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E사의 빨랫감을 배송하다가 지난 6월 교통사고로 숨진 강아무개(사망 당시 47세)씨의 아내가 지난 19일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새벽배송은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기훈 기자>
▲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E사의 빨랫감을 배송하다가 지난 6월 교통사고로 숨진 강아무개(사망 당시 47세)씨의 아내가 지난 19일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새벽배송은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기훈 기자>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노동력을 토대로 성장한 기업들이 저마다 ‘혁신’을 외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구축해 비대면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사람의 노동’은 혁신 뒤에 가려져 있다. ‘플랫폼기업’ 그물망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최근에는 플랫폼 창업 바람을 타고 ‘모바일 세탁업체’가 지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고객의 빨랫감을 비대면으로 세탁해 하루 이틀 사이에 배송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업계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추세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이 ‘세탁 스타트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실상을 파악하려면 ‘세탁계의 새벽배송’ 신화 이면을 살필 필요가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최대 규모의 모바일 세탁업체에서 이틀간 일하며 세탁 스타트업의 노동환경을 들여다봤다. 또 근로계약과 계약형태의 법률상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한다.<편집자>

① 24시간 세탁, 그곳은 ‘빨래지옥’이었다
② “잔업은 일상” 16시간 만에 퇴근
③ 인력업체 직원이 세탁? ‘불법파견’ 정황
④ 빨랫감 새벽배송, 배송기사 사지로 몰았다

“사람을 갈아 넣어서 그걸 시스템이라고 하고 있어. 사람을 더 뽑아서 시스템을 돌려야지,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거기다 맞추고 있는 것이 말이 되나. 사람을 갈아 넣어서 시스템을 만들고는 그걸 시스템이라고 불러?”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E사의 세탁물 배송을 담당하다가 올해 6월 교통사고로 숨진 지입기사 고 강아무개(사망 당시 47세)씨가 생전 동료에게 분노하며 말한 대화 내용 중 일부다. 그는 E사의 ‘24시간 배송시스템’으로 인해 과로에 시달린다며 동료와 가족에게 고충을 토로해 왔다. 운수사에 “목숨 내놓고 더는 일 못 하겠다”고 호소까지 했다. 하지만 결국 일을 시작한 지 5개월여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강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대면 새벽배송’ 홍보에 ‘운송위탁계약’

2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6월3일 오전 4시40분께 경기도 파주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 지입차주 강씨가 현장에서 숨졌다. 강씨 트럭의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강씨는 도로 공사를 위해 무단 주차한 ‘아스팔트 피니셔’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추돌했다. 당시 도로는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상태였다.

‘실직’은 강씨에게 ‘운전대’를 잡도록 만들었다. 강씨 아내 A씨 설명에 따르면 해외영업 관련 간부를 지냈던 강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던 2020년 9월 실직했다. 이후 프리랜서로 일하던 중 구인사이트의 ‘세탁의류 새벽배송’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1톤 탑차’를 몰고 주 5일 또는 6일, 오후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세탁의류를 배송하는 일이었다. 실제 구인사이트에는 운수업체인 J사의 △가벼운 의류배송 △주 5일 근무 △월 450만원 이상 △성별·연령 무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채용공고가 올라온다.

강씨는 올해 1월17일 화주 소유의 2014년식 1톤 탑차를 2천700만원에 분양받은 뒤 J사와 1년간 운송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권역별로 E사의 물품을 운송하는 업무였다. 수수료는 성수·강서센터 기준 건당 3천~3천500원의 단가에 따라 책정됐다. 고정급 없이 유류비와 도로비, 차량 도색비용은 기사가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J사는 채용공고를 통해 ‘비대면 새벽배송’이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고 교통체증 없이 최단시간 작업이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3주 숙달 후 일감이 늘어나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강씨도 투잡으로 일하기 적절하다고 보고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E사의 세탁물 배송기사인 강아무개씨가 운전하던 트럭이 교통사고로 심하게 손상돼 있다. 강씨는 장시간 배송업무를 수행하다가 여러 차례 사고를 당하다가 지난 6월 무단 주차된 아스팔트 작업차를 추돌해 목숨을 잃었다. <유족 제공>
▲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E사의 세탁물 배송기사인 강아무개씨가 운전하던 트럭이 교통사고로 심하게 손상돼 있다. 강씨는 장시간 배송업무를 수행하다가 여러 차례 사고를 당하다가 지난 6월 무단 주차된 아스팔트 작업차를 추돌해 목숨을 잃었다. <유족 제공>

