최고 100명 이상이 정원에 미달된다. 모든 병동이 사실상 10% 마이너스 인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현장은 참담하다. 임산부인 간호사조차 나이트 근무를 더 많이 해야 하는 동료에게 미안하니 “임산부가 나이트 근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물어 보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보고 있기에 보호받아야 할 임산부조차 스스로 근로기준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력부족은 간호사들의 건강권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야간근무는 불면증·수면장애를 유발하고 암 발생 확률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때문에 야간근무는 최소화하는 것이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원칙이다. 그러나 인력부족으로 간호사 개인이 더 많은 야간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강원대병원은 간호사 포함 1인당 월 야간근무일수 8개를 초과하는 경우가 연 500건에 이른다. 타 국립대병원이 약 50건인 것에 비하면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국립대병원 간호사의 2년 이내 퇴사 비율이 평균 58.7%인데, 과도한 야간근무일수는 사직의 중요 원인이다.

간호사뿐 아니라 병원 전반의 인력부족은 환자와 직원 모두에게 위험하다. 2019년 발표한 공공기관 안전관리 지침에 따르면 위험 작업은 2인1조 근무가 원칙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환자이송 업무 직원이 몸무게 수십 킬로그램의 환자를 침상에 혼자 옮기다가 환자와 직원 모두 다치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병동에서 다른 보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있던 직원이 환자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야간에 혼자 설비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병원에서 사망하고 뒤늦게 발견되는 일도 있었다. 야간근무와 위험업무 2인1조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력충원은 필수다.

국립대병원이 설립 취지에 맞게 제대로 된 공공병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병원노동자와 국민이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인력감축이 아닌 인력증원을 요구한다. 병원노동자들이 국민건강을 지키고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또다시 투쟁에 나서는 이유다. 인력감축은 공공성을 상실하고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국민의 편에 서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투쟁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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