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복지공단

2005년 충남 아산 탕정면에 위치한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 액정공정에서 근무했던 김아무개(33)씨는 생리불순·하혈 같은 건강이상을 겪으면서 2008년 퇴사했다. 증상이 심해져 2017년 혈액암(비호지킨림프종 4기) 진단을 받은 김씨는 2018년 산업재해를 인정받고 휴업급여를 지급받았다. 2019년 12월 치료를 완료한 그에게 2020년 10월 혈액암이 다시 찾아오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우울증 진단까지 받은 김씨에게, 근로복지공단은 취업하면서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이 경우 통원한 날짜에만 휴업급여가 지급된다.

암 재발로 2년간 항암치료 우울증 동반
공단 주치의 무시하고 ‘취업하며 치료 가능’

근로복지공단의 취업가능 판단은 주치의 판단을 참고해 자문의사회가 회의를 열어 결론을 내리는 절차를 거친다. 주치의가 1차, 공단 자문의사회가 2차 판단을 하는 것이다. 공단은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있어도 어느 정도 노무를 제공할 수 있는 상태면 취업하면서 치료가 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판단은 주치의와 자문의에게 일임한다.

16일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김씨는 암 재발 뒤 사실상 취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반올림과 김씨는 암이 재발한 2020년부터 다섯 번이나 공단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공단은 ‘취업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첫 거절은 혈액암 재발을 확인한 2020년에 이뤄졌다. 김씨는 23일간 17회에 걸쳐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입이 헐고 목에 통증이 발생해 딱딱한 음식을 먹기 어려웠다. 탈모가 왔고 우울감이 덮쳤다. 상태가 이런데도 공단은 혈액암에 걸린 김씨가 취업이 가능하다고 보고, 방사선치료를 한 23일에만 휴업급여를 지급했다. 혈액종양내과 주치의 진료계획서를 보면 취업치료 가능 여부가 기재돼 있지 않았다. 공단은 자문의사 소견을 듣고 ‘취업치료 가능’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김씨는 다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항암 치료 하던 중이던 2019년 11월 우울장애를 이미 진단받았다. 공단은 추가상병을 승인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에게 취업치료가 곤란하다는 소견도 들었다. 공단은 산하 인천병원에서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자문의사회 회의 결과 취업치료 가능 소견이 나왔다고 했다.

김씨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했다. 지난해 2월 혈액암은 2차 재발 판정을 받았고, 우울증도 더욱 악화했다. 혈액종양내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 모두 모두 취업치료 불가 판정을 내렸다. 공단은 어김없이 자문의사 소견을 이유로 취업치료 가능 소견을 냈다.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가 우울증 2차·3차 진료계획서에 취업치료 불가 판정을 내렸지만 공단은 판단을 보류한 상황이다. 김씨는 올해 6월부터 임상치료를 받고 있다.

자영업까지 ‘취업’으로 보고 광범위하게 해석
현실적인 판단 가능성 고려 안해

공단이 김씨를 취업치료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취업 개념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대법원과 고용노동부, 공단은 취업의 개념을 자영업까지 포함한 모든 종류의 직업으로 본다. 사고성 재해로 인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취업 가능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김씨는 “수년간 나를 치료하는 주치의들이 취업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공단은 어째서 가능하다는 거냐”며 “공단 이사장이라면 혈액암이 두 번이나 재발하고 암이 전이된 암환자를, 우울증까지 앓는 환자를 공단 직원으로 채용하겠냐. 부디 제게 희망을 달라”고 호소했다.

공단도 이같은 문제점을 모르지 않는다. 치과와 안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와 관련한 상병은 취업치료 가능소견이 높아지게 되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8년 근로복지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 같은 상병을 특수 상병으로 분류하고 별도 지침을 마련했다. 취업 개념을 원직복직으로 보고, 공단 산재병원에서 특별진찰을 받게 하며, 재해사업장의 복직 의사 확인을 취업치료 가능 여부 심사 단계로 삼았다.

하지만 김씨와 같이 직업성 암 판정을 받은 뒤 암이 재발한 이들의 경우 지침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실제로 삼성디스플레이를 대상으로 한 산재 신청자는 39명이며, 대다수가 재발과 전이 가능성이 있는 폐암과 유방암, 혈액암(백혈병·림프종), 골육종, 종양 등이다. 전문가들은 특수상병 지침을 모든 상병으로 확대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한다. 조승규 공인노무사(반올림)는 “특수상병에 대한 휴업급여 지침은 특별한 내용이 아니라 당연한 내용”이라며 “몸만 좀 움직일 수 있다면 휴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규정은 불합리하고 형평에 맞지 않는 만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특수상병 지침을 전체 상병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범사업 상병수당, 판단 가이드라인 도입 준비
취업 개념 전환과 판단기준 마련 목소리 높아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시범사업이 시작된 상병수당. 현재 건강보험공단은 상병수당 지급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주치의가 상병수당 지급 여부를 판단할 때 참고한다. 질병별로 근로활동이 불가한 기간을 설정하고, 의료공급자의 수용성 제고 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주치의와 자문의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휴업급여와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휴업급여 지급 여부를 의사 자율이 아닌 가이드라인으로 기준을 정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단은 낫지도 않은 피해자들을 취업 가능하다고 판단해 일하라고 내몰고 있다”며 “이는 일하다 다친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 만큼 취업 가능 여부 판단 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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