‘세탁시스템’ 배송, 10시간 넘게 운전

그러나 현실은 크게 달랐다고 A씨는 전했다. 운송계약을 맺는 즉시 J사에 속박됐다. 운송계약서에는 ‘고정차량’을 회사가 요구하는 지정된 장소, 시간에 대기시켜 운송품목이 운송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전 동의 없이 계약에 관한 권리를 제3자에게 양도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나아가 쟁의행위와 단체행동도 할 수 없게 했다.

강씨는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했다고 한다. 건장한 체격이었던 강씨는 불과 두 달 만에 몸무게가 17킬로그램이 빠졌다. 지대가 높은 서울 관악구 일대가 배송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건물 계단을 뛰어다니며 빨랫감을 수거했다.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송 물량이 늘어나면서 압박이 들어와 남편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배송이 ‘E사의 세탁시스템’에 맞춰 이뤄지면서 업무는 가중됐다. 채용공고에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로 기재됐지만, 실제 10시간 넘게 일하는 날이 많았다. 공장에서 세탁이 늦게 끝나는 상황이 이어지며 ‘선 수거·선 배송’이 이뤄졌다. 고객 집에서 세탁물을 먼저 수거하거나 공장에서 고객 집으로 세탁물을 배송하는 방식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루에 ‘두 바퀴’를 돌기 일쑤였다.

강씨는 서울 관악구에서 80~100개의 세탁물을 거둬들여 배송했다. E사는 오후 11시 이후 빨랫감을 수거한 뒤 배송을 오전 7시까지 마치도록 배송기사를 압박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탁이 늦어지며 배송은 미뤄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강씨와 동료기사의 대화 내용을 보면 이 같은 배송방식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그는 동료에게 “(오전 2시에 세탁을 마치면)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마지못해 수거와 배송을 반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배송하고 수거하다가 또 센터에 들어와야 하다 보니 아침 10시가 돼서 끝난다”고 토로했다. 실제 SNS 대화방에 따르면 입차시간은 들쑥날쑥했다. J사 관리자는 오후 9시30분, 오후 10시, 오전 12시30분 등으로 통보했다.

‘오배송 정정·사진촬영’ SNS 업무지시도

E사의 업무지시는 배송기사를 더욱 압박했다. 배송기사들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잘못 배송된 세탁물을 수거해 고객 집에 날라야 했다. E사 관리자는 SNS 대화방에서 배송기사에게 오배송된 고객의 주소를 알려주고 재배송을 지시했다. 해당 기사는 약 1시간 뒤 “정정배송 완료했다.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A씨는 “남편은 오배송이 되면 일이 끝나고 낮에 자다가도 다시 배송하러 나갔다”며 “오배송할 때마다 복귀 후 교육을 들어야 했다”고 증언했다.

배송기사들은 세탁수거함 배송 완료 사진을 촬영해 SNS로 보고했다. E사 관리자는 안심고리 미체결 여부를 확인했다. E사 관리자는 세탁종류 표기와 회원카드번호를 확인하고, 없으면 미처리 등록을 하라고 지시했다. SNS 대화방에는 배송기사들의 업무처리 문의가 수시로 올라왔다.

수거·배송 이외의 업무도 부여됐다. 배송기사가 공장 세탁실에서 세탁을 마친 빨랫감을 직접 날라야 했다고 A씨는 전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배송시간은 늘어났다. 강씨는 동료에게 “아파트 단지에 들어갔다가 (배송지를) 못 찾아서 두 개 치는데 한 시간 날렸다”며 “(물량을) 80~90개씩 짊어지고 있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날 강씨는 오전 7시에 퇴근하지 못했다. 강씨의 출퇴근 보고를 보면 많게는 하루에 14시간 넘게 근무했다.

정신적 긴장이 계속됐다. 배송기사들은 세탁물 수거·배송 완료시 SNS 대화방에 시간을 보고했다. E사 관리자는 배송이 지연되면 그 사유를 보고하라고 했다. A씨는 “남편은 일을 끝내고 들어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악몽을 꾸기도 했다”며 “일하러 갈 때는 에너지 음료와 젤리 등을 손에 쥐여주고 오늘도 무사히 끝내길 바랐다”고 털어놨다.

강씨가 숨지던 날에도 강씨의 트럭에는 E사 고객의 세탁물이 가득 실린 상태였다. 강씨의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동료 배송기사가 강씨 트럭에 실린 세탁물을 대신 배송해 줬다고 한다. A씨는 “사람이 죽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사의 사후 조치는 없었다고 한다. A씨는 “사고와 관련해 아무런 사과도 못 받았다. E사도 운수사도, 사고현장 안전관리책임자도 어떠한 말이 없다”며 “혼자서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사고 이후 E사와 운수사 관계자가 장례식장에 찾아왔지만, 부의금만 내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E사가 운수사와 계약한 배송기사에게 세탁물 배송과 사진촬영 등에 대해 지시하는 내용.
▲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E사가 운수사와 계약한 배송기사에게 세탁물 배송과 사진촬영 등에 대해 지시하는 내용.

사측 “업무지시 없어” 법조계 “배송정책 통보”

E사측은 배송기사에게 업무지시를 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운수사가 배송기사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위탁계약을 체결했을 뿐, 구체적인 업무를 지시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E사 관계자는 “전날 발생한 오배송, 출입방법 등 정보와 정책 변경을 소통하는 정도”라며 “세탁물 수거·입고·배송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업무 소통은 운수사 관리자를 통해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세탁 완료 시각을 고지하라고 요구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운수사가 배송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장 운영 시간과 관련한 가이드는 배송기사 업무를 위해 당연히 필요하고 만약 가이드가 없으면 공장 근무자의 장시간 근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배송 이외의 업무를 배송기사가 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E사 관계자는 “배송기사는 배송 외의 업무를 수행한 바 없다”며 “수거함 사진 촬영은 배송이 잘 됐는지를 고객에게 확인해 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는 사실상 배송기사가 E사에 전속돼 일했다고 진단한다.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E사가 24시간 배송을 달성하고 공장 운영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배송정책을 세우고 통보하면, 개별 배송기사에 대한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업무지시로 작용할 수 있다”며 “운수사나 배송기사에게 업무상 재량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권두섭 변호사(직장갑질119 대표)도 “배송기사에 대해선 근로자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며 “E사를 원청 사업주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고 말했다. 형식상 개인사업자라도 ‘전속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입기사 유족 “새벽배송 없어지면 좋겠다”

강씨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강씨 아내 A씨는 ‘새벽배송’이 배송기사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지난 19일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에서 “E사가 배송시간을 늘리거나 새벽배송을 없애지 않는 이상 지입기사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 같다”며 “남편이 배송지역을 옮길 때 기사 몇 분이 그만둔다고 했다는 것을 들었다. 얼마나 힘들면 그만두겠냐”고 말했다.

특히 ‘새벽배송’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A씨는 “새벽배송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라며 “일반 택배와 달리 배송기사들이 사후조치를 해야 한다. 빨리 배송하고 싶어도 아침에 차가 막히면 또 늦어진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숨지기 전에도 배송하던 중 담벼락이 무너지는 큰 사고를 겪었다. 당시 강씨와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E사가 우리 희생으로 자신들이 욕먹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냐”며 “왜 우리가 E사에서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